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밤을 잊은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가슴에 품고 음악을 들었다.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가슴 졸이며 녹음을 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다. 요즘은 클릭과 스킵을 하면서 음악을 빠르게 구하고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다 쓰면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쉽게 소비한다. 한때는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라고 믿고 싶은 우리는 [올드걸의 음악다방]에서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소장했던 노래를 꺼내 듣고, 누군가는 새로 알게 된 노래를 즐겼으면 좋겠다. -기자 말

올드걸의 음악다방
 올드걸의 음악다방
ⓒ 반지윤

관련사진보기


왁자지껄 파전 집 2층 가장 큰 방은 이어붙인 상, 다닥다닥 앉은 학생들로 이미 꽉 차있다. 아니다. 여기에 변변한 반주도 없이 오로지 목청으로만 부르는 노래가 천장까지 꽉 차야 완성이다. 막걸리가 성대를 타고 넘어와야 떨림기법 구사가 가능하고, 살리고 살리고 박수에 살리지 못하면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지. 1980년대 노래방이 생기기 전 흔한 대학가 풍경이다.

올드걸의 음악다방
 올드걸의 음악다방
ⓒ 반지윤

관련사진보기


내 기억에도 그 꽉 찬 방 파전들 위로 띄웠던 노래가 있다. 파전보다 더 뜨거워진 공기 위로 무슨 배짱인지 첫 고음을 날렸던 노래.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소리 없이 내 마음 말해볼까

동물원의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이다. '해 저무는 소양강'도 아니고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도 아닌 담백한 포크 록에 가까운 이 노래로 '살리'다니. 하지만 진짜다. 어디 무슨 노래하나 보자…며 신입 여학생을 바라보던 눈빛들이 일순 감탄으로 바뀌었다니까.

울어 보지 못한 내 사랑은 음 어디쯤 있을까
때론 느껴 서러워지는데

일 주일이 멀다 하고 상대가 바뀌는 짝사랑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인가 싶어서 혹은 나를 마음에 두고 저 노래를 부르는 걸까 싶어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시리 다들 발그레 해진 볼을 막걸리 탓이라고 눙치고는 했다.  스무 살이니까. 스무 살은 그런 나이였다.

지금 떠올려도 흐뭇한 이 분위기에 다른 노래가 끼어든다. 꼭 그 분위기 끝에는 스님도 흉내 내지 못할 중저음으로 <변해가네>를 읊던 녀석들이 있었다. 화들짝 정신이 든 우리는 다소 우울해진 채 다음 날 이른 아침 수업엔 절대 강의실 뒤에 파전을 시연하지 말자며 헤어지곤 했다.

가진 것 없는 마음 하나로 난 한없이 서 있소
잠들지 않은 꿈 때문일까

지금. 한없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무한 반복되는 일상? 그 일상에 거침없이 스며드는 불안? 불안의 끝과 끝에는 사건들과 가진 것 없는 마음이 이어져 있는 걸까? 잠들지 않은 꿈이 나와 우리를 지켜주기를.  이 노래가 다시 마음을 채워준 건 이 구절의 위로 때문이었나 보다. 그래 그때 꿈을 소환해야지. 불끈!

앗, 그 친구 녀석 노래 소리가 또 들린다.

'우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우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동물원이 들려주던 설렘은 잊고, 동물성만 발견하게 되는 사춘기 딸과의 악다구니를 들켰나보다.


태그:#올드걸의 음악다방, #동물원, #변해가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