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탄생, 감사와 기쁨 속에는 눈물도 ②

(축시)새 신부님의 서품을 축하하며

등록 2003.01.17 07:55수정 2003.01.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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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15일에 있은 '방영훈(도미니꼬 사비오) 새 신부 첫 미사·경축행사'는 태안천주교회 유사 이래로 가장 규모가 큰 행사였다. 천주교의 사제 탄생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실감시켜 주는 모습이었다.


태안교회를 거쳐가신 10분의 역대 주임신부님들과 보좌신부님들 중에서 작고하신 분과 자국으로 영구 귀국하신 외국인 신부님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오셨다. 우리 교회의 첫 번째 배출 신부님은 물론이고, 인근 교회의 다수 신부님들과 새 신부의 가까운 선배 신부님들도 여러분 오셨다. 여기에다 새 신부의 후배 신학생들이 10여 명이나 참석했다.

(천안 입장교회의 정지풍 신부님은 우리 교회와 관련이 있거나 인근 교회 신부님이 아닌데도 오셨다. 너무 뜻밖이었고, 개인적으로 무척 반가웠다. 정 신부님은 16년 전의 내 결혼식에도 오셨던 분이기에….)

태안교회를 거쳐가신 20여 분의 수녀님들 중에서도 서울 인천 등지에서 많은 수녀님들이 오셨다. 14일의 서품식장에서도 우리 본당을 거쳐가신 많은 수녀님들을 볼 수 있었는데, 14일 서품식장에 오지 못한 수녀님들은 거의 모두 15일 행사에 참석하신 것 같았다.

이웃 서산의 동문·석림·해미·대산·운산교회와 우리 태안교회의 분리 본당인 안면교회에서 온 다수의 신자들도 볼 수 있었다. 한결같이 새 신부의 첫 미사에 참례하고 새 신부로부터 안수를 받고자 하는 신심 깊은 신자들이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지역사회의 많은 인사들과 친지들도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신자가 아닌 분들도 줄잡아 500명 정도는 오셨을 것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지역사회에 널리 알리고 잔치 규모를 크게 준비하는 데는 내 역할도 없지 않았다. 원래 방영훈 새 신부는 신부 되는 일이 무슨 벼슬을 하는 것도 아니니 너무 거창하게 준비하지 말라고 하면서 소규모 잔치를 희망했다. 그래서 새 신부의 아버지 방성능 씨는 아무런 일도 계획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인 그에게 일반 혼사(婚事)와 같은 규모로 잔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3년 전 첫 신부가 탄생할 때도 일을 주선하고 치른 경험이 있는 나는 본당 사목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번에도 일반 혼사와 같은 규모의 잔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우리 본당의 '40주년행사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내년의 40주년 행사와 새 성전 축성 봉헌식 행사를 겸하여 치러야 할 중책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본당 신자들의 행사 역량 제고도 생각하고 싶었고, 지역에서 토박이로 오래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웃 친지들의 애경사에 열심히 부조해 온 친구 방성능 씨의 넉넉지 못한 형편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내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본당 사목회의는 행사를 큰 규모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에 따라 초대장을 500장 정도 만든 나는 방성능 씨와 몇 명 동창 친구들과 함께 하루종일, 또 밤늦게까지 봉투 쓰기 작업을 해서 천주교 신자가 아닌 지역 인사 친지 수백 명에게 초대장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천주교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천주교의 사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고, 천주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사제 탄생'이 얼마나 의미 있고 중대한 일인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실로 간절했다.

(여기에서 사사로운 얘기 하나. 나는 올해 태안문학회장과 충남소설가협회장이라는 두 개의 짐을 벗으려고 한다. 그리고 올해는 태안천주교회의 '40년사'를 집필하고 발간하는 작업에 몰두하려고 한다. 또 내년에는 '새 성전 축성 봉헌식을 겸한 4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치러야 한다. 그에 따라 아직 소설 집필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여전히 잡문만 쓰고 있다. 내년 봄으로 예정되어 있는 태안천주교회 초유의 최대 행사를 치르고 나면, 나는 모든 짐을 벗고 남은 생애를 오로지 소설 작업에만 몰두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향에서의 '탈출'도 불사할 생각이다.)

초대장 제작과 발송 작업, 행사 당일에 신자들과 손님들께 나누어 드릴 안내장을 만드는 일을 하고, 새 성전 건축 준비 관계로 썰렁하고 산만한 성당 뜰을 정지 정리하고 비닐 하우스와 천막을 설치하는 일을 거들면서 나는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은 본당 신부님의 부탁으로 새 신부의 첫 미사 후에 갖게 될 축하식 자리에서 낭송할 '축시'를 짓는 일이었다.

천주교 신자 작가인 덕에 나는 모든 글을 쓸 때마다 성호를 긋고 '봉헌의 기도'를 바친다. 아마 그래서 야한 이야기와 악의 이야기를 잘 쓰지 못하는 약점과 한계를 극복치 못하는 지도 모른다. 하여튼 천주교 신자에게는 '사제 탄생'이 참으로 귀하고 중대한 일이기에, 이번 축시를 지으면서는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백화산 등산을 하고 묵주기도를 하면서 시상을 고르기도 했지만, 시간도 많이 걸렸다.

시를 지으면서, 이렇게 가면 새 사제를 울리는 일이 아닐까, 새 신부가 너무 많이 울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참으로 많이 고심했다.

행사는 1부 미사, 2부 축하식, 3부 축하연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새 신부의 첫 미사 광경은 참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새 신부의 주례를 도와 무려 20여 명의 사제들이 한 자리에서 미사를 공동 집전하는 광경은 실로 우리 본당 초유의 일이었다. 13년 전에도 비슷한 광경이 있었지만 그때보다 참석 사제들이 더 많을 것은 당연지사.

강론은 현재 대전 가양동교회 주임으로 계시는 백성수(시몬)님이 해주셨다. 그분이 새 신부의 '아버지 신부님'이시기 때문이었다. 천주교에서는 본인을 신학교에 가게 만든, 다시 말해 신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주임신부를 '아버지 신부'라고 부른다.

우리 교회의 제10대 직전 주임이셨던 백 신부님은 강론 초두에 '아버지 신부'의 공을 현 주임 김종기 신부님과 10년 전에 보좌신부였던 정운광 덕산교회 주임신부님께 돌렸다. 김종기 신부님이 새 신부의 신학교 생활을 잘 도와주신 것에 대해, 그리고 정운광 신부님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새 신부의 영성을 발견하고 신학교에 가도록 이끌어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백 신부님은 인터넷 웹상에 오르는 내 글도 종종 보시는 듯 최근의 글 「홀로 '결혼 기념일'을 지내며」의 한 대목을 슬쩍 소개하기도 했다. 내가 겨울방학 연수로 공주에 가 있는 아내와 결혼 기념일에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사제 탄생' 경축 행사를 준비하는 일과 축시를 지어야 하는 일 때문이라고 한 말에서 백 신부님은 감동을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 말에서 '사제 탄생'을 대하는 신자들의 마음과 전반적인 교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방여훈 새 신부는 '영성체 후 묵상'을 마친 시간에 참석해 주신 신부님들을 한 분 한 분 신자들에게 소개했다. 신자들은 감사의 박수를 보내면서 과거의 주임신부님들께는 더 크게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사 후 '파견성가'를 부르는 동안 제의실에서 제의를 벗고 나온 신부님들은 제대 앞에 옮겨진 의자에 일렬로 않았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는 사회자의 호명을 받고 제의를 입은 채로 나온 방영훈 새 신부님이 앉았다. 제2부 축하식이 시작된 것이었다.

축하식은 남녀 어린이들의 화환과 꽃바구니 선물, 새 신부의 작고하신 어머니의 친구들이 주축인 성모회의 꽃다발 선물, 신자들의 '기도'들을 적은 김용순 사목회장의 영적 선물, 나의 축시 낭송과 성가대의 축가, 그리고 새 신부 후배 신학생들의 축가로 이어졌다.

그 다음에 새 신부가 답사를 했는데, 방영훈 새 신부는 자신은 울지 않는다고, 어젯밤에 실컷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의 눈물을 보면서 아무래도 내 축시 낭송이 좀더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몃 죄스러워지는 마음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신학생 시절에 한두 달씩 몽골에도 가서 봉사 체험을 하는 등 외국 선교 쪽에도 관심이 많고 사회의 어두운 곳에 대한 관심도 많은 듯한 새 신부가 좀더 사회적이고 활동적인 사제가 되기를 빌었다. 교회의 울타리 안에만 안주하지 않는, 사회적 관심이 많은 뜨겁고 강한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내 축시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인터넷 매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이 상황, 오늘의 '인터넷 세상'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깊이 감사한다.

15일의 태안천주교회 행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한다. 방영훈 새 신부님의 첫 미사에 참례하고 축하식 후에 새 신부님으로부터 안수를 받은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가정에 아름다운 평화가 길이 머물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고 뒷마무리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협력해 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하며 영원히 변치 않을 축복을 드린다.

나는 축시 낭송을 하기에 앞서 원래는 작업이 비교적 수월한 '축사'를 지을 생각이었으나 본당 신부님의 특별 부탁으로 축시를 지었음을 밝혔다. 참으로 고귀한 자리에서 낭송할 축시를 짓도록 허락해 주시고 돌보아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오르간으로 좋은 배음을 선사해 주신 김혜숙(로사)님께도 감사한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방영훈(도미니꼬 사비오) 새 신부님의 서품을 축하하며


성교회의 태안땅 복음 전파 47년
사제 상주 본당 연륜 39년
은총과 영광의 40주년을 일년 앞둔 오늘
13년만에 두 번째 사제를 배출하는
태안땅 믿음골의 영마루에서
빛나는 환희의 눈망울과 힘찬 기상을 봅니다

한 명의 사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성소의 은총을 지키고 가꾸려는
신앙공동체의 눈물 어린 기원과
사랑의 보살핌이 필요했기에
마침내 거둔 탐실한 결실을 보며
모두 함께 나누는 감사와 기쁨 속에서
다시 한번 신앙의 고귀함을 봅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신앙의 고귀함 속에서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방영훈 새 사제의 지난
10년 세월의 각고를 생각해 봅니다

그 어느 해 처음으로 수단을 입을 때는
평생토록 육신을 버려야 하는
그 비장한 중압감이
한 순간 칠흑 같은 슬픔으로 변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겠지요

또 그 어느 해 하얀 로만 칼라를 착용하고
거리에 나설 때는
독신의 정결을 상징하는 그 순백의 표상이
한 순간 아득하고 허허로운 느낌을 안겨 주어서
고독에 대한 가없는 예감으로
허공을 부유하듯
남 모르게 마음 떠돈 날도 있었겠지요

사제 서품식이 진행되던 그 거룩한 시간
주님 앞에 엎드려
정결과 청빈과 순명을 고백할 때는
평생 동안 지고 가며 붙잡고 매달려야 할
주님의 십자가가
한 순간 눈물 속에서 어른거리기도 했겠지요

마침내 신품성사의 인호를 받고
저 바다에 던질 그물을 메고 서서
수많은 축하 꽃다발에 둘러싸일 때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미소를 머금고 서 있는 모습도
한 순간 허공 속에서 보였겠지요

또 그 큰 기쁨 속에서도
외아들 처지에 홀로 된 아버지께
며느리와 손주들을 안겨 드리지 못하는
세속의 슬픔과 죄스러움도 한 가닥
가슴 한켠을 에며 지나갔겠지요

새 사제 방영훈 신부님
한 떨기 순결한
성소의 꽃으로 피어난 오늘
감사와 기쁨과 보람을 한아름 끌어안고
당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신자들의 눈망울에서
새로운 기원을 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에 붙잡혀
세상을 버린 당신의 어깨에 걸메어져 있는
크고 무거운 그물을 봅니다

그 그물이 바로 당신의 십자가임을
더불어 주님의 크신 은총임을 잘 알기에
그 수많은 그물코들에는
우리 태안땅 믿음골의 모든 눈들이
가지런히 달려 있습니다

40년 세월 동안에 겨우 두 번째 얻은
귀한 성소의 꽃이기에
저 먼 훗날에도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태안땅 신앙공동체의 가족 모두는
매일매일 당신의 그물코가 되고자 합니다
당신의 어깨에 걸메어져 있는
주님께서 주신 그물이 늘 푸르고 싱싱하도록
당신의 그물코 하나하나에
우리의 기도가 매어져 있을 것입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03년 1월 15일, 방영훈 새 사제 첫 미사 봉헌 후 축하식에서 지요하 막시모 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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