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리뷰] 테스 게리첸 <메피스토 클럽>

등록 2010.12.20 11:06수정 2010.12.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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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메피스토 클럽> 겉표지

<메피스토 클럽> 겉표지 ⓒ 랜덤하우스

▲ <메피스토 클럽> 겉표지 ⓒ 랜덤하우스

'거인족은 인간과 거룩한 감시자들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거인족의 몸에서 악령이 나왔다. 그들은 이 땅의 악령이 될 것이며 악령으로 불릴 것이다.'

 

구약성서의 외경인 '에녹서'에 실린 구절이다. 에녹서는 노아의 조부인 에녹의 역사를 다룬 문서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정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위의 구절과 비슷한 이야기가 창세기에도 나온다. 창세기 6절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다'라는 내용의 구절이 있다. 에녹서의 '감시자들', 창세기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 그중에서도 타락한 천사들을 의미한다.

 

타락한 천사가 인간 여자와 교제해서 괴물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결과물인 변종의 후손들이 지금까지도 인간 사회에 섞여있을 것이다.

 

테스 게리첸의 2006년 작품 <메피스토 클럽>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 변종의 후손들은 뛰어난 매력과 재능, 빼어난 미모를 가졌다고 한다. 대개는 아주 키가 크고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어쨌든 그들은 악령이다. 어둠에 봉사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악마의 상징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이들이 뭔가 사고를 치기 전에는 '악령'이라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이런 악령을 추적하기 위해서 '메피스토 클럽'이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활동한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악의 기원은 바로 구약성서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락천사와 인간의 만남 때문에 생겨난 악이 지금까지 지상에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인 테드 번디, 샘의 아들, 제프리 다머 등을 바로 이런 악령으로 볼 수 있다. 악의 존재는 인간의 얼굴을 가졌고 심지어는 유쾌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거리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서로 웃음을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가면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메피스토 클럽>의 도입부에서 마치 악마가 지나간 듯한 살인현장이 펼쳐진다. 젊은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그 시신은 여러 토막으로 잘린 것이다. 살인범은 주방 바닥에 분필로 원을 그려놓고 그 주변에 다섯 개의 양초를 밝혀두었다. 그 원 안에는 피해자의 머리를 놓아 두었다. 마치 무슨 의식을 치루듯이.

 

거실의 벽에는 사탄의 상징인 거꾸로 된 십자가를 여러 개 그려두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써놓았다. 끔찍한 살인 후에 공개적인 고해성사를 한 셈이다.

 

이런 살인이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성들만을 노린 잔인한 살인이 계속 이어지고 그 현장에는 거꾸로 된 십자가와 악마의 상징이 남겨져 있다. 보스턴 경찰서 강력반 소속인 제인 리졸리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메피스토 클럽'의 회원들과 만나게 된다.

 

그 회원들은 구약성서를 인용하며 사탄과 악령의 존재를 설파하지만, 제인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코웃음친다. 설사 악령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잡아들이는데 어떤 도움을 줄까?

 

악을 추적하기 위한 모임 '메피스토 클럽'

 

메피스토 클럽의 회원인 앤서니 산소네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살과 피를 가진 피조물의 형태로 나타나서 인간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그런 악. 그 악이 행하는 살인은 치정이나 원한에 얽힌 살인, 또는 유산을 노린 살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존재가 단지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서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악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논리로도 과학으로도 해명할 수 없다. 악은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 곁에 있어왔다. 실체를 가진 존재로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몰래 접근한다. 이 세상은 악이 뛰어다니는 사냥터이고 일반 사람들은 악이 노리는 먹잇감이다.

 

그 악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행동을 추적하는 것뿐이다. 핏자국을 따라가 보고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지나간 현장에는 일상적인 범죄와는 다른 강렬한 어두움이 깔려있다. 괴물이 남긴 발자취인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발자취를 추적할 때마다 괴물도 상대방의 존재를 의식한다는 점이다. 메피스토 클럽이 악을 찾아다니면 그 악도 메피스토 클럽을 노린다. 잔인한 연쇄살인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옥은 지옥을 부른다고 하지 않던가.

덧붙이는 글 | <메피스토 클럽> 테스 게리첸 지음 /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2010.12.20 11:06ⓒ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메피스토 클럽> 테스 게리첸 지음 /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메피스토 클럽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6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메피스토 클럽 #제인 리졸리 #테스 게리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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