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파죽지세로 오르며 5년 10개월여 만에 최대 주간 상승 폭을 나타냈다. 한국부동산원이 7월 25일 발표한 '7월 넷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30% 상승하며 18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이고 강남의 신화는 부동산이다. 돈이 돈을 벌고 아파트가 아파트를 낳는다. 진득한 땀 한 방울 없는 불로소득이 사회를 잠식하고 통념을 지배하고 당대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아파트로 부를 이룬 강남의 부자들이 가진 돈의 서사는 가볍고 천박하다. 빌거(빌라거지)와 휴거(휴먼시아 임대아파트에 사는 거지)와 엘사(LH임대아파트 사는 사람들)라는 말이 어린아이들과 어른들 입에서 함부로 떠들어진다.
그 신조어의 발로가 아파트값 하락을 우려하는 천박한 시민의식이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아파트값 때문에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사는 멀쩡한 사람들을 거지로 만드는 사회가 비정상임은 상식이지만, 시대의 반영인 그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당대의 상식으로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사회적 차별은 더욱 공고해졌다. 불로소득에 대한 도덕적 임계점을 상실한 우리 사회에 닥친 만연한 현실은 포기와 좌절이고 차별과 격차에 대한 무관심이다. 집이 없는 젊은 부부는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적은 월급은 작은 능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라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다.
2023년 2월 19일 KBS 뉴스에 따르면 1980년 500인 이상 사업체 평균임금은 미만사업체보다 10% 높은 수준이었다. 80년대 후반이 되면 그 격차는 25%로, 2008년부터는 50%까지 벌어졌다. 노동자 4명 이하 기업과의 차이는 미국은 1.2배, 일본은 1.5배, 프랑스는 1.6배였고 한국은 3배였다.
같은 기사에서 그럼 이 차이는 정당한가에 대한 설명에서 '노동자 개인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기업체 규모의 차이로 인해 임금 격차가 발생한 거로 보인다는 의미'라고 했다. 2017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제출된 '사업체 규모별 임금 격차 분석' 보고서를 인용했는데 그 근본 원인을 '원·하청 간의 수익성 격차'라고 보았다.
개인의 능력보다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서 차별의 맹아가 발아되었다는 결론이다. 성실하지 못해서 가난하다는 말, 일부만 유효하다. 더군다나 월급으로는 가망 없는 집값 때문에 가난이 가난으로 이어지고 부자로 태어난 자가 더 큰 부자가 되는 현실이다.
지난해 개인택시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된 볕 좋은 가을 한 낮이었다. 골프백을 트렁크에 실은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젊은 청년이 택시에 올랐다. 고급 빌라촌으로 가는 길에 건물주 할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내용은 사업하는 친구에게 시세보다 조금 싸게 할아버지 건물에 세를 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가 강조했던 건 친구가 미국에서 유학했고 사는 곳은 타워팰리스라는 말이었는데, 이는 마치 친구가 '그들'과 같은 부류임을 증명하는 마땅한 근거가 아니겠냐는 식으로 내겐 들렸다. 부럽다는 마음에 앞서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를 사는 사람들의 대화가 이명처럼 들려오는 바람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돈 많은 할아버지나 부모님이 아니라면 유감스럽지만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기는 '글러 먹은' 세상이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의 운명을 살지만 부자인 자는 더 큰 부자로의 무한한 욕망을 펼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돈이 돈을 벌고 강남 경제의 중심인 아파트는 아파트를 낳는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사회는 차별과 격차를 당연시하고 빌거와 휴거와 엘사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회자된다.
구조적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골치 아픈 주제는 언론에서 맥을 못 추고 그 자리를 대신해 요동치는 아파트 시세와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변동성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클릭 수를 무한대로 끌어올린다.
최근 급격히 오르는 아파트 가격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강구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정부도 자신의 가족들이 모여 사는 강남을 이기지 못했다. 누구든 제 손을 직접 부러뜨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세상에 가장 많이 유통되는 돈의 서사는 불로소득이다. 안타깝지만 차갑게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하루 열 시간 노동으로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가난한 택시 운전사인 나는 그저 아이들의 꿈이 꺾이지 않는 세상을 소망한다. 나 또한 불로소득에 대한 일말의 욕망도 없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로서는 가능성 희박한 일에 투신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 싫을 뿐이다.
지금 내게 허락된 생존을 위한 유일한 가능성이 바보처럼 땀 흘리는 노동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저울에 올려진 돈이 비록 깃털처럼 가벼워 보일지라도 내겐 납 한 덩이의 무게감으로 묵직하게 가족을 향해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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