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지배하는 나라를 심층 분석한 <뉴스타파> 보도
뉴스타파
내 마음이 괴이해졌다
과거 지역에서 진보 정당 활동을 했다. 지금은 지리멸렬해졌지만 한때 각광받던 대중정당이었다. 어느 당이든 정당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체제가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한 당의 강령이 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고 활동을 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대중정당으로 강령을 내세웠던 그곳도 예외 없이 서로 다른 내부 조직이 있었고 크게는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어 여러 사안을 두고 다투었다. 소속 조직 없이 정당 활동만 했던 나는 개별 사안에 대해 조직의 결정에서 자유로운 입장이었고 늘 정당의 대중성에 우선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달리 조직의 이념과 정당의 강령을 비타협적으로 고수하면서 세계사의 변화에 맞물린 사회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매파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었다. 성격도 좋았고 주위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부인도 공무원이어서 아이들 건사하며 사는 데 전혀 부족함 없는 상류층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여럿이 편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 아파트값이 올랐다고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만족한 표정의 강경한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괴이해졌다.
적어도 사회주의자라면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불로소득을 부끄러워해야 마땅한데 아파트 공화국의 현실은 그런 마음마저 무너뜨리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오래 부자로 살아남을 그가 가진, 자기 존재의 기반을 배반하는 이념적 경향성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했다.
2년 전 투잡으로 고급 대형택시를 운전할 때였다. 본사에서 대절한 내 택시에 지역에서 올라온 대기업 노조원들을 태우고 서울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나는 운전하고 그들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같은 공고를 나온 선후배들이 여럿 있었고 학교와 직장 안 위계질서가 있었으며 일반 회사에서는 볼 수 없는 후배의 깍듯한 선배 대우가 인상적이었다. 노조 활동을 하는 생산직이자 정규직이었는데 가장 선배로 보이는 사람은 듣자하니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에 살고 비싸고 좋은 차를 타고 있었다.
전형적인 생산직 노동자인 그가 억대 연봉을 받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같은 일을 하고도 200여만 원을 받는 (2023년 노동사회연구원 발표 기준) 41%의 비정규직이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다.
자발적 비정규직을 자처하다 1년 전에 개인택시라는 자영업자로 변신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삶을 사는 나는 생산직 노동자인 이 사람의 운 좋은 성공이 부러운 건 사실인데 비정규직 문제 해법이 이 사람의 좋은 집과 차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통한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에서 찾아야지 부자 노동자의 탐욕 때문이라는 언설은 불평등한 노동시장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표퓰리즘적 선동이다. 이는 요즘 자기 이익 챙기기에 더 급급해 보이는 대기업 노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는 별개의 문제다.
아무튼 내가 당시 호형호제하던 그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높은 연봉에 정년까지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경제적으로는 내겐 너무 부러운 이들의 노조 안에 자본주의 철폐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목표로 하는 그룹이 있다는 걸 생각해 내곤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누가 보아도 한국 자본주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사람들의 순수한 사회적 열망이라기엔 설명이 부족했다. 어쩌면 그들이 누리는 흔들림 없는 자본의 힘이 바깥 현실과 상관없이 비타협적이고 강경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뒷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2021년 기준 14%다. 실제 노동조합이 가장 절실한 86%의 노조 조직률은 12.2%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언론을 장식하는 노조 관련 소식은 대부분 대기업노조에 편중되어 있다.
국회와 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전체 임금노동자 중 17.6%(2021년 기준)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소속된 400만 노동자의 현실은 최저임금과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삶이다.
지금 내게 실재하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