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마르지 않는 ' 물찻오름'

제주의 오름기행1

등록 2003.07.13 17:56수정 2003.07.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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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요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a 숲속에는 길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밟고 가면 길일 뿐

숲속에는 길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밟고 가면 길일 뿐 ⓒ 김강임

첫 오름 답사에 나섰던 나에게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은 숲 속에서 길을 안내해 주었다.

'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그 길이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시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곤 했다.

a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혼의 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혼의 샘 ⓒ 김강임

언젠가 인터넷 창에서 보았던 '물찻오름' '산정분화구'의 비경은 가슴속에만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선뜻 찾아 나서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망설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일의 짜투리 시간은 참 애매하다. 지난 6일, 랫만에 그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남편과 함께 '물찻오름'의 비경을 담아 오기로 했다. 망설임을 접고 찾아 나선 '물찻오름' 답사는 너무 험난하였다. 4. 7Km의 비포장 도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쌩쌩 달리던 승용차는 왜 이리도 더디 달리는지 모르겠다.

제주는 30만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한라산이 만들어 졌고, 한라산 기슭에는 잔여 에너지에 의해 오름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설화는 치미폭에 흙을 날라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의 오름에 대한 전설이다. 설문대할망은 치마가 너무 낡은 것이어서 듬성듬성 구멍이 났는데, 그 구멍사이로 흙이 조금씩 떨어져 368개의 오름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러나 또 하나 제주의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제주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오름 주변에는 마을이 형성돼 있어 오름에 밭을 일궈 곡식과 목축생활로 삶의 터전이 형성되고 있다.

a 4.7Km의 비포장 도로를 달린 뒤 타이어는 펑크가 나고

4.7Km의 비포장 도로를 달린 뒤 타이어는 펑크가 나고 ⓒ 김강임

'물찻오름'은 물이 괸 못이라고 하며 물이 있어 물+찻(잣에서 유래)한 숲으로, 서쪽으로는 한라산, 동쪽으로는 교래리의 광활한 조명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주 동쪽 젓줄이라는 '물찻오름'. '물찻오름'은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바다만을 동경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또 하나의 관심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a 물찻오름 표지판과 지팡이 두개

물찻오름 표지판과 지팡이 두개 ⓒ 김강임

4.7km의 비포장 도로 끝에는 인위적으로 세워진 '물찻오름' 이라는 오름표지판이 새워져 있었다. 표지판 앞에는 누군가가 놓고 간 지팡이 두개가 다소곳이 놓여져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지팡이 하나가 얼마나 힘이 되는가? 이렇게 남을 위해 친절을 베푼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름 모를 꽃과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중간지점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이 거대한 검은 숲 속에선 하늘이 없었다. 다만 청초하게 피어있는 하얀 꽃과 나무 하늘을 찌를 듯 빼곡이 들어선 숲 사이에 길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길은 갈래갈래 나뉘어져 본인이 선택해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같다.

a 기묘하게 쌓아올린 돌무덤

기묘하게 쌓아올린 돌무덤 ⓒ 김강임

정말 이 우거진 숲 속 정상에 호수가 있을까?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숲 속에서 지저귀는 산새들의 합창소리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누군가가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무덤은 탑을 연상케 한다. 돌 하나를 주워 정성을 모은다. 그리고 이쯤해서 꼭 잊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는 것이다.

얼마쯤 올랐을까. 앞서간 남편이 환호성을 올린다.

a 하늘나라 선녀가 다녀간 듯 산정호수엔 고요가 흐르고

하늘나라 선녀가 다녀간 듯 산정호수엔 고요가 흐르고 ⓒ 김강임

"정상이다."
"정말 호수가 있어요?"
" 올라와 보면 알아."


항상 한발 치 앞서 약을 올리는 남편은 여기서도 장난기가 발동한 것이다.

숲으로 검게 덮여 있는, 그래서 검은 오름이라 부르는 그 오름의 정상에는 장마를 몰고 오는 구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찢어진 구름사이로 햇빛이 내려앉았고, 그 햇빛아래에는 백두산의 천지처럼 산정호에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것은 비경이었다.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울창한 숲은 신록과 녹음이 교차했다. 산정호수는 이제 막 하늘나라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끝내고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고요했다.

a 숲속 끄트머리 분화구엔  호수가

숲속 끄트머리 분화구엔 호수가 ⓒ 김강임

기생화산인 산정화구호는 꽤 깊으며, 붕어 개구리 물뱀 등 습지식물들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테우리(목동)들이 목을 축이기도 하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혼의 샘으로도 불린다.


가뭄에는 물이 더 깊어 간다는 물찻오름의 정상 둘레는 1km. 산등성이에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한바퀴를 돌면 하늘의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기분이다.

아스팔트만 달리던 승용차는 물찻오름을 다녀온 뒤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정상에서 본 산정화구호의 신비는 비경 그 자체였다.

'물찻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제주공항- 5.16도로- 견월악( kBS 송신소)- 교래리- 1km 지점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 4.7km의 비포장도로- 왼쪽입구로 들어서면 표지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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