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작가를 만나다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09.09 01:37수정 2001.09.0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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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학상 심사 문제로 검궁인(劍弓人)이라는 무협소설 작가를 만나 교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협소설 작가라 해서 은근히 낮게 보이고 전자책 만드는 회사(barobook.com)를 운영하고 있다 해서 시류에 민감하겠거니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한때는 여러 스포츠신문에 동시 연재를 할 만큼 그 분야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루에 100페이지를 쓴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나는 오륙십 페이지 정도는 써도 그렇게까지는 못 쓴다고 했더니 빙긋 웃으며 자기가 쓰는 100페이지는 책으로 100페이지란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따로 시간을 내서 구상하지 않아도 새로운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던가. 요즘 작가들이 그 정도 기술을 갖고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요즘에 그런 숙련됨을 갖춘 작가가 많지 않음은 물론이다.

잡지도 냈다고 했다. 엑스칼리버라는 대중문학 잡지였다던가. 무협소설, 추리소설, 환타지, SF, 만화 같은 여러 장르를 의욕적으로 다루고자 했지만 적자가 너무 크고 회수되는 돈은 없어 부득이 폐간했다고 했다. 무협소설로 번 돈을 옛날에는 잡지에 쏟아붓고 지금은 전자책에 몰아넣으며 '내가 왜 이렇게 팔자에 없는 짓을 하고 있나' 생각하기도 한다던가.

사람들은 자기 하는 일에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나 역시 문학이라는 것에 몰두할 수 있을 때 그나마 살아가는 느낌이 난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문학이 세상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 한계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지만…….

검궁인(劍弓人) 같은 사람을 만나보면 내 일이 얼마나 평범한지 깨닫게 된다. 내가 하는 문학은 세상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내 일을 과대시할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대중문학은 그것대로 존재 이유가 있고 거기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자기 삶을 진지하게 밀어나가고 있다. 나 또한 나의 일을 하면 그뿐이다.


언제였는지 잊어버렸지만 그에게 '푸른숲'에서 나온 발자크 평전을 선물한 기억이 난다. 그냥 주고 싶었다. 발자크도 죽도록 쓰던 사람이었고 출판업에 정신 빠뜨린 사람이었다. 발자크는 '뚱뚱이'였고 그는 '말라깽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그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에 내가 아는 문학과는 다른 유형의 문학 쓰임새가 존재하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 편하고 좋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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