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택시 운수종사자 채용박람회'가 열린 17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다솜관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택시를 둘러보고 있다.(자료사진)
연합뉴스
택시는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는 일이다. 공간은 좁고 밀도는 높다. 좁은 공간과 높은 밀도의 택시 환경은 사람의 아우라를 짧은 순간 몸에 와닿게 만든다. 매달 수백 명의 사람이 한 택시에서 타고 내린다. 좋고 나쁘고 정감 있고 차갑고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개별적 느낌이 있다.
내리는 순간 금방 사라지고 또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되는 이 느낌과 함께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요금 시비와 진로 변경 혹은 지연 도착이나 출발지 부재 등) 사소하거나 (폭언, 협박, 주취폭력, 강도 등) 큰 일들이 택시 안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택시는 손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짧지만 빈도수는 엄청나게 많은 상호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다.
택시 안 손님에게 받은 느낌이나 벌어지는 일은 크게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할 수 있고 덜 좋은 것과 덜 나쁜 것 혹은 더 좋은 것과 더 나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좀 더 세밀하게는 좋지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것과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것의 차이만큼 미세하게 구분되기도 한다.
이런 구분은 어디까지나 개별 택시 기사의 인생과 배움과 경험치 등이 적분된 상태에서 감지되는 손님의 아우라를 미분한 결괏값이 자동으로 연산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같은 사람을 두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서로 다른 감정들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인상은 과학이라는 매우 비과학적인 말을 나는 택시를 몰면서 좀 더 신뢰하게 되었다.
적어도 사람을 판단하는데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첫인상에 대한 부분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이 첫인상을 판단하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인공지능(AI)은 그 시간을 0.1초에서 3초 정도라고 알려준다. 미국의 뇌 과학자 폴 왈렌의 연구에서는 상대에 대한 호감과 신뢰감을 판단하는 시간이 0.1초도 안 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아주 짧게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초두효과'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판단된 첫인상이 계속해서 그 사람에 대한 인상으로 고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만약 그 인상이 부정적이었다면 이를 바꾸는 데는 200배의 긍정적인 정보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만 봐도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데 얼마나 인색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또한 '후광효과'는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할 때 일부 특징적인 정보를 가지고 그 사람의 전체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심리적 특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의 인간성도 뛰어나게 훌륭할 것이라고 판단해버리는 경향이다.
종합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몇 초 이내의 짧은 순간에 결정하고 그 사람과의 나머지 모든 시간은 그 사람에 대한 다른 측면의 객관적 정보나 사실과 관계없이 이미 결정된 첫인상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람이 이렇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수백만 년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맹수와 적을 빠른 순간 감지하고 판단해야지만 목숨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정한 사바나가 아직 몸 안에 새겨져 있는지도.
인류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정착 생활을 시작한 때가 겨우 일만 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인간이 초두효과와 후광효과의 주관적 그늘을 벗어나는 진화가 완성되기까지 어쩌면 백만 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객관적 인간을 자처하는 사람을 내가 믿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적어도 백만 년 동안 우린 아무리 해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
아무튼 짧은 시간 짧은 관계로 끝나는 택시 기사와 손님 사이에 발생하는 일들이 충만하고 유서 깊은 종류일 리는 만무하다. 대체로는 즉각적이고 소모적이고 때로는 (주로 밤에는) 일탈적이다. 게다가 기사와 손님은 그날 처음 본 사이다. 앞선 이론에 따르면 손님이 차에 올라 좌석에 앉기 전 둘은 이미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을 판단한 후다.
판단 정보인 외모와 옷차림, 표정과 태도, 음성과 말투 등이 깔때기 안에 순식간에 섞여 들어갔다가 긍정과 부정 중 한 가지 통합 정보로 빠져나온 후다. 잠깐 타고 내리면 되는 손님 입장에서 기사에 대한 첫인상을 괘념치 않게 취급할 수 있지만 연이어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택시 기사는 입장이 다르다.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마음씨 곱고 착한 사람들일 리는 절대 없고 그중 일부는 분명 택시 기사를 곤란하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한다. 이런 일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 택시 기사는 그런 사람들을 골라내고 회피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 처음은 어쨌든 첫인상에서 출발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