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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가슴에 품고 음악을 들었다. 볼펜을 꾹꾹 늘러가며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가슴 졸이며 녹음을 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다. 요즘은 클릭과 스킵을 하면서 음악을 빠르게 구하고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다 쓰면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쉽게 소비한다. 한때는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라고 믿고 싶은 우리는 [올드걸의 음악다방]에서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소장했던 노래를 꺼내 듣고, 누군가는 새로 알게 된 노래를 즐겼으면 좋겠다. - 기자말

ⓒ 반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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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였어.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다니. 가슴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새빨개져. 동기와 선배들은 손뼉을 치면서 연신 내 이름을 불러. 아니 내 이름 말고 가수 이름. 얼굴만 아주 약간 닮았을 뿐인데 그들의 눈이 반짝반짝 거려. 가수의 멋들어진 노래 한 자락을 기대하는 눈치야. 이 분위기를 어찌 할꼬.

나는 말이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싫어. 가창시험 때도 죽지 못해 겨우 불렀다니까. 빵점을 받을 수는 없잖아. 울며 겨자 먹는 게 바로 이런 거지. 재롱으로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꼬맹이는 자라면서 자신이 음치이고 박치라는 것을 알게 돼. 지독한 음치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떻게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겠니?

대학생이 되니 노래를 부르는 일이 툭하면 생겨. 사람들이 모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러다가 닥치고 노래를 불러. 우리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의 후손이다 이거지. 그날도 그랬어. 잔디밭에 둥글게 앉아 막걸리를 반주삼아 노래를 마시고 있었지. 여기까지는 딱 좋은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아니 무르익지 않아도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돌아가면서 노래를 시켜. 진짜 너무 싫어. 신입생환영회, O.T에서는 용케 피했지만 나에게도 드디어 그날이 온 거야.

나는 선뜻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어. 내 솜씨를 아는데, 흠모하는 선배도 있는데…. 어떻게 내가 노래를 불러. 입에 본드 칠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아이고. 이름을 부르다가 지친 그들이 '노래를 못하면 시집을 못가요. 아, 미운 사람. 시집을 못가면…'라고 소리를 질러대. 매정한 사람들.

하필이면 이선희. 나는 왜 이선희를 닮았을까?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가수잖아. 맑고 따뜻한 목소리와 가창력을 닮을 것이지. 동글동글한 얼굴, 안경, 그리 세련되지 않은 머리 모양과 순진해 보이는 인상을 닮아서 이 고생이냐고. 참, 닮은 것 하나 더 추가. 이선희처럼 나도 치마를 입지 않아. 그건 그렇고 미치겠어. 어떡하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어. 노래 안한다고 끝까지 버티지 못하겠더라고. 적당히 권하다가 못하겠다고 하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지. 안하겠다고 하면 그럴 이유가 있는 건데. 못된 사람들이 그걸 몰라. 미친개도 아니면서 어떻게 물면 놓지를 않아. 어휴.

내가 불러야 하는 노래도 알아서 정해주네. 이선희의 'J에게' 어쩌겠어. 일어났는데 불러야지. 심호흡을 하고 두 눈을 질끈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모습 보이며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대 그리워하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그들이 놀랬다가 어쩔 줄 모르다가 웃음을 참는 모습이 보여. 신입생이고 여학생이라고 대놓고 웃지는 못하겠나봐. 노래가 끝나자 그러더라. 

"너의 노래는 개그가 필요할 때만 듣는 걸로…."

그 후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더 싫어졌어. 노래방이 생긴 후로는 노래 부를 일이 생겨도 어찌어찌 분위기만 맞추면 되더라고. 다행이지 뭐야.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노래 못 부르는 사람들은 조직 생활하기 참 힘들어. 그지?


태그:#올드걸의 음악다방, #이선희, #J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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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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