"과거사법 제정, 역사를 제대로 쓰는 길"

[인터뷰] 대전 산내 학살 사건 희생자 유가족 이계성씨

등록 2007.08.09 14:06수정 2007.08.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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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학살 사건 희생자 유가족 이계성(68)씨 ⓒ 김영선


지난 7일 유난히 처음 온 유가족이 많았다. 매달 7일은 대전 산내 학살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하는 날이다.

신입 회원들에게 모임의 소소한 일까지 설명하며 회원카드 작성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 이계성(68)씨. 그는 한국전쟁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전북 남원 출생이다. 아버지는 남원에서 해방직후 과도기의 국내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 청년단 단장을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우익청년단 대표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좌익에 대한 우익들의 테러가 극심한 때였다.

하지만 우익청년단 대표를 죽인 일은 묵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책임을 지기위해 나섰고 사건을 사주했다는 죄명으로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판결문에는 1946년도에 6개월 형을 받은 데 이어 1948년도에 무기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어린 나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전주형무소에 계실 때 면회 갔었어요. 1950년 3월인가 4월쯤에는 대전형무소로 면회를 가서 손을 잡았던 기억이 또렷해요."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만남이고 기억이었다. 한국전쟁 발발직후 대전 골령골로 끌려가 총살됐기 때문이다.

계속됐던 피난과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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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4살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 ⓒ 김영선

"아버지가 대전 형무소에서 1950년 5월 16일(음력)에 산내로 끌려갔다는 얘기를 형무관으로 부터 듣고 그날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의 좌익 활동은 그의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나기 전에 집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서북청년단(우익청년단체)이 군인과 경찰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와서 쑥대밭이 됐죠."

그때부터 계속 이사를 다녔고 초등학교를 네 번이나 옮겼다. 계속되는 피난과 가난으로 옥수수와 수수로 죽을 끓여 하루를 연명했다.

"눈이 많이 오던 겨울에 경찰들에게 쫓기다 누이동생이 다리에 동상이 걸렸어요. 치료를 못하고 방치해둬서 오른쪽 다리를 잘랐어요. 어머니는 남의 집으로 일 다니시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생활이 여의치 않아 중학교도 못나온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도 찾게 됐단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돈이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할 때, 누이동생이 피난길에 동상이 걸려 우측 다리를 잘라야 했을 때….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가요. 완전한 나라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헌신 하셨으니까요."

"겨울에도 국회, 한나라당사, 서울시내 곳곳을 다니며 과거사법 제정을 위해 싸웠어요. 그것이 내가 아버지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고 현대사를 바로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애국이다'는 생각으로 즐기면서 싸웠습니다."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 잡는 일

싸우는 도중 실제 과거사법이 통과됐다.

"법대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처형한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어이없게 사람들을 죽인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하죠. 의식을 바꿔야 명품이 나옵니다. 마찬가지예요. 마냥 덮어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건에 대해 밝힐 것은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고 발전이 있지 않겠어요?"

고희를 앞두고 있는 그의 계획은 "글 쓰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워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족회 모임이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서류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었다.
#대전 산내 학살 #이계성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우익단체 #좌익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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