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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가슴에 품고 음악을 들었다.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가슴 졸이며 녹음을 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다. 요즘은 클릭과 스킵을 하면서 음악을 빠르게 구하고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다 쓰면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쉽게 소비한다. 한때는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라고 믿고 싶은 우리는 [올드걸의 음악다방]에서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소장했던 노래를 꺼내 듣고, 누군가는 새로 알게 된 노래를 즐겼으면 좋겠다. - 기자말

올드걸의 음악다방
 올드걸의 음악다방
ⓒ 반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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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조금 부풀려 말하면 몇 만 년만이다. MBC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라디오 특집을 보고 난 후였다. <무한도전> 출연진들이 라디오에서 긴장하고 실수하고 웃기고 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삼 라디오가 궁금해졌다.

나는 중고등시절을 라디오와 함께 보냈다. 안방에 놓여있는 TV를 밤늦게 볼 수 없기도 했지만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와 DJ의 이야기는 TV 프로그램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신청곡과 사연을 적어 보내고 방송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내 사연만 쏙 빼놓고 방송한다고 섭섭했던 마음은 <예쁜 엽서 전시회>에서 싹 사라졌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똥까지 묻은 내 관제엽서와 달리 전시회에서 본 엽서들은 모두 화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처럼 멋졌다. '저렇게 꾸밀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게 낫겠다'며 입을 삐쭉거렸지만 부러웠다. DJ들은 노래를 틀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공테이프에 녹음을 하고 있는 우리 청취자들을 위한 배려였다.

한참 녹음중인데 밤늦게 안 자고 뭐하냐고 문을 벌컥 열어서 녹음을 망치게 한 엄마, 아빠들도 꼭 있었다. 그 시절의 라디오는 DJ와 내가 함께 한다는 연대감이 강했다. 까만 밤에 조곤조곤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꼭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거기에 내가 보낸, 아니면 친구의 사연을 읽기라도 하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언제부터인가 나는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다.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TV가 생겼다. 꽉 막힌 도로에서 필요해서 들었던 교통방송도 스마트폰 어플로 대체되었다. 노래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음악 사이트에서 내려 받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는 것이 빠르다. 비록 노랫말이지만 TV와 같은 영상매체가 라디오 스타를 없앤다는 예상도 있었다. 그럼에도 라디오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유가 뭘까?

정형돈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들리는 종이 넘기는 바스락 소리가 좋다고 했다. 아마 그는 종이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은 상상을 했을 거다. 시각적 자극은 없고 소리만 들리면 상상력은 배가된다. 라디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이다. 다림질을 하면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는 멀티태스킹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해서 DJ와 청취자의 쌍방항 소통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고 하니 이 또한 TV가 줄 수 없는 매력이다. 청취자 이름대신 휴대전화 번호를 따서 '1245'님, '5681'님 어쩌고 하는 것은 별로지만 말이다.

라디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나위가 부른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생각난다. 가수가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에 가슴이 뻥하고 뚫린다. 내가 생각하는 라디오의 나긋나긋한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만 노랫말에 라디오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뜨거운 리듬으로 마음을 빼앗는 라디오, 듣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졸음을 뺏어가는 라디오 말이다. 한밤에 이 노래가 시키는 대로 크게 라디오를 켜고 노래를 따라하면 이웃집에서 난리가 날 터이다. 노래를 듣고 아무리 신나도 그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암튼 다시 라디오를 켰다. 오랜만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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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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