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향이와의 작별인사.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 오르지 못하며...
신은미
설향이는 상위에 올려져 있던 과일을 주섬주섬 용기에 담아 건네준다.
"오마니, 이거 호텔에 가서 드시라요.""아냐, 설향아, 호텔에 다 있는 거 너도 알잖아.""밤늦으면 상점들 모두 닫잖습니까. 가져가시라요, 오마니."설향이가 싸준 걸 받아들고 아파트를 나선다. 감격이 벅차올라 눈물이 핑 돈다. 내 인생에 기적처럼 찾아온 '도깨비 나라' 북한으로의 여행! '달나라보다 낯설었던' 북녘땅에 딸들이 있고, 사위가 있고, 손주가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통일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원초적인 이유다.
지금 남과 북에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아직도 살아있다. 심지어 휴전 후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북한에 있는 형제를 찾아가는 재미동포를 나는 북한행 비행기 안에서 만난 적도 있다. 게다가 남한에는 2만5000여 탈북동포들이 있다. 이들은 오늘도 핏줄을 그리워하며 재회의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인간의 정과 사랑보다 더 강력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근원은 가족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와 헤어져 생사조차 알 길 없는 세월을 살아가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그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 불가능한 몸부림은 마침내 시퍼렇게 멍울진 '한 맺힘'이 돼 살아도 살아있음이 아닌, 지옥과도 같은 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혹시나 저 세상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이생의 삶을 마감할 것이다.
세상천지에 이같이 잔인한 비극은 없다. 그런데 피붙이, 형제자매, 부모를 생이별 시켜놓은 채, 남북 두 나라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끊긴 인연의 끈을 방치하고 있는 두 나라에 어떤 천벌이 내려질까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비극은, 이 죄악은 그 어떤 번드르르한 말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국가의 허락 없이는 만날 수 없다거나,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가장 근본적인 인권 유린이다.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는 남한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산가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 또한 엄청난 인권 유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에 제한이 없고(북한 여행 제외)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정부에 제안한다. "북에 가족이 있는 남한 주민들은 원하면 누구나 북한에 가서 헤어진 가족을 만나도 좋다"라고 선언할 것을. 주민들의 해외여행이 제한돼 있는 북한에게도 제안한다. "북에 헤어진 가족이 있는 남한 주민들은 누구나 북한을 방문해 가족과 상봉할 것을 허락한다"라고 선언할 것을.
겨우 작별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산가족들의 한 맺힌 영혼이 빗물돼 주루룩 차창을 두드린다.

▲ 비 내리는 평양 시내. 이산가족의 한이 빗줄기가 돼 내리는 듯했다.
신은미
우리는 만나야 한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 안내원 김혜영 선생에게 어디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고 제안하니 옆에서 남편이 반색하며 김혜영 선생에게 묻는다.
"혜영 선생, 혹시 '경흥맥줏집'이라고 알지요?""경흥관 모르는 평양사람이 오데 있습니까. 긴데 기곳은 인민봉사 맥줏집이라서 외부인은 갈 수가 없습니다.""왜요? 시설이 안좋아서 그럽니까?""안 좋긴요, 기렇지 않습니다. 기곳에서는 조선돈만 사용할 수 있으니 조선돈을 소지할 수 없는 외국 관광객들은 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정 선생님 잘 아시면서…." "에이, 김혜영 선생, 그러지 말고 우리 갑시다. 김 선생이 우리에게 한잔 대접한다는 생각하고 가면 안 될까요?""아, 이를 어쩐다. 가면 규정을 위반하는 건데….""무슨 일 있으면 내가 책임질 테니.""오마, 정 선생님이 어떻게 책임을 진단 말입니까? 책임을 지면 내가 지는 게지."눈치를 보니 김혜영 선생 재량에 달려있는 듯하다. 나도 덩달아 부추겼다.
"그저 크게 문제될 거 없으면 가보지요, 김 선생님.""그럼 갑시다. 신 선생님이 가자니까…. 정 선생님만 가자고 하면 안 갈라 기랬는데."

▲ 경흥 대동강맥줏집 입구에서. 이 맥줏집 규모는 상당히 컸다.
신은미

▲ 북녘동포들과 어울려 대동강생맥주를 마시며.
신은미

▲ 경흥 대동강맥줏집에서 만난 북한 동포들은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질문도 끊이지 않았다.
신은미
맥줏집에 도착하니 비가 싹 그쳤다. 맥줏집 규모가 상당히 크다. 족히 1000명은 수용할 것 같다. 이곳에서는 '까스맥주'라고 불리는 대동강생맥주를 제공하는 곳인데 종류는 모두 일곱 가지다. 안내판을 보니 쌀과 보리의 혼합비율에 따라, 그리고 알콜 도수에 따라 구분해놨다.
손님들은 주로 직장인들처럼 보인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 작업복을 입고 붉은별이 달려있는 '모택동 모자'를 쓴 사람들, 여성 근로자들…. 퇴근길에 들려 한잔 하는 모양이다.
나도 한잔 받아들고 북녘동포들과 어울려 시원한 대동강생맥주를 마구 들이켰다. 내가 해외동포인 줄 알고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한다. 어디서 왔느냐, 어떻게 왔느냐, 고향이 어디냐, 무얼 하느냐, 나이는 몇이냐, 애들은 몇이냐, 애들은 무얼 하냐, 부모님은 계시냐, 부모님은 어디 사시냐, 미국서도 조선 음식을 해먹느냐 등 궁금한 것도 많아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일일이 모두 대답해주니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듣는다. 예전 우리들의 모습이다.
남녘 출신의 해외동포라고 하면 눈을 맞추고 손을 덥석 잡으며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것, 하루빨리 평화로운 통일을 이뤄 함께 살아가자는 것, 예전 6·15선언과 10·4선언 시대로 다시 돌아가서 남녘동포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 그 시절이 정말로 꿈만 같다며 그때는 곧 통일이 될 것 같아서 얼마나 흥분됐는지 모른다는 것 등이다.
이렇듯 동포들과 얘기를 나누면 우리는 서로를 금방 이해하고 하나가 된다. 통일은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게 바로 통일이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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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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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엔 1000명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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