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산신이 있는 천태산 영국사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26) 충북 영동 천태산 영국사

등록 2003.11.14 09:29수정 2003.11.1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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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여름 우기라도 만나면 쏟아지는 폭포가 장관이겠으나 가을 가뭄 탓에 겨우 폭포의 명맥만 유지하는 듯 하다. 한 때는 목까지 차 오르던 소(沼)의 깊이도 겨우 무릎을 적실 정도다.

한여름 우기라도 만나면 쏟아지는 폭포가 장관이겠으나 가을 가뭄 탓에 겨우 폭포의 명맥만 유지하는 듯 하다. 한 때는 목까지 차 오르던 소(沼)의 깊이도 겨우 무릎을 적실 정도다. ⓒ 임윤수

인간들은 자칫 교만해 지기 쉽다. 조금만 높은 위치에 서게 되면 그 교만함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있는 권세 없는 권세 다 동원하여 허풍 떨고 자신을 과신하며 한 끗발 행사하려 부단히도 애들을 쓴다.

내 것 조금 버리면 다 얻을 수 있음을 모르고 작은 것에 집착하는 이런 저런 사는 모습들이 곧 내 모습이려니 생각하니 씁쓸함을 떨굴 수 없다. 내 치부 가리기 위해 야합하는 떼거리들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니 여유 없는 마음 탓에 심사가 뒤틀린다.


인간의 몸뚱이는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함에도 그 몸뚱이를 치장하느라 가산탕진하고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니 우매함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며 한 평생 살면서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며 기고만장해 하는 것이 인간이다.

좋은 인연만 맺고, 좋은 말, 좋은 일 그리고 사랑만 하여도 모자랄 짧은 인생을 시기하고 음해 하느라 다 소비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작은 진리를 실천치 못해 탐재로 망가지고 악연 맺기에 짧은 인생 다 탕진하니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마다 걸음마다 이런 생각을 떨구지 못한다. 이런 생각 또한 무상한 번뇌일진대 이 번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니 몸뚱이 있는 곳에 그림자 있듯 한 평생 함께 할 업보인가 보다.

a 영국사를 찾아가는 길옆 철조망엔 각처 등산객들이 남겨놓은 형형색색의 표식이 만국기처럼 빼곡하게 걸려 바람에 팔랑대고 있다.

영국사를 찾아가는 길옆 철조망엔 각처 등산객들이 남겨놓은 형형색색의 표식이 만국기처럼 빼곡하게 걸려 바람에 팔랑대고 있다. ⓒ 임윤수

무성했던 잎새들이 철 지나니 단풍들고 찬바람 맞아 모든 잎새 떨구니 발가벗은 나무들이 늦가을 정취를 물씬하게 한다. 자연에 순응하여 다 떨어진 잎새와 달리 억척스레 가지에 남은 한 둘 잎새가 측은해 보인다. 관점과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존재의 미련과 아집을 거두지 못한 탐욕쯤으로 보여진다.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따라가며 눈으로 주워담는 늦가을 풍경은 그런 그림을 가슴속에 그리고 있다. 영국사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한적한 도로로 접어드니 얼마 가지 않아 널찍한 주차장이 나온다.


영국사는 노국 공주와 고려 공민왕의 애틋한 사랑과 구국기도의 지성이 전설로 서린 곳이기도 하지만 많은 보물과 천연기념물 233호로 지정된 수령 1300년 된 은행나무가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일제시대에 작성된 자료를 근거로 수령이 600년이니 700년이니 하지만 실제의 수령은 1300년은 되었을 거라는 게 나무 근처의 바위에 암각된 기록등을 근거로 마을 사람들의 주장이니 수령을 1300년으로 소개한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이 다 나름대로 특색 있지만 찍어낸 듯 같게 하는 느낌의 공통점도 있다. 영국사를 찾아가는 길도 그랬다. 온통 기암인 주변산세에서 범상치 않은 느낌이 그랬고 휘휘 늘어진 고목의 가지에서 느끼는 눈 맛과 안정감이 그랬다.

a 천연기념물 233호로 지정된 수령 1300년 된 은행나무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에 작성된 자료를 근거로 수령이 600년이니 700년이니 하지만 실제의 수령은 1300년은 되었을 거라는 게 마을 사람들 주장이다.

천연기념물 233호로 지정된 수령 1300년 된 은행나무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에 작성된 자료를 근거로 수령이 600년이니 700년이니 하지만 실제의 수령은 1300년은 되었을 거라는 게 마을 사람들 주장이다. ⓒ 임윤수

울퉁불퉁한 돌 틈새 길이 그렇고, 동무하듯 함께 하는 계곡의 물소리가 그랬다. 첩첩 쌓인 푸른 산이 부처님의 도량이고, 맑은 하늘 흰 구름은 부처님 발자취라 하더니 영국사를 오르는 길이 꼭 그렇다. 대자연의 고요함이 부처님의 마음이며, 들려오는 자연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라 더니 영국사 오르는 길의 물소리 바람소리가 바로 그런 듯 하다.

손때 묻은 맷돌만큼이나 깔끔한 바윗돌이 촘촘한 진입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산길 삼거리가 나온다. 그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쌓은 이 알 수 없고 그 크기 알 수 없는 정성들이 만들어낸 돌탑들을 치장으로 두고 있는 삼신바위가 나온다. 쭈글쭈글한 바위가 영락없이 삼신할머니의 얼굴이다.

아들 하나 점지 해 달라 올린 누군가의 지성이 담겨 있고, 아직도 그 정성이 남아 있을지 모를 삼신바위를 지나니 삼단폭포가 나온다.

한여름 우기라도 만나면 쏟아지는 폭포가 장관일 듯 하나 가을 가뭄 탓에 겨우 폭포의 명맥만 유지하는 듯 하다. 한 때는 턱까지 차 오르던 소(沼)의 깊이도 겨우 무릎을 적실 정도다.

입구에서부터 이곳 폭포까지는 필자가 많은 추억을 담고있는 곳이다. 학창시절 큰돈들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에 당일 MT로 친구들과 떼를 지어 찾아오곤 하였던 단골장소가 이곳이다. 지금이야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고 입장료도 받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밥을 해 먹고 번개탄에 철망 놓고 삼겹살쯤 구워먹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그런 곳이었다.

a 다산(多産)의 상징이며 맏며느리로 갖추어야 할 덕목중의 하나로 후덕함이 연상되는 그런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 영국사 은행나무다. 바닥에 수북한 은행잎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다산(多産)의 상징이며 맏며느리로 갖추어야 할 덕목중의 하나로 후덕함이 연상되는 그런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 영국사 은행나무다. 바닥에 수북한 은행잎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 임윤수

우쭐대는 맘에 주량 넘긴 술을 이기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넓은 바위 골라 흐트러진 자세로 벌렁 누워 잠 한숨 자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을 만큼 인적 드물고 조용한 곳이었다.

자연그대로의 계곡으로, 제한된 여건에서 젊음을 발산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놀며 쉴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일년에 몇 번씩은 찾아오던 곳이다. 미끄럼 타듯 내려오던 물줄기가 낭떠러지라도 만나면 하얀 물방울을 만들다. 그럴 때 재수 좋으면 부채 펴듯 만들어진 고운 무지개 다리도 볼 수 있던 그런 곳이다.

폭포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폐침목을 몽탕 잘라 가지런히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길 위로 길이 만들어질 만큼 가파르고 구불구불하지만 오르막 길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거나 체중이 나가는 사람이면 이쯤에서 이마에 맺힌 땀을 한 번은 씻어야 할 듯 하다.

고갯길 올라서니 휴∼하는 안도의 숨과 함께 눈앞이 탁 트인다. 영국사는 분지형태의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언덕을 오르면 논도 있고 밭도 있다. 길옆 철조망엔 영국사에도 분명 들렸을 각처 등산객들이 남겨놓은 형형색색의 표식이 만국기처럼 빼곡하게 걸려 바람에 팔랑대고있다.

a 땅에 내려앉은 가을 좀더 구경하라는 듯 경내 마당엔 떨어진 빨강단풍이 그대로 있다.

땅에 내려앉은 가을 좀더 구경하라는 듯 경내 마당엔 떨어진 빨강단풍이 그대로 있다. ⓒ 임윤수

저만치 앞에 속절없는 세월에 잎새 떨궈 가지 앙상한 큰 은행나무가 보이고 그 뒤로 영국사가 보인다. 그리고 영국사 뒤편으로 높지 않지만 결코 낮다 할 수 없는 천태산이 외호하 듯 버티고 있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서기 668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가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으며, 고려 고종 때는 금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대습을 피해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가피(加被)를 입게 되어 절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로 고쳤다 한다. 영국사엔 대웅전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채가 있고 몇 분 거리 안에 계월암(桂月庵)이 있을 뿐이다.

올라선 언덕에서 마을 어귀 돌 듯 둥글게 굽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도랑을 건너게 되고 커다란 은행나무 밑을 지나게 된다. 이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된 보호수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경기도에 있는 용문산 용문사에도 있고, 영국사에서 멀지 않은 금산 보석사에도 있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싱겁도록 삐죽 키만 자랐다면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볼륨감 있는 여인네 몸매를 닮은 잘생긴 나무다.

a 따뜻하게 느껴지는 노란색 요사채 벽과 가지 앙상한 나무가 깊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노란색 요사채 벽과 가지 앙상한 나무가 깊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 임윤수

다산(多産)의 징후이며 맏며느리로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하나로 후덕함이 연상되는 그런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 영국사 은행나무다. 장정 대여섯 명이 팔을 벌려야 감싸 안을 굵기의 나무는 2m쯤 높이에서 동서방향으로 25m, 남북방향으로 22m쯤의 가지를 무성히 벌렸고, 그 볼륨감으로 수형(樹形)을 이루고 있으니 가히 맏며느리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그 생김새만 눈길을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아주 독특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서쪽으로 뻗은 가지 중 하나가 아래쪽으로 자라 땅에 뿌리를 내렸고 여기서 다시 새 나무가 솟아올라 어른 허벅지만큼의 굵기에 7m 이상의 높이로 자라고 있다.

본 나무와 가지가 뻗어 다시 솟은 은행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굵고 거칠지만 두툼해진 나뭇결에서 풍상의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 텁텁한 피부가 느껴진다. 넘어질라 다칠세라 손자를 보듬고 있듯 그늘 드리워 비바람에 보호하고 있는 은행나무의 모양세가 영락없이 손자를 안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수북히 쌓여 뿌리로 돌아갔다 내년쯤 새 잎으로 다시 자라날 샛노란 은행잎이 윤회를 생각케 하고 솜이불처럼 푹신한 느낌과 따스함을 주니 각박한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1300여년 동안 한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각양각색의 행태를 지켜보았을 나무 아래에 서니 왠지 자신이 작게만 느껴짐도 감출 수 없다.

누각아래 통과하니 천태산을 배경으로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땅에 내려앉은 가을을 좀더 구경하라는 듯 경내 마당엔 떨어진 빨강단풍이 그대로 있다.

a 영국사 맞은편에 있는 망탑봉엔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애틋한 사랑과 구국기도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듯 하다.

영국사 맞은편에 있는 망탑봉엔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애틋한 사랑과 구국기도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듯 하다. ⓒ 임윤수

대웅전에 참배하고 누각에 편히 앉아 공민왕과 노국 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영국사의 전설을 스케치하듯 머릿속에 펼쳐본다.

고려시대, 홍건적의 침입으로 송도를 빼앗긴 공민왕은 왕비인 노국 공주와 조정의 육조 대신들과 함께 남으로 가던 피난길에 현재의 영국사가 있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을 지나게 되었다.

석양이 곱게 물들고 산새도 집을 찾아드는 해질녘, 인적 드문 계곡어디에선가 '데∼엥 뎅' '데∼엥 뎅'하고 장엄하며 아름다운 범종소리가 울려왔다. 불심 돈독한 공민은 행차를 멈추게 하고 말에서 내렸다.

피난길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그 종소리가 처량하게 들렸고 가슴에 너울처럼 불심을 일궜다. 왕은 대신들에게 그 종소리가 어디서 울리는 소리인지 알아보도록 하였다.

분부를 받은 신하들은 그 종소리가 멀지 않은 국청사에서 울려오는 소리며, 국청사는 신라 진평왕 30년 원광법사가 창건한 절로 대각국사 의천 스님께서 천태교학을 강하고 교선일치를 설파한 절임을 아뢰었다.

부하들의 보고를 받던 공민왕은 대각국사가 주석했던 국청사로 가서 위기에 처한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을 서원하는 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국청사로 가려고 한다.

a 천태산 75m 직상승 암릉에서 바라본 영국사 전경이다. 연노란색을 띤 은행나무의 풍만함이 보인다.

천태산 75m 직상승 암릉에서 바라본 영국사 전경이다. 연노란색을 띤 은행나무의 풍만함이 보인다. ⓒ 임윤수

그러나 국청사가 있는 마니산 쪽으로 가려면 큰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가마를 메고 강을 건너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지만 종소리가 울리는 절에서 기도하고 싶어하는 왕의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여 신하들은 지혜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결국 신하들은 강의 양쪽에 누대(樓臺)를 짓고 밧줄로 임시 다리를 놓게된다. 주변에 흐드러진 굵은 칡넝쿨과 가죽을 섞어 튼튼한 밧줄을 꼬아 강 양쪽을 밧줄로 연결한다.

다리가 놓아지자 왕이 탄 가마를 밧줄에 매달고 가마를 끌어당겨 일행은 무사히 강 건너 국청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 누대를 높이 세우고 다리를 놓았으니 이 강 마을은 지금도 누교리라 부르며 육조대신이 쉬었다 하여 육조동이라고도 부른다.

국청사에 도착한 왕은 왕비인 노국 공주에게 옥새를 맡기며 절 건너편 망탑봉과 마주한 봉우리에 왕비를 기거케 했다. 그 봉우리는 오르는 길이 험해 누구든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공민왕은 노국 공주를 하루도 보지 않고서는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보고싶음을 달래기 위해 평탄치 않은 봉우리를 매일 오르내리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왕은 소가죽을 이용하여 망탑봉과 왕비가 있는 봉우리를 왕래할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놓게 했다.

다리를 완성하고 왕은 육조 대신들과 함께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백일기도에 들어갔고 왕비도 처소에서 나라의 안녕을 서원하며 부처님께 간곡히 기도하였다.

a 천태산의 살아 있는 산신령 배상우 어르신이 설치한 로프는 코스 안내의 보시며 구원의 실천이었다. 로프를 이용하여 몸이 불편한 어린이도 어른들 부축을 밭으며 산을 오르고 있다.

천태산의 살아 있는 산신령 배상우 어르신이 설치한 로프는 코스 안내의 보시며 구원의 실천이었다. 로프를 이용하여 몸이 불편한 어린이도 어른들 부축을 밭으며 산을 오르고 있다. ⓒ 임윤수

왕비의 안위가 걱정되고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처소를 찾을 때마다 간곡히 기도하는 노국 공주의 간절한 모습에 왕은 감탄하며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왕과 왕비가 지극 정성으로 올리던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밤, 왕비는 꿈에 대각국사를 만나게 되고 '부처님께서 왕비의 극진한 기도에 감응하시어 오랑캐를 물리쳐 주실 것이니 왕과 왕비는 오랑캐가 쳐들어온 곳을 바라보면서 염주를 한 알씩 돌리라'는 환청같은 전언을 듣게 된다.

꿈속이지만 왕비는 북쪽을 바라보며 대각국사로부터 건네 받은 염주를 열심히 돌리니 염주 알을 돌리 때마다 홍건적이 한 놈 한 놈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고 북쪽을 바라보며 열심히 염주를 돌리니 어느덧 홍건적을 다 물리치게되었다. 감응의 기쁨을 감추지 못해 왕의 손목을 덥석 잡는 순간 왕비는 꿈에서 깨어났다.

기도를 끝내고 돌아 온 왕에게 왕비는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왕은 꿈이 예사롭지 않은 길몽이라고 기뻐하며 정세운을 총지휘관으로 명하며 홍건적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개경을 포위하고있던 홍건적들은 한파와 폭설로 더 이상 쳐들어오지 않았고 진지에서 해이해져 방비가 허술함을 탐지한 정세운은 그날 새벽 사방에서 일제히 적을 공격하는 기습작전으로 홍건적을 물리쳤다.

a 천태산! 높지 않은 산이지만 결코 낮은 산도 아니다. 천태산이 낮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곳곳에 스며든 전설과 실천적 산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천태산! 높지 않은 산이지만 결코 낮은 산도 아니다. 천태산이 낮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곳곳에 스며든 전설과 실천적 산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 임윤수

반격은 물론 혹시나 하는 의구심조차 갖지 않을 만큼 고려의 군사력을 얕보던 홍건적은 아닌 밤중의 기습공격에 혼비백산하여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도주하다 대부분 얼어죽었다 한다. 졸지에 당한 반격에 살아서 압록강을 건너간 홍건적은 몇 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승전으로 태평성세를 맞은 공민왕은 부처님의 가피에 불심이 더욱 깊어진다. 노국공주와 함께 환궁을 서두르던 공민왕은 국청사 부처님의 큰 보살핌으로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고 평국안민(平國安民)케 되었다 하여 절 이름을 국청사에서 '영국사(寧國寺)'로 바꾸게 하였다고 한다.

영국사 오른 쪽에 있는 옥새봉은 그 때 왕비가 거처하며 옥새를 무사히 보관한 곳이라 하여 옥새봉이라 불리게 되었고, 노국공주를 애틋하게 사랑하던 왕의 발길을 대신하여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영국사에는 보물 533호인 3층 석탑이 경내에 있고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 535호)과 원각국사비(534호) 그리고 부도(532호)등 4점의 보물이 있다.

영국사를 외호하고 있는 천태산엔 살아있는 산신이 있다. 천태산에 살아있는 산신은 바로 양산면 가곡리에서 금호약방을 경영하고 있는 배상우씨로 나이가 70이 훨씬 넘은 어르신이다.

배상우씨는 18년 전부터 부지기수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천태산 곳곳을 구석구석 뒤져 등산코스를 개발하고 암릉 곳곳에 자비로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안내도를 비치하였다. 천태산을 찾으면 75m 직상승 암벽을 타게되는 짜릿함도 맛보게 되는데 이 코스는 물론 다른 코스를 포함한 곳곳의 로프와 안내판엔 배상우씨의 산 사랑과 인간사랑이 진하게 배어있다.

18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천태산을 찾아 인간들의 교만함이 남긴 흔적 치워 산 달래고, 뭇 사람의 안전을 지켜내니 이이가 바로 천태산에 살아있는 산신령이 아닐런가. 배씨는 오늘도 낡은 로프를 교체하고 보수하기 위해 산엘 오르시니 커다란 보시를 베풀러 가시는 길이 틀림없다.

너럭바위에 가부좌 틀고 명상에 잠겨 본다. 바람소리, 가을냄새, 모아졌다 흩어지는 구름 속 인연들 이런저런 소리와 허상들이 귓가에 맴돌고 눈앞에 아롱댄다. 눈뜨고 다시 둘러보니 저 아래 영국사에서 국태민안을 염원하던 노국 공주와 공민왕의 불심이 전이되듯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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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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