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곧 역사다"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의 <빵의 역사>

등록 2003.07.31 06:48수정 2003.07.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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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가 죽음을 맞는 전쟁터는 기념하면서, 번영의 터전인 논밭은 비웃는다. 역사는 왕의 서자 이름은 줄줄이 꿰고 있지만 밀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이다." -앙리 파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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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com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의 야심찬 저서 <빵의 역사>의 본문으로 들어가는 길의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앙리 파브르의 이 글은 의미심장하다. <동물기>와 <곤충기>로 유명한 앙리 파브르가 이러한 글을 남겼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의 역사가 잘못 기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덧없이 죽어간 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조금도 위로하지 못하는 평화조약의 체결일은 그렇게도 잘 알면서도,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던 수많은 목숨을 살려낸 감자가 페루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날짜는 왜 알지 못하는가?

또 지구를 전멸시킬 수도 있는 원자폭탄의 최초 시험일은 그렇게도 잘 기억하면서도, 빵 생산의 혁신을 가져 온 물레방아의 최초 가동일에 대해서는 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가?

<빵의 역사>는 이렇게 역사의 무대 뒷전으로 밀려난 농업과 농부들을 전면으로 불러내어 역사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복권시키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과 생각을 구하기 위해 20여년 동안 4천권이 넘는 책을 참고해야만 했다고 적고 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써야 했으니 오죽 했겠는가!

그의 이러한 수고는 1944년 이 책의 출간 당시 언론에서 보여준 찬사로 충분히 보답을 받았다. 즉 <시카고 선>지는 “이 책은 빵과 밀의 ‘황금가지’이다”라고 평했으며,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빵의 역사라는 거대한 서사를 통해 야콥은 세계사를 개괄했다”고 호평했다. 또 <뉴욕 타임즈>지는 “이처럼 일반 독자들에게 철저한 학문적 고증을 제시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빵의 역사>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이 책이 처음 출판되고 나서 60년이 지나 다시 복간되었는데도 책에 담긴 내용이나 그 안에 스며있는 저자의 통찰이 시대에 전혀 뒤떨어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까지 이렇게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이다.

그럼 야콥이 <빵의 역사>에서 빵과 밀을 통하여 개괄하고 있는 세계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선 그는 “빵은 종교다”라고 말한다. 빵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이집트인들이 숭배했던 나일강의 신, 그리스의 엘레우시스교도들이 비밀스러운 의식으로 찬양했던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여신, 그리고 “먹어라! 내가 곧 빵이니라”라는 말로 로마 제국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로 파고든 예수 그리스도, 심지어는 멕시코의 아즈텍족들이 인신공양을 바치며 숭배했던 풍요의 여신조차도 모두 곡물, 즉 빵의 신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모든 종교는 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또한 “빵은 정치다”라고 말한다. 이집트에서 빵은 파라오의 통치의 수단이었으며, 거대한 로마 제국이 무너진 것은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빵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은 “우리에게 빵을 달라!”는 당시의 성난 민중들의 외침이 보여주듯이 자유가 아니라 빵이었다.


그러나 빵의 위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역사의 현장은 바로 전쟁터였다. 나폴레옹의 패배와 독립전쟁에서의 미국의 승리는 바로 “승리는 밀 줄기 위에 열린다”라는 진실을 여지없이 증명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은 미국의 총과 대포와 폭탄이 아니라 그들이 전쟁터에 함께 가지고 간 밀가루 포대였다.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병사들의 위장이며 따라서 빵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역사상의 모든 전쟁은 예외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빵은 필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기근에 시달리던 유럽에 대규모로 식량을 지원하는 구제활동을 총지휘했던 허버트 후버의 말처럼 “세계의 평화는 빵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빵을 희구하는 인류의 소망이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야콥은 또한 “빵은 과학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밀가루를 만들어내는 물레방아를 ‘문명의 이정표’라고 부르는 이유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준 선물이 쇠로 만든 낫이었다는 이야기를 단순한 신화가 아닌 바로 인류의 역사에 대한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이유 모두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빵과 과학 기술의 만남이 항상 밀월 관계였던 것은 아니어서 중세라는 과학기술의 암흑기에는 유럽은 극심한 기근을 경험하게 된다. 유럽이 오랜 기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신대륙의 발견으로 복잡한 농경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새로운 곡식들(옥수수와 감자)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면서부터이다.

수 세기에 걸친 경작으로 그 생명력을 잃게 된 토양을 되살리기 위해서 근세 유럽에서는 리비히 등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농화학이 발달하게 된다. 반면에, 너무나 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던 신대륙,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토양의 질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직 필요한 것은 노동력이었다. 인간의 노동력을 수십, 수백 배 절감할 수 있는 수확기와 파종기, 콤바인 등의 농기계들이 매코믹을 필두로 하는 농기계학자들에 의해서 미국에서 발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은이 소개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Heinrich Eduard Jacob, 1889-1967)은 베를린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문학, 철학, 음악, 역사를 공부했으며 오스트리아의 빈 등에서 유럽의 주요 일간지의 수석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집단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아내와 미국인 삼촌 덕분에 미국시민권을 얻어 1939년에 석방되었다. 그후 미국에서 저술 활동을 하면서 생활하다가 오스트리아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예술과 과학 분야의 지식을 두루 갖춘 20세기의 대표적인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손꼽히며, 그가 남긴 책들은 평전, 시, 소설, 역사,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40여 권에 이른다.

주요 저서로는 <빵의 역사>를 비롯해서 <요한 스트라우스>, <멘델스존과 그의 시대>, <모차르트>, <커피, 그 상품화의 서사>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빵의 역사>는 그가 필생의 역작으로 손꼽는 저서로서, 1944년 처음 출간되었으나 최근 그 진가를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서 번역, 소개되고 있다.
이렇듯 6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중인 미국에 이르기까지의 종교와 정치와 전쟁과 과학 기술의 진보를 빵을 통해서 논하고 있는 <빵의 역사>의 장대한 서사는 거침이 없고 또한 그 눈길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그래서 <빵의 역사>는 ‘빵의 역사’를 논하기 보다 ‘빵은 곧 역사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 역사에는 쌀 문화권인 동양이 배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6000년이라는 세월을 서구인들과 나란히 걸어온 빵을 추적하기 위하여 20여 년에 걸쳐 4천 권이 넘는 책들을 섭렵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빵의 역사>는 출판의 역사에 있어 하나의 기념비로 세울 만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빵의 역사 - 빵을 통해 본 6천년의 인류문명, 개정판

하인리히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
우물이있는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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