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침교>의 유래와 사진을 담은 1924년 7월 22일자 동아일보 기사.
유영호
종침교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조선 성종대에 연산군 생모인 윤씨의 폐위를 논하는 어전회의가 있었는데, 당시 이를 앞두고 형제였던 충정공 허종(許琮)과 문정공 허침(許琛)은 걱정이 앞섰다. 당시 왕비 윤씨는 세자의 생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사직동에 사는 누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궐내의 분위기를 전해 들은 누이는 당시 연산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의 생모를 폐하는 논의에 참가했다가는 훗날 세자가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 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니 무슨 꾀를 내어 회의에 참가하지 말라고 이른다.
이러한 누이의 조언에 따라 결국 허종, 허침 두 형제는 대궐로 가는 길목에 있던 이 다리를 지나다가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쳤다. 그리고 이 핑계로 어전회의에 불참할 수 있었는데 이로써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의 생모 폐비 윤씨의 복위 문제로 일어난 소위 <갑자사회>(1504) 때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고 그 뒤로 이 다리의 이름은 백성들 사이에서 허종, 허침 두 형제의 이름을 따와 <종침교(琮沈橋)>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갈리는 순간이었던 갑자사화에서 역사문제를 떠나 이들 오누이-형제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는 사실에 무척 즐겁다. 동시에 수백 년 전의 조선시대가 우리의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