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팔고 있는 "위급시 아이들 먼저 구해주세요" 스티커
11번가
'위급상황시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 스스로도 과속 난폭운전을 하는 줄 알고 있고 따라서 사고가 날 확률도 크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혈액형까지 함께 써서 붙인 스티커인가 싶어 쓴 웃음이 나왔다. 저 스티커의 말과 달리 위급 상황시 구조대원들이 가장 먼저 구하는 대상이 위중한 환자부터라는 건 상식적인데다 이미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다.
자기 아이는 특히 소중하고 운전하는 습관도 매우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하필 커다랗고 값비싼 수입 SUV를 좋아하는 사회적 맥락이 뭘까를 깊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인 나는 감히 그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그저 만나면 조용히 피한다.
도로 위에서의 사소한 자리싸움에서도 경적을 울리며 보복운전 낌새까지 보이는 위협적인 차들도 대체로는 그런 차들이다. 내게 학습된 결과로 나는 그런 차들을 비켜가고 양보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매일 택시 운전을 하며 마주쳐야 하는 그런 차들 때문에 시간과 감정을 소비할 새가 없다. 특히나 영업용 운전은 비겁해야 오래 안전하다.
나는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그런 날이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될 때도 있다. 경적은 대체로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후에 울리게 되는 자기 날 선 감정의 표현이다. 급박하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쓸데 없는 감정 낭비다.
보통사람들의 부끄러움
다리 건너 고속화 도로를 타기 위해 끝차선에 길게 줄을 서 있는데 텅 빈 옆차선에서 시원하게 달려온 얌체 같은 차가 냉큼 내 앞에 끼어들려 할 때가 종종 있다. 없는 인내심을 꺼내서 거북이 걸음을 참아가고 있는데 억울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앞차와의 거리를 바짝 좁혀 양보해 주지 않는다.
그 차는 날쌔게 더 달려가 훨씬 앞에서 끼어들어 유유히 사라진다. 그런데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직전의 적개심은 간데 없이 무력하고 담담하다. 그 차가 내 앞에 끼어드는 거나 저 만치 앞에서 끼어드는 거나 내게 주는 피해는 마찬가지인데 왜 마음이 다를까를 생각해 봤다.
당장 내 앞을 막아서는 당사자에게 직면하는 위험과 저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입장 차이다. 내가 입은 피해는 같은데 사건이 어디에서 벌어지느냐에 따라 태도와 감정은 간극이 크다. 사람이 이렇게 옹졸하다.
내 앞에 직면하는 위험만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지만 저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력하다. 거리가 그렇고 상황도 직관을 벗어났다. 그래도 다수가 피해자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국 수준 높은 도덕성이 해결할 수 있다.
맹자가 말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옳음의 극치다."
부끄러워서 끼어들 수 없는 마음이 사회 저변에 무겁게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듣고 보는 언론과 방송에 나오는 우리 사회의 수준은 참담하다. 거기 가장 많이 출연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과 행동은 도무지 부끄러움이 없다. 그 모습이 너무 천연덕스러워 그걸 보는 보통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부끄러워한다. 옮음의 사회는 우리에게 아직 요원하다.
비가 개고 장마가 그쳤다. 낮과 밤이 따로 없는 폭염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여름 휴가의 절정을 즐기려 도시를 떠나지만 도로 정체는 변함 없다. 도시는 한가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를 누군가가 금방 채운다.
하찮은 택시운전사인 나는 오늘도 차를 닦고 몸을 씻고 부끄러움 모르는 도로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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