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조화를 위한 남근석인가?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30)-월악산 덕주사

등록 2003.12.12 09:11수정 2003.12.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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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덕주골에서 800m정도 올라가면 덕주 산성이 나온다. 이 덕주루가 덕주사의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 하다.

덕주골에서 800m정도 올라가면 덕주 산성이 나온다. 이 덕주루가 덕주사의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 하다. ⓒ 임윤수


월악산(月岳山)은 삼팔선 이남에서 두 번째 가라하면 서러울 정도로 험준한 산세를 가지고 있다. 한 번이라도 올라본 사람은 알겠지만 코스에 마련된 수많은 철제 계단들은 차라리 사다리라고 해야 어울릴 정도로 곧추세워져 있다.

일행이라도 있어 바짝 줄을 서서 오르게 되면 자칫 앞사람의 엉덩이에 머리나 코를 부딪히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만큼 가파른 경사가 몇 군데나 된다.


월악산의 월(月)자는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음양(陰陽)으로 볼 때 음에 속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월악산은 음기가 강한 산이라고도 해도 될 듯 싶다. 뜬금 없이 음양을 이야기하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한문 더덕더덕한 서책이 연상될지 모른다. 그리고 막연하게 고리타분한 이야길 하려나 보다하고 피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음양은 엄연히 존재한다. 남자와 태양 그리고 불과 낮이 양(陽)이라면 여자와 달 그리고 물과 밤은 음(陰)에 속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니 뭐니 하면 우선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곰팡이 핀 삿갓이나 곰방대쯤을 떠올리는 경우가 흔 할텐데 음양의 조화가 없이는 잉태도 있을 수 없고 존재와 현상(現象)이란 자체가 존재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a 덕주사 대웅전 앞쪽에 불끈 솟은 남근석 4기가 남아 있다. 그 형상이 원만하지 않고 많이 훼손되었지만 남근석임은 분명하다. 음양의 균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지성을 올리던 대상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덕주사 대웅전 앞쪽에 불끈 솟은 남근석 4기가 남아 있다. 그 형상이 원만하지 않고 많이 훼손되었지만 남근석임은 분명하다. 음양의 균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지성을 올리던 대상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 임윤수


그러기에 음양은 표현하는 방법과 용어만 다를 뿐 현대과학과 물리현상을 설명하는데도 빠트릴 수 없는 근거이며 해법이다. 먼저 음양오행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기본으로 하여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으며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내포되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인들이 입발림처럼 기회 있을 때마다 써먹는 '상생의 정치'란 말도 결국은 오행의 상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듯하다.

목, 화, 토, 금, 수 5자로 삼라만상의 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하니 코방귀를 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억지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디지털이란 것도 알고 보면 0과 1의 반복 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5자를 반복 조합하여 삼라만상을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에 수긍하게 될 듯싶다.


a 불사되어 많은 세월은 흐르지 않은 듯 대웅보전의 단청이 산뜻하다.

불사되어 많은 세월은 흐르지 않은 듯 대웅보전의 단청이 산뜻하다. ⓒ 임윤수


월악산은 그 험준한 산세나 우뚝한 영봉의 형상으로 보아 양기의 산일 듯 한데 산명에 왜 음을 뜻하는 월(月)자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면 월악산의 뒤가 되는 수산리 쪽에서 관망하여야 할듯하다.

산 내부에서는 울퉁불퉁한 남성의 근육질 같은 양기를 느끼게 되지만 수산리에서 바라보는 월악산은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형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거리를 걷다보면 돗자리를 펼쳐놓고 두툼한 안경을 쓴 할아버지들이 소위 관상(觀相)을 봐 준다거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봐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상이나 사주팔자는 모두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일이다.

관상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드러난 외형을 근거로 운명을 이야기하며, 사주팔자는 외형과 상관없이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근거로 운명을 점치는 일이다.

a 산 그림자에 덮인 관음전이 한적해 보이고 마당의 감로수가 갈증을 달래 줄 듯 하다

산 그림자에 덮인 관음전이 한적해 보이고 마당의 감로수가 갈증을 달래 줄 듯 하다 ⓒ 임윤수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데 생김새와 상관없는 사주팔자와 생김새로 말하는 관상법이 있는 것처럼 산의 기를 구분하거나 명당자리를 찾을 때도 '형기론'과 '이기론'이란 방법이 있다.

풍수에서는 산을 음으로 보고 물을 양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산이 무조건 음이라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따라 음인 산이 양도 될 수 있다. 그 예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63층 빌딩의 중간쯤인 30층이 1층보다는 높지만 63층보다는 낮다는 이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갈 듯도 싶다. 즉 30층이 63층에 비하면 음이 되지만 1층에 비하면 양이 되는 원리다.

형기론은 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산세나 형태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며, 이기론이란 오행에 근거하여 산이 자리한 방향(坐向)과 시간 등을 세분하여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관상은 기가 막히게 좋으나 사주팔자는 영 엉망일 수 있듯, 외형으로 판단하는 산세가 좋다고 오행을 근거한 이기까지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으니 딱히 한 가지만을 가지고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양과 음을 주장 할 수는 없겠다.

a 자연 암벽사이에 조성된 산신각엔 조각된 산신상이 모셔져 있으며, 여느 절들의 산신각과는 다른 분위기다.

자연 암벽사이에 조성된 산신각엔 조각된 산신상이 모셔져 있으며, 여느 절들의 산신각과는 다른 분위기다. ⓒ 임윤수


하여튼 높이가 1097m나 되는 영봉(靈峰)을 주봉으로 하고 있는 월악산은 산명(山名)에 음에 해당하는 월(月)자가 사용되고 있으니 그 연유를 알려면 백두대간의 전체적 흐름과 좌향을 좀더 자세히 보아야 좀더 구체적인 답과 설명이 나올 듯 하다.

일부에선 이와 상관없이 '달이 뜰 때면 장대처럼 우뚝 솟은 영봉에 그 달이 걸린다'하여 '월악'이라는 이름을 붙었다고도 한다.

월악산을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렀으며, 후백제 때 견훤(甄萱)이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다.

그런 월악산, 산세와 험준함이 근육 좋은 남성미를 연상케 하고, 떠오르는 달이 걸릴 듯 우뚝 솟은 월악산엔 신라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의 애환이 담긴 덕주사가 있다.

그 덕주사 대웅전 앞쪽엔 음양의 조화를 위한 것인지,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던 염원과 간절함이 담긴 대상물의 흔적인지 불분명 하지만 어느 절에서도 보기 힘든 4기의 남근석이 절 입구에 꼿꼿하게 서 있다.

a 고드름 주렁주렁 달린 바위 밑에 벌통이 보인다. 한여름 열심히 일해 꿀을 제공해 주던 벌들도 동안거에 들어간 듯하다.

고드름 주렁주렁 달린 바위 밑에 벌통이 보인다. 한여름 열심히 일해 꿀을 제공해 주던 벌들도 동안거에 들어간 듯하다. ⓒ 임윤수


덕주골에서 넉넉하게 포장된 진입로를 따라 800여m쯤 올라가면 산문을 대신 할 듯한 덕주루를 왼쪽으로 하여 개울 같은 계곡물을 건너게 된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좌측으로 덕주사 전각들이 나온다. 불사되어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은 듯 단청이 또렷하다. 왕년의 규모를 복원하려는 듯 여기 저기에 장기불사 계획을 가늠케 하는 안내표시가 보인다.

전각의 전체적 배치는 산길을 따라 길쭉한 一자 형태로 늘어져있다. 대웅보전을 기준으로 하여 영봉으로 가는 오른쪽으로 약사전과 관음전, 종무소, 요사채 등이 차례로 있으며 끝 쪽에 부도전이 있다.

대웅전 좌측으로는 대불정능엄신주비와 산신각이 있다. 약사전은 전방이 개방된 목조 전각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으며 산신각은 자연암반 사이에 조성되어 있어 여느 산신각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마애불과 영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대웅전 앞쪽에서 계곡물을 건너는 산길을 따라야 한다.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서기586)에 창건되었으며 당시에는 월형산 월악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신라 경순왕이 천년 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내준 뒤 그 왕의 첫째 딸인 덕주공주가 이 곳에 들어와 높이 13m의 거암에 마애미륵불(보물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친 뒤부터 산 이름이 월악산이라 바뀌어 불리고, 절 이름도 덕주사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a 한겨울 산사의 좋은 국거리가 될 시래기가 탁 트인 창고에서 말려지고 있다.

한겨울 산사의 좋은 국거리가 될 시래기가 탁 트인 창고에서 말려지고 있다. ⓒ 임윤수


덕주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미륵리 석불입상과 월악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엔 덕주공주가 오빠인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인 경덕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져 있다.

아버지인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망국의 한을 안고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하고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게 된다.

일행은 그곳에서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그 날 밤 마의태자는 관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관음보살은 왕자에게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西天)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며,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億兆蒼生)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니 포덕함을 잊지 말라"고 현몽하였다 한다.

잠에서 깨어난 마의태자는 꿈이 너무 신기하여 누이동생인 덕주공주를 불러 간밤에 꾼 꿈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놀랍게도 같은 시각에 공주 역시 그와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a 덕주사에서 1.5km를 더 올라가게 되면 마애불이 있다.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오누이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조성하였다 한다.

덕주사에서 1.5km를 더 올라가게 되면 마애불이 있다.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오누이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조성하였다 한다. ⓒ 임윤수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 생각하고 두 남매는 계곡 물에 목욕재개 하고 서쪽 하늘을 향해 합장배례 한 뒤 다음날 서쪽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된다. 일행이 서쪽으로 가며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고개마루턱 큰 바위에 한 권의 황금빛 포경문(布經文)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일행은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며, 최고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를 찾아 석불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다.

공주는 그대로의 삶, 불사에 전념하며 구도의 길을 걸음에 만족하였으나 왕권을 계승하지 못하여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마의태자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태자는 동생인 덕주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초지(初志)를 굽히지 않고 금강산을 향해 떠난다.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져 혈혈단신이 된 공주는 출가하여 절에 몸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의 애틋한 부정을 그리워하고 오빠인 태자의 건승을 서원하며 일평생을 살았다 한다.

덕주사에서 다시 1.5Km쯤 더 걸어 올라가면 높이가 15m쯤 되는 커다란 바위에 암각 된 마애불이 있으니 이 마애불이 바로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오누이가 조성한 것으로 이곳을 상 덕주사라고도 한다.

a 월악산 영봉! 눈앞에 있는 듯 하지만 뒤로 돌아 사다리 같은 계단을 올라가려면 1시간  쯤은 더 올라야 한다. 하기야 신령을 만날 수 있는 영지에 오르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월악산 영봉! 눈앞에 있는 듯 하지만 뒤로 돌아 사다리 같은 계단을 올라가려면 1시간 쯤은 더 올라야 한다. 하기야 신령을 만날 수 있는 영지에 오르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 임윤수


마애불에서 2시간쯤 걷다보면 오르게 되는 영봉(靈峰)은 말 그대로 신령스럽다. 정상인가 하고 올라서면 저만치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덩어리 산이 다시 보이니 그곳이 영봉이다.

능선에서 올려다 보이는 벼랑 위 영봉은 코앞인 듯 싶지만 영봉은 아직 멀었다. 신령스런 곳이니 만큼 마음을 더 청정할 기회라도 가지라는 듯 1시간쯤은 더 고행하는 산행을 감수해야 오를 수 있다.

최고봉을 영봉이라고 부르는 산은 백두산과 월악산뿐이라고 한다. 산기와 천기가 만나고 사람과 신령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 듯한 그런 곳이기에 월악산 최고봉은 영봉이라 부르고 있는 듯 하다.

대웅전 입구에 세워져 있는 남근석은 월악산 기가 음기가 강한 탓에 양을 북돋아 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풍수상을 세운 것인지 아니면 남아선호사상이 짙었던 예전의 토속적 신앙에서 파생된 대상물이 남아 있는 것인지를 한 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절 앞에 꼿꼿하게 서 있는 남근석을 보게되는 것은 산사를 찾는 또 하나의 별 다른 맛을 찾게 해준다.

a 영봉에서 굽어본 충주호와 산하는 아름답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비록 신령도 만나지 못하고 얻고자 하는 지혜의 단초도 얻지 못했지만 겨울산하를 한눈에 담았으니 자족하여야 할듯하다.

영봉에서 굽어본 충주호와 산하는 아름답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비록 신령도 만나지 못하고 얻고자 하는 지혜의 단초도 얻지 못했지만 겨울산하를 한눈에 담았으니 자족하여야 할듯하다. ⓒ 임윤수


산세의 기에도 음양의 균형을 맞추며 상생 위한 상생을 고민하였던 조상들의 지혜와 처세가 절실할 때가 요즘 아닌가 모르겠다. 수의 불균형에서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작금의 정치판이 음의 기가 강해서라면, 기의 균형을 위해 어떤 형상으로 양기를 북돋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그 형상은 다름 아닌 검찰이라는 조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민심인 듯 하다.

공멸로 가는 무조건적 상극보다는 공생으로 가는 절제된 상극, 공멸로 가는 무조건적 상생보다는 공생으로 가는 조화로운 상생의 지혜를 얻는 단초라도 얻고자 하나 오늘도 가슴엔 겨울 산사의 찬 공기만 가득 채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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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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