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신과 더불어 씨름하는 사람들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2.04.08 10:48수정 2002.04.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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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동전쟁의 영웅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영웅의 이미지로 부각되어 있을 샤론은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고 싶은가 보다. 지금 나는 연일 외신이 전하는 그곳 소식을 접할 때마다 머리속에 팀 버튼 감독의 새로운 '혹성탈출'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먼 옛날 생명으로 푸른 지구를 발견한 인간들은 사라져 버렸다. 지금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곳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원숭이들이다. 우리가 바로 원숭이다. 우리에게는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없다.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을 빌면, 원숭이들에게 원숭이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란 말이야, 라는 것이다.


물론 아라파트에게는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연일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팔레스타인 테러 세력을 통제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라파트가 사라진다고 해서, 또 이스라엘의 정보력과 군사력이 테러세력 제거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고 해서 싸움은 끝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열 번 중에 여섯 번은 자기만 죽을 뿐인 자살테러의 살상력이 조만간 획기적으로 향상되리라고 생각한다. 샤론의 사고방식으로는 평화의 시기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 두 대가 돌진하던 순간을 우리는 잊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무서운 까닭은 많은 인명과 재산이 희생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 그처럼 우리 상상력을 뛰어넘는, 믿을 수 없는 살상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나는 부시의 '평화' 유지 능력을 믿을 수 없다. 샤론 같은 '테드'('혹성탈출'의 원숭이 장군)가 선사하는 '평화'의 약속을 나는 신뢰할 수가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와 같은 무분별한 폭력이 야기하는 뜻밖의 지구 종말 시나리오가 더 믿음직스럽다.

지구는 21세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문명의 종말을 고할 것이다. 왜 그러겠느냐고 테드가 물으신다. 언제, 어디선가, 증오의 핵폭탄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터지고 말테니까. 지금 우리가 바로 원숭이의 투쟁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이름은 '신과 더불어 씨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서 나는 나찌즘의 잔악상에 몸을 떨고 무고한 유태인들의 죽음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오늘의 샤론이 어제의 히틀러가 아니라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옛날 '성문종합영어'라는 참고서에 수록되어 있던 어떤 영문이 생각 난다. 아니, '종합독문해석'이었던가? 인간이 만약 상어라면 신은 상어의 형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인간이 원숭이라면 신은 원숭이의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신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살상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들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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