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배경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주최하여 안정적인 체류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제공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성장했고,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분명 더 폭넓게 체류권을 보장할 수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2021년 이전까지 이들에 대한 어떠한 정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강씨 같은 이주아동들은 '유령'처럼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김기태의 단편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도 '유령'이 될뻔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고려인 4세 김니콜라이입니다. 공업계열 특성화고에 다니던 시기에 그는 작은 희망을 얻게 됩니다.
"4세대들도 장기 체류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니콜라이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 낙방했지만 2학년을 마칠 때쯤에는 선반기능사와 밀링기능사,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18p)
기존의 재외동포법 시행령은 고려인 3세까지만 재외동포로 인정됐습니다. 그래서 고려인 4세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한국을 떠나거나, 3개월짜리 단기관광비자로 한국과 본국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법이 바뀌어서 2019년 7월부터는 고려인 4세도 재외동포로 인정받게 된 겁니다.
물론 니콜라이가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냉동만두, 선풍기, 의료기 부품 공장을 거쳐 자동차 전조등 생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12시간 동안 반경 1m 공간 내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두 시간을 일하면 쉬는 시간 10분이 주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정규직 전환도 쉽지 않았습니다. 커뮤니티 게시판의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 좀'이라는 제목의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친구 진주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라고 되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산업기사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취업 알선을 잘해주는 전문대를 알아보며" 진주와 함께 경기도 서남부의 한 도시에서 같이 살아보기로 결정합니다. 가구를 함께 사고, 집을 정리하다가 같이 포옹을 하고, 정전을 계기로 앞집 부부와 배드민턴을 칩니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143p)
정훈님, 아마 강태완씨가 바랐던 것도 미미하지만 확실한 오늘의 행복을 줍거나, 먼 곳에 있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꿈을 꾸면서 사는 일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서른 살까지 그 무엇도 마음 편히 가져보지 못한 채로 살았습니다. 사랑, 연대, 꿈 같은 것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그 기반이 비로소 만들어지려고 할 때,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강씨에게 또 다른 삶을 꿈꿀 수 있게 했던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대책이 2025년 3월 31일부로 종료된다고 합니다. 아직 법무부는 구제대책 지속에 대해 확답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에 강씨 역시 구제대책 지속을 요구하는
'LET US DREAM' 캠페인 영상을 찍기도 했습니다.
현행 대책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 공교육 이수라는 신청 대상 요건 ▲ 신청 시 부모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범칙금 ▲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예정된 부모의 출국 등의 규정
(김사강-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대책의 평가와 체류권 보호 방안')이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 자격 신청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물며 지금의 구제대책조차 지속되지 못한다면 미등록 이주아동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김사강 연구위원은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에서 현행대책에서 한발 더 나아간 대책을 제안했습니다. '일정 기간 체류하고, 일정 기간 공교육을 받은 이주아동 대상으로 기존 체류자격 유무나 종류와 무관하게 성인이 되었을 때, 학업·구직·취업을 포함해 활동 범위에 제한이 없는 체류자격(징검다리 체류자격)을 신설'하자는 것이 그의 대안입니다. 단순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여느 한국인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선택권을 늘리자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그에게 갖춰야 할 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