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예술단과 함께.
신은미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남편과 나는 이 학교 근처에 있는 장애인 예술단을 방문했다. 장애인 예술단은 청각장애인들과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돼 있다. 얼마 전 유럽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단원들은 다가오는 캐나다 초청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동포라고 소개하니 환영하는 마음을 공연으로 전하겠다고 한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눈빛으로, 손끝으로, 온몸과 마음을 합해 춤을 춘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은 영혼의 울림에 장단을 맞춰 몸을 움직인다. 이뿐인가. 영혼의 눈으로 삼라만상을 마음에 품어 안은 시각장애학생들은 목소리로, 손가락으로 세상을 하모니에 담는다. 아! 이미 신의 경지에 다다른 단원들은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감동을 선사한다. 하찮은 방문객에게 공연을 베풀어준 단원들에게 깊숙이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오면 장애 어린이들과 함께 이 예술단을 남한에 초청해 남한의 동포들에게도 내가 느낀, 설명하기 힘든 감격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뿐만 아니라 남편과 내가 이사로 있는 대구의 '범하애광소리예술단'도 북한 공연을 열어 서로의 사랑을 온몸으로 교감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전쟁포로인 줄 알았는데... '남파간첩'이었다점심식사를 마친 오후엔 특별한 일정이 잡혀있다. 소위 '북송 장기수'라 불리는 분의 집을 방문하는 일정. 원래 이 일정은 계획에 없었다. 이틀 전 안내원 김혜영 선생과 커피숍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중 북송 장기수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종군 기자로 전선을 취재하다 체포됐다는 북송 장기수 이인모 선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남편이 김혜영 선생에게 물었다.
"그분들께서는 모두 잘 계시나요? 연세가 이제는 꽤 되셨을 텐데….""네, 모두들 잘 계십니다.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이 호텔 바로 옆에들 사십니다. 일부는 새로 세운 아파트로 가신 분들도 계시구요.""호텔 옆이라니요?""바로 호텔 뒤입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원하시면 일정을 잡아 보겠습니다."김혜영 선생에 따르면 북송 장기수는 모두 예순여섯 사람인데 현재 스물다섯 분이 생존해있다고 한다. 90대가 일곱 분, 80대가 열일곱 분, 그리고 70대가 한 분이다. 우리가 지금 가려는 아파트에 열세 분이 살고 있으며 열두 분은 평천구역 안산이라는 동네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분들의 전쟁 경험담이 궁금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포로가 됐으며 제네바 협약에 의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할 분들이 왜 정전 후 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는지, 왜 전쟁포로가 징역을 살아야 했는지 등등. 아파트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우리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북송 장기수 한 분이 우리를 반겨주신다. 그분이 우리를 인도해 또 다른 북송 장기수분이 사는 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