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 의문사를 보며

등록 2002.02.20 07:35수정 2002.0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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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정 감사 자료에 의하면 군대 내에서 사망하는 군인이 한해 평균 300여 명에 이르고, 이중 1/3에 달하는 100여 명 이상이 '자살'이라고 한다. 또 병영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탈영을 하는 군인의 수가 1995년 이후부터는 매년 2천 명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군대 내 폭력 문제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특히 군대 내 자살자가 한해 평균 100명을 넘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자살 사고가 발생한다는 얘기인데, 언젠가는 군에 갈 자식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 은근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군대 내 자살 사고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닌다. 하나는, 그것이 명확한 자살이라 하더라도 한해 평균 100여 건의 자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병영 조건이다. 어찌 그것을 자살자의 심성이나 개인 사정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또 하나는, 자살의 명확성에 대한 의문이다. 병영 내에서의 자살 사고는 기본적으로 의혹의 여지를 지닌다. 자살자의 가족이 백 번 천 번 의혹과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군대 내 자살 사건을 접할 때마다 30년 전의 내 군대 시절, 그 중에서도 월남 전장에서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월남에서는 전 장병들에게 거의 무제한으로 M16 자동소총 실탄 지급을 했고, 장병들은 항시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실탄들도 없지 않았다. 막사 뒤뜰에서도, 연병장에서도, 아스팔트 길 위에서도 땅바닥에 나뒹구는 실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조금 과장적으로 말한다면 발끝에 채이는 게 소총 실탄이었다.

M16 소총 탄피나 LMG 경기관총의 탄피는 귀국을 앞둔 고참병들이 눈독을 들이는 물품이었다. 박스에 담아서 귀국할 때 고국으로 가지고 가면 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고참병이 귀국을 할 때는 분대원들이 '귀국 박스'를 채워 주느라고 애를 많이 썼다. 비축해 두었던 탄창 박스들을 차에 싣고 부대 밖으로 나가서 빈 산에다 대고 공연히 신나게 사격을 한 다음 탄피들을 쓸어모아서 귀국 장병의 박스에 담아주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던, 종종 발끝에 채이곤 하던 M16 소총 실탄들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막사 밖 모래밭에서 주운 실탄 한 발로 유인 지점으로 나타난 개를 쏘아 잡아서 실컷 회식을 했던 경험도 있다. 그때 M16 소총 실탄 한 발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실감하고 확인했다.

나는 칼빈이나 M1 소총에 비해 끝이 좀더 예리하게 생긴 M16 소총 실탄을 떠올리면 괜히 목이 움츠러드는 듯함을 느낀다. 군대 내 자살 사건 기사를 접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M16 소총 실탄을 떠올리곤 한다. 대체 무슨 까닭일까를 생각하며 실소를 머금기도 한다. 사건 기사 내용을 통해 소총과는 관계없는 죽음일지라도 나는 예의 M16 소총 실탄을 떠올리곤 한다.


월남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전사―즉 사고사(事故死도) 많았다. 그리고 그 사고사들 중에는 명확하지 않은 사고사도 없을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 자살은 거의 없었을 것으로 안다. 명확하지 않은 사고사들 속에 혹여 자살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월남에서의 죽음은 무조건 전사였다. 사고사도 모조리 전사로 처리되었다. 그것은 일면 옳은 일이었다. 사고사를 그냥 사고사로 처리하게 되면 부작용이 심각해진다. 우선 지휘관이 문책을 당하게 된다. 또 상대성이 있는 경우 그 상대자에 대한 처벌이 불가피해진다. 더 큰 문제는 죽은 장병의 목숨 값이 날아가 버리거나 변조되어 버린다.

가장 무난한 선택은 사고사도 전사로 처리하는 일이다. 그러면 지휘관도 문책을 당하지 않고, 상대자도 처벌을 받지 않고, 죽은 자도 전사 보상금을 지급 받게 된다.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해서는 더욱 옳은 선택이다. 부모나 처자가 죽는 날까지 미국으로부터 매월 수십만 원씩의 전사 보상금을 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고사를 전사로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과거 월남에서의 그런 특수 상황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군대 내의 사고사 중에서 자살 비율이 너무 높은 사실과 '자살자'가 안게 되는 일방적 손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해 평균 300건이 넘는 군대 내의 사고사들 중에서 100건 이상이 자살 사고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참으로 크다. 물론 가족이 승복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자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자살을 믿을 수 없는 가족들이 군 수사 당국의 수사 의지나 수사 방법을 믿지 못하고 수사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자살을 믿을 수 없는 가족들이 군 수사 당국의 수사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사례들도 많이 보게 된다.

군대 내의 사고사는 지휘관의 문책 사항이지만, 사고사 중에서도 자살은 가장 경미한 문책 사항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휘관에게는 '방어 차원'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사고사에 어떤 상대성이 존재한다면 그 상대는 적극적으로 방어를 하게 될 것이고, 군대 내의 여러 가지 특수 조건이 그를 돕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죽은 자는 말이 없는' 현상은 다시 한번 요지부동이 되어 가족들에게 한없는 슬픔과 절망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말 부대 내에서 사망한 육군의 김성욱 상병과 김병민 이병, 그리고 전경 최재혁 이경의 유족들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고 '군의문사/군폭력대책위원회'에서 조사 활동을 펴고 있으나 성과 여부는 그들 죽음의 의혹만큼이나 불투명하다. 그들 중에서 고 김병민 이병의 사망과 관련된 사항들은 더욱 많은 의아심을 자아낸다.

'의문사군인가족협의회' 회원들과 유족들을 포함한 인권위 측 23명은 지난 1월 21일 사고 부대를 방문하여 조사 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조사 활동이 거의 끝나갈 17시 30분경 갑자기 군 측은 인권위 측이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회수하겠다며 총기를 휴대한 무장 병력을 동원하여 노인 2명과 장애인을 포함한 23명을 밤새 차 안에 억류하다가 다음날 아침 09시 25분 경에야 병력을 철수했다고 한다.

불법 촬영과 보안 규정으로 인해 인권위 측이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의 외부 반출이 안 된다며 이를 회수하기 위해 억류가 불가피했다는 군 측의 주장에 대해 인권위 측은 비디오 촬영을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으며 억류 이전까지 제지가 없어 사실상 사전 양해가 있었다는 점, 촬영시 부대 관계자가 동석해 있어서 보안상의 문제가 있었다면 억류 전에 제지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불법 촬영이라는 군 측의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군대 내 사망사고시 군 당국의 잘못된 처리 관행에서 발단된 것임을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하고 국방부장관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재발 방지 등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는데, 이에 대한 군 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고 김병민 이병은 지난해 11월 27일 사망했다. 월 외박을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날이었다. 군 당국으로부터 김병민 이병이 자살을 했으니 사인을 규명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가족들의 충격과 슬픔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군 의문사 사건의 실체 속으로 그들은 한 순간에 빨려들고 만 것이다.

가족들은 다음날 오전 10시경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람들과 함께 사고 부대로 가서 군 관계자로부터 사건 개요를 설명 듣고 현장 검증이 실시되는 것을 보았지만, 김병민 이병이 19층 아파트에서 스스로 떨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증거품을 하나라도 확보하기 위해 군 측과의 협의 하에 비디오 촬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유가족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초동 수사권을 가진 군 수사관 측에서 아직 결과 발표를 하지 않은 단계라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빌미도 제공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선지 현재 말을 아끼고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상식이 기준이 되는 문명 시대의 민주 국가에서 왜 같은 것을 보고도 군 측과 유가족 측이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고 또 그것을 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 겨루기를 해야 하는지, 그 상황의 속내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누구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육감적인 두려움 같은 것도 느끼고 있다고 그들은 실토한다.

군대 내의 갖가지 폭력을 비롯하여 군 의문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사안이 아니다. 우리 군의 역사와 함께 그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대책이 참으로 시급하다.

우선 대통령이 군대 내 폭력과 의문사를 근절할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군대 내 사고사에 대한 수사 체제를 보완 개선하고, 군 측이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하는 군의 '규정'들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도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사고사에 대한 수사 책임을 전적으로 군 수사기관에만 일임하지 않고, 유족들이 동의할 수 있는 선으로 확대 개편하여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군대 내에 '생명문화'를 진작시키는 일이다. 조악한 표현으로 전쟁과 살상이 목적이고 규율이 생명인 군대라 할지라도 자칫 빠져들기 쉬운 생명 경시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군대문화와 생명문화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능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직업 군인들은 진정한 명예를 생각해야 한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며, 현실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진실 쪽에 서려는 떳떳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 부대 내에서 사고사가 발생하면 사고의 명확성을 엄밀히 가려 책임을 지려는 양심적인 자세가 진정한 군인 정신의 표상일 것이다. 혹여 자리와 출세 지향에 연연하여 면피를 해 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면 군인으로서의 기상을 오염시키는 짓일 것이다.

한 병사의 죽음이 의혹에 싸여 끝내 자살로 처리된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 혼백은 영원히 구천을 떠돌 것이다. 참으로 억울한 죽음일 수도 있음을 감안하여 모든 '자살자'들에게도 군인 신분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유가족들의 노력에 의해, 그리고 법원까지 동원되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비록 '자살자'의 씻을 수 없는 불명예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군 복무에 투신한 사람에 대한 응분의 보상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군 의문사/군 폭력' 문제에 대해서 정치인들이 깊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특히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이들―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김용갑 의원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열의를 보여 주기 바란다. 그래야 징병제의 나라에서 자식들을 군에 보내지 않은 것과 북한에 대한 전투적인 태도들이 좀더 떳떳해질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이런 바람을 갖는 것은 나와 내 형제들 모두 군대를 다녀온 처지이고, 장차 내 자식과 조카들도 모두 군대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 의문사/군 폭력' 문제를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는 이 가혹하고도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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