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된 호두나무는 광덕사 사천왕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44)-태화산 광덕사

등록 2004.03.23 09:07수정 2004.03.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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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여행을 좋아해도 배 쫄쫄 곯아가며 할 수는 없다. 여행의 한 재미가 특정지역에서만 생산되거나 만들어지는 독특하며 맛난 음식을 먹어보거나 기념품을 소장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좀 아쉬운 얘기지만 오늘날 국내 여행지엔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독특한 특산물이나 기념품은 거의 없다. 설악산 기념품이나 서귀포 어느 곳에 있는 기념품이나 다 비슷비슷한 걸 취급하니 정말 유별나고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기념품이 별로 없다는 게 큰 아쉬움이며 관광산업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한 분야다.


a 한파를 이겨낸 산사주변 나무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산사 찾는 마음을 한결 밝게 해준다.

한파를 이겨낸 산사주변 나무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산사 찾는 마음을 한결 밝게 해준다. ⓒ 임윤수

기념품이라고 해야 대개 똑같은 형태에 관광지명만 달리한 것들이다. 거기다 웬만한 것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인쇄되어 있다. 6∙25땐 인민군이 인해전술로 밀려들더니 이젠 공산품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대개의 사람들이 '싼 게 비지떡'이라고 중국산이 질은 떨어지지만 값은 싸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요즘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원자재 파동의 한 가운데 있는 선철이란 것은 중국산이 질은 떨어지면서도 가격은 국산의 거반 두 배에 가깝게 거래되고 있다. 하여튼 중국산이 싼 것만은 아니니 명심할 일이다. 인해전술처럼 밀려드는 중국산에 대한 장기적 대비책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자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차 한 대쯤 소유한 자가용 시대지만 여행은 아무래도 기차여행이 제 맛이다. 안전하기도 하지만 도로의 막힘이 없고 이런저런 편리점이 많은 게 기차여행이다. 추억을 더듬고 낭만을 찾는 사치스런 생각은 차치하고라도 차에 연결된 식당도 있고 용무를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으니 아무리 장거리를 가더라도 크게 불편할 게 없다.

a 천안호두과자란 명성에 어울리게 광덕사 주변은 온통 호두나무다. 호두과수도 있고 가로수도 호두나무다.

천안호두과자란 명성에 어울리게 광덕사 주변은 온통 호두나무다. 호두과수도 있고 가로수도 호두나무다. ⓒ 임윤수

차내를 반복해 오가며 군것질거리를 팔기도 하고 구역 별 별미를 팔기도 하니 여행지별 특산품이나 요리를 맛 볼 수도 있다. 거기다 재수 좋게 호감 가는 말벗 이성이나 입담 좋은 사람과 동석하게 되면 세상 돌아가고 사람 사는 얘기를 덤으로 들을 수 있으니 횡재하는 여행이 된다.

먹을 게 풍부해져 그런지 입맛이 달라져 그런지 지금은 그 맛도 많이 달라지고 의미도 퇴색됐지만 기차간이나 잠시 멈추는 역에서 먹었던 먹거리들은 맛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그 맛을 그립게 한다. 대전역은 가락국수로 많은 여행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단 몇 분 동안에 게눈 감추듯 먹어야 했던 가락국수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시간에 쫓겨 그랬는지 후루룩 마시듯 먹어대니 제대로 맛을 음미한다 할 수 없으니 정말 맛이 있어서 맛있다고들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국물에 담긴 굵직한 국수에 몇 조각 함께 나오던 노란 단무지가 맛있다고들 한다.

기차여행뿐 아니라 천안을 말하면 먹거리 중엔 제일 먼저 호두과자가 연상된다. 사실 천안 호두과자는 천안에서 판매되는 이런저런 먹거리 중 꽤나 유명하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호두과자를 씹다보면 팥소와 함께 들어있던 고소한 호두가 아사삭 씹힌다. 호두과자란 상품에 '천안'이라는 이름이 붙으니 천안엔 호두나무가 많을 듯하다.


a 광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엔 '태화산광덕사'란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이 있다.

광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엔 '태화산광덕사'란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이 있다. ⓒ 임윤수

그러나 천안을 둘러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시내 어느 곳을 보아도 호두나무는 쉽게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마치 붕어 없는 붕어빵을 보는 듯한 그런 기분일지 모른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안시내를 조금 벗어나 광덕산 쪽으로 가면 호두과자가 왜 '천안호두과자'인지 알게된다.

천안하면 언뜻 떠오르는 또 다른 것은 '천안삼거리'와 '흥타령'에 나오는 능수버들이다. 천안을 수시로 들락거려도 정작 천안삼거리를 모르거나 들르지 않은 사람들이 꽤나 많다. 천안삼거리에 들리지 않았으니 능수버들도 봤다 할 수 없다.

옛부터 삼남(三南:충청, 전라, 경상)의 요로였던 천안삼거리는 민요 '흥타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옛날처럼 번성된 모습을 요즘은 찾을 수 없지만 전라도 고부 고을 선비 박현수와 기생 능소와의 애틋한 사랑이 얽힌 전설은 천암삼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능수버들의 유래를 잘 말해준다. 요즘처럼 봄이 시작되면 어느 나무들 보다 먼저 녹색을 띠며 휘휘 타령춤이라도 추듯 가지를 늘이는 능수버들엔 능소와 관련 된 아픈 전설이 있다.

옛날 홀아비 한 명이 능소라는 어린 딸과 가난하게 살다 변방의 군사로 뽑혀가게 되었다 한다. 그는 변방으로 가다 천안삼거리에 이르러 더 이상 어린 딸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막에 딸을 맡겨 놓는다.

a 광덕사 보화루는 호두나무에 걸려있다. 이 호두나무가 국내 최고령호두나무다.

광덕사 보화루는 호두나무에 걸려있다. 이 호두나무가 국내 최고령호두나무다. ⓒ 임윤수

홀아비는 딸 능소(綾紹)에게 '이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다시 너와 내가 이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라며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은 뒤 홀로 떠났다. 어린 능소는 이곳에서 곱게 자라 기생이 되었는데 미모가 뛰어난데다 행실이 얌전해 그 이름이 인근에 널리 알려졌다. 이때 마침 과거를 보려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가 주막에 들렸다 능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박현수는 그후 장원급제하여 삼남어사를 제수 받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이곳에서 능소와 다시 상봉하자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 하고 춤을 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변방의 군사로 나갔던 능소 아버지도 별탈없이 돌아와 곱게 성장한 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경사가 아닐 수 없어 잔치가 벌어지니 그곳에서 흥타령이 시작되었다 한다.

천안삼거리 공원엔 유달리 버드나무가 많다. 이렇게 버드나무가 많은 것은 능소와 헤어질 때 능소의 아비가 꽂았던 버드나무 지팡이가 자라서 퍼진 것이라 한다. 천안삼거리에 휘휘 가지를 느리고 있는 버드나무들은 이래서 능소버들 또는 능수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흥타령'으로 유명한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이 휘휘 늘어진 천안삼거리를 지나 대전 쪽으로 조금 더 가면 남부순환도로가 나온다. 남부순환도로를 따라 아산방향으로 가다보면 광덕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풍세를 지나 광덕엘 가보면 호두과자에 왜 '천안'이란 지명이 붙는지 이해가 간다.

a 여타 절들의 사천왕처럼, 신장처럼 광덕사 입구에서 그 오랜 동안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았을 호두나무야말로 성불한 불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타 절들의 사천왕처럼, 신장처럼 광덕사 입구에서 그 오랜 동안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았을 호두나무야말로 성불한 불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임윤수

그곳에 있는 나무들은 온통 호두나무다. 호두나무가 과수로 밭을 이루고 있으며 가로수는 물론 개울둑에 심어진 나무들조차 크고 작은 호두나무다. 큼지막하고 오래 된 듯한 나무들은 대개가 호두나무다.

호두는 마치 복숭아(桃)처럼 생긴 것을 중국 호(胡)나라에서 가져온 데서 호두(胡桃)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호두의 원산지는 대개 중국으로 생각하나 이란이 원산지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호두는 고려 말 충렬왕 때 고향이 천안인 류청신(柳淸臣)이란 역관이 사신들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 돌아오며 3그루의 묘목과 5개의 종자를 가져옴으로 국내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가져온 묘목과 종자를 고향인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 부근에 심고 파종하니 천안은 국내 최초의 호두 생산지가 주산지가 되었다.

봄기운 완연한 일요일, 천안 근교에 있는 광덕산을 찾는 길엔 사랑방 댓돌 위에 놓여진 신발들처럼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시골집 사랑방 댓돌엔 신발이 떨어질 날이 없다. 동년배 지기들이 모여 뭐든지 나누던 곳이 바로 사랑방이다. 예고된 경사의 기쁨을 나누고 갑작스레 찾아온 환난이나 애사의 기쁨을 나누고 달래던 곳이 사랑방이다. 혼담이 오가고 소리 없는 풍문이 오가는 곳도 역시 사랑방이니 민심과 여론의 집합소며 생산지이기도 한곳이 사랑방이다.

a 맞배지붕 형태의 대웅전과 삼층석탑이 봄볕에 정갈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맞배지붕 형태의 대웅전과 삼층석탑이 봄볕에 정갈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임윤수

천안사람들에게 있어 광덕산은 사랑방쯤 되는 모양이다. 늘어선 차 대부분이 충남 번호 판을 달고 있다. 동년배끼리, 가족끼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산을 오르고 계곡을 내려온다. 아직 가지뿐인 호두나무 사이로 원색의 등산복들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인다. 사랑방을 찾듯 광덕산을 찾아든 사람들이다.

주차공간이 없어 한참을 올라가 길모퉁이에 겨우 주차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도랑에 이어진 논두렁이다. 개울에 몸담고 있는 버들강아지는 이미 허연 수염처럼 활짝 피어있다. 버들강아지 사이를 나비가 나풀대고 벌들이 윙윙거린다.

올랐던 길 다시 내려와 주차장 앞에서 계곡 따라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성급한 사람들은 이미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물이 차가울 텐데 발을 담근 사람도 있다. 몇 걸음 들어가니 '태화산광덕사(泰華山廣德寺)'란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지나게 된다.

공주에 있는 마곡사 말사인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흥덕왕 때(832년)에 진산화상이 중건했다는 고찰이다. 아산시와 천안시의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699.3m) 동남쪽, 태화산(455.5m) 서남쪽 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다.

a 삼층석탑 뒤로 지장보살과 열시왕을 봉안한 명부전이 보인다. 명부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삼층석탑 뒤로 지장보살과 열시왕을 봉안한 명부전이 보인다. 명부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 임윤수

일주문을 지나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비구니암자인 '안양암'이 나온다. 안양암을 지나며 바로 극락교를 통해 계곡을 건너게 된다. 극락교 정면으로 2층 구조의 보화루가 보이고 보화루 앞에 고목인 듯한 커다란 한 그루 나무가 있으니 이 나무가 국내 호두나무의 최고령 목으로 알려진 광덕사 호두나무다.

극락교를 건너 보화루로 들어서는 계단 우측에 있는 호두나무는 땅에서 올라온 1m쯤서 V자 형태로 가지를 뻗었다. 밑동의 굵기는 어른 서너 아름은 족히 되며 벌어진 가지의 굵기도 한 아름으로 끌어안기는 어림도 없다. 4∼500년으로 추정하는 나무의 두꺼운 껍질이 마치 군살 박힌 시골노인의 손을 닮았다.

보화루를 나들며 합장하는 신도들에게 답례라도 하듯 가지 하나는 아예 허리를 굽힌 양 입구 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여타 절들의 사천왕처럼, 신장처럼 광덕사 입구에서 그 오랜 동안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았을 호두나무야말로 성불한 불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수 백년 합장한 듯 허리를 굽힌 모양이 그렇고 수천, 수만 번은 들었을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촘촘한 나이테에 걸렸을 테니 이보다 더한 불성이 어디 있으랴.

a 산사의 전각들이 노란 산수유 꽃에 걸려있다.

산사의 전각들이 노란 산수유 꽃에 걸려있다. ⓒ 임윤수

호두나무 밑을 지나 보화루로 들어서면 우측은 불교용품점이고 좌측엔 오가는 이 마음 쉬어가라고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휴게소로 들어서면 원목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의자와 탁자가 있고 마실 수 있는 차가 준비되어 있다. 이곳이 광덕사의 해탈문 아닌가 모르겠다. 편액도 없고 세워진 기둥도 없지만 속세의 욕심을 차 한 잔으로 채워주는 다른 형태의 문이니 세속을 벗어나는 문인 듯하다. 게다가 산사에서 공짜 차를 마실 기회가 주어지니 별다른 기쁨이다.

보화루 밑을 통과하여 몇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앞 경내로 들어선다. 석탑을 우측으로 하고 석사자상이 양쪽에서 외호하는 돌계단을 다시 오르면 그곳이 대웅전이다. 대웅전 좌측으론 지장보살과 열시왕을 봉안하고 있는 명부전이 있다. 마당 오른쪽엔 종무소와 공양간이 있는 한 채의 전각이 있는데 이 전각 좌측에도 호두나무의 원적지답게 또 하나의 커다란 호두나무가 기와지붕 처마와 툇마루 끝에 맞대어 있다.

보화루 우측으로 나란히 있는 범종각은 마곡사 범종각을 닮아있다. 본사와 말사지만 많이도 닮았다. 종각의 형태만 그런 게 아니라 산 이름도 똑같이 태화산이니 마곡사와 광덕사는 법계의 연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명부전과 종무소 전각 사이를 지나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산신각이 있고 부도밭이 있다. 그리고 5층 석탑도 있다. 이쯤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밭들이 온통 호두나무다. 광덕사 입구에서 보게되는 호두 밭과 호두나무 가로수들도 놀랍지만 천안호두과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역시 광덕사 호두나무를 봐야 한다. 호두의 원적지, 국내 호두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는 양산 지에 걸맞게 절 주변도 온통 호두나무다.

a 경내에 있는 호두나무는 전각의 지붕과 툇마루에 이마를 맞대고 있어 '광덕사=호두'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듯 하다.

경내에 있는 호두나무는 전각의 지붕과 툇마루에 이마를 맞대고 있어 '광덕사=호두'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듯 하다. ⓒ 임윤수

초하루라 그런지 광덕사엔 신도들이 넘쳐난다. 대웅전 법당을 빼곡히 채우고도 밖에 펴진 자리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몇 분 스님이 함께 하는 염불소리가 참 듣기 좋다. 구성지기도 하고 애닳게도 들리는 천수경 염불에 마음이 끌린다. 입을 맞춘 듯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이어지는 염불소리가 조용한 산사를 더없이 숙연하게 만든다.

종무소엘 들리니 누구냐 묻지도 않고 대뜸 '점심공양이나 하라' 한다. 누구든 때에 오면 그렇게 챙겨주는 듯하다. 염치 불구하고 공양 간으로 들어가니 20년 동안 서울에서 광덕사에 다닌다는 나이 지긋한 보살님이 먹을 걸 챙겨준다. '절집음식 다 이렇다'면서 챙겨주는 밥과 국에는 챙겨주는 이의 보시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십 수년 전만 하여도 가을에 광덕사에 들리면 스님들이 추수한 호두를 한 봉지씩 얻어갈 수 있었는데 요즘 들어선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것도 여의치 않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깟 호두 몇 개를 얻진 못하지만 호두처럼 고소하고 아삭한 믿음,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얻어가니 지금도 서울 천안이 지척이란다.

보화루를 지나 다시금 호두나무 아래를 지나려니 호두나무가 한 마디하는 듯하다. '여보게 언제고 다시 오게. 맘 비우고 다시 오게. 그러면 가을에 아삭한 호두하나 줄께' 하고 말이다.

a 아직 갈색이지만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에도 봄기운은 완연했다.

아직 갈색이지만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에도 봄기운은 완연했다. ⓒ 임윤수

빙과류 대기업체에서 호두를 넣은 제품을 가지고 농간을 부린 모양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호두까지 농간의 대상으로 삼고있는 사람에게 광덕사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수백 년 광덕사 앞에서 합장하고 있는 그 호두나무로부터 세월에서 얻은 깨달음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요일인 21일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호두가 건강에 좋다고 방송되었으니 한 동안 호두 열풍이 불 거라고 생각된다. 호두가 좋아 호두를 찾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광덕사에 들려 보라고 말하고 싶다. 광덕사는 한 때 도올 김용옥이 머물며 삼매에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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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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