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서랍 속에 남아있는 다섯 권의 앨범과 졸업장

등록 2003.02.27 08:36수정 2003.02.2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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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교무실은 어수선합니다. 새로 맡은 부서로 자리를 옮기느라 북새통이 따로 없는 교무실 풍경이 그렇거니와,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새 아이들을 다시 맞이하는 담임 교사들의 마음 속 풍경 또한 어수선합니다. 남는 장사를 했는지 셈을 해보는 마음에는 언제나 충족감보다는 서운함이 더 크게 자리합니다.

이즈음에는 뼈빠지게 농사를 짓고도 별 소득도 없이 다음 농사를 준비해야하는 농부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니, 그보다는 뼈빠지게 농사를 지었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에서 깨어나는 겸연쩍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이 부정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바로 이 무렵의 일입니다.

그런 쓸쓸한 생각을 동무 삼아 먼지구덩이 교무실에서 서랍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밝는 목소리로 아는 체를 합니다. 돌아보니 현미가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손에 음료수 상자를 들고 서 있습니다.

"그냥 오면 어때서?"
"그래도…"
"너, 혼자 왔니?"
"서희는 급한 볼일이 있다고 해서요."

서희(가명)가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눈이 교무실 문 쪽으로 갔습니다. 정말 오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물론 서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망한 눈길을 돌리다가, 혹시 급한 볼일을 끝내고 늦게라도 온다는 말인가 싶어 물었더니 '아니오'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 이건 졸업장이고, 이건 3년 개근상, 그리고 앨범."
"선생님, 서희 것도 주세요."
"왜? 너보고 가져 오라든?"
"예."
"오늘 꼭 온다고 했는데…"

저는 잠깐 망설이다가 서희의 졸업장을 앨범 사이에 끼어 현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현미도 사실은 다른 친구를 통해 졸업장과 앨범을 전해 받으려고 했다가 저에게 꾸지람을 듣고 학교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제 책상 서랍에는 다섯 권의 앨범과 졸업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현미처럼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고 친구를 시켜 졸업장과 앨범을 가져가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제가 허락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순간의 쓸쓸함을 아이들은 모르겠지요.

교사에게 가장 고역스러운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제자들에게 사랑의 법을 가르쳐 줄 때입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 자체가 고역스럽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어쩔 수 없이 교사 자신이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자를 위한 교육적인 배려라고 해도 마음에서 솟아나지 않는 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어쨌든 괴로운 일입니다. 알량한 사랑을 주고 그것을 되받으려는 것 같아서 염치가 없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사랑만이 이웃과 더불어 자기 행복의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기초가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런 말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교과서 같은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시대에 무슨 한가한 사랑 타령이냐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사랑을 현실 개념으로 이해하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자기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는 현실적으로 불행합니다. 돈으로 그 불행을 완전하게 메우지는 못합니다. 학문을 사랑하지 않는 학생은 현실적으로 불행합니다. 적어도 하루 8시간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만큼은 지겹고 따분할 것입니다. 대학도 대학이지만 그 지겨움과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공부에 취미를 붙여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아이들의 눈빛이 조금은 달라집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만 하는 학생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은 성적 때문이었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지식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학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만약 끝까지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나 사랑이 유발되지 않는다면, 그러고도 공부를 계속해야한다면 그는 분명 불행한 사람입니다.

돈과 출세만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현실의 삶 속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불행한 사람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입시교육입니다. 아이들이 지식을 사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학교가 해야할 일입니다.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손가락질은 하면서도 사춘기 시절 사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는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나와서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교육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수동적인 공부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발적인 능력과 영혼의 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효력을 잃고 마는 죽은 지식으로는 교육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500억을 주면서 대신 죽을 때까지 책을 보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을 내세운다면 그 돈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저 해보는 말이겠지 하고 피식 웃고 있는 아이들에게 저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500억을 받으면 가장 사고 싶은 것이 책입니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있지만 한 때는 용돈이 궁해서 시집 한 권을 사기가 쉽지 않았어요. 허리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두 달 동안 병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고, 하루는 병원 갈 돈으로 서점에 가서 시집을 샀지요. 시집 30권을 아내 몰래 그렇게 사서 두 달 내내 읽었어요.

그 두 달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사람들이 돈을 버는 거잖아요. 저는 책을 보면 행복해지는데 돈을 500억을 주면서 책을 못 보게 한다면 그 돈은 이미 가치가 없는 돈이지요. 공부도 그래요. 공부를 통해서 자기를 가꾸고 개발하는 그 맛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요. 책도 인내심이 없어도 쉽게 넘어가는 책은 읽고 나면 허망하잖아요."

물론 이런 말에 금방 아이들이 넘어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긍은 하는 눈치입니다. 쉽게 넘어가는 책이 허망하다는 것은 자신들이 더 잘 아니까요. 삶의 방향을 정해 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매일 같이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에 대하여, 돈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왜 공부를 해야하는 지 그 이유에 대하여,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별 것 아닌 듯한 소박한 말도 방향이 올바르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교실붕괴를 호소하는 시대지만 저는 지금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사랑의 효력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열번을 토합니다.

"제가 여러분 사랑하면 누가 행복하지요? 여러분도 행복하지만 제가 더 행복해요. 제가 만약 교사로서 학문을 사랑하지 않고 또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는 불행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 사랑하지 않는데 여러분이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하겠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한 교사가 행복하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랑도 어느 순간 접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담임의 사랑은 시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년이 바뀌어지면 다음 담임에게 사랑의 역할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서희의 졸업장과 앨범을 직접 전해주지 못하고 현미에게 건네주면서 저는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접었습니다.

한 번 더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 접었습니다. 3학년 담임은 영원한 담임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겠다 싶어 접었습니다. 좀 더 피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접었습니다. 더 큰 사랑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고 접었습니다. 주는 사랑이라도 독점은 금물입니다.

사랑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바로 사랑을 접는 그 순간 사랑은 단련됩니다. 사랑이 아이들을 향해 있지 않고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치면서 사랑은 단련됩니다. 실패 속에서 사랑은 단련됩니다. 아직도 책상 서랍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다섯 장의 졸업장과 앨범을 바라보면서 사랑은 단련됩니다. 사랑에 반응하지 않은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사랑은 단련됩니다.

a 길가에 핀 개불알풀

길가에 핀 개불알풀 ⓒ 안준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작년에 피어 있던 자리에 그대로 들꽃들이 피었습니다. 일년생 들꽃이라면 아마도 새로이 핀 꽃들이겠지요. 이제 새 학기가 되면 작년에 아이들이 앉아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새 아이들이 와서 앉아 있을 것입니다. 못다 나눈 사랑이 있다면 새로이 핀 아이들과 나누면 좋을 것입니다. 곧 만나게 될 얼굴 모르는 아이들이 벌써부터 그립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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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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