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매한 관리를 깨닫게 하는 방귀 소리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45)-지리산 칠불사

등록 2004.03.30 08:29수정 2004.03.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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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르다는 생각이지만 섬진강 주변 풍경은 도시락 싸들고 소풍을 오고싶다는 맘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하다. 살결을 스치는 바람은 잘 데워진 숭늉처럼 부드럽고 온화하다. 거칠고 삭막한 겨울 땅을 헤집고 올라온 연약한 새싹들은 얄밉도록 귀엽게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고개 든 새싹들이 옹기종기 무리 지어 한 뜸 한 뜸 채색을 시작하니 섬진강변은 연녹색 캔버스다.

a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처럼 산비탈에 줄 맞춰 자라고 있는 섬진강변 야생녹차 밭에선 봄기운 가득한 녹차 향이 우러날 듯하다.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처럼 산비탈에 줄 맞춰 자라고 있는 섬진강변 야생녹차 밭에선 봄기운 가득한 녹차 향이 우러날 듯하다. ⓒ 임윤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햇살에 반짝이고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엔 통통한 꽃봉오리가 한다발씩 달려있다. 한 여름 밤 지리산 능선에서 보았던, 금방 쏟아지기라도 할 듯 하늘을 빼곡이 메웠던 은하수가 예서 올라간 꽃망울들은 아니었을까 의심될 만큼 다닥다닥 달려 있다.


붉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꽃망울이 어찌나 탱탱한지 바람이 짓궂게 장난이라도 하면 참던 웃음 툭 터트리고 하얀 속살을 드러낼 듯하다. 시집가던 날 누이가 발랐던 그 뽀얀 분을 훔쳐다 발랐는지 순백의 피부를 가진 목련은 이미 꽃잎을 떨구고 있다. 삐약거리던 노랑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개나리도 본색을 드러낸 지 오래다. 섬진강변을 따라 서서히 달리다 보니 달랑거리는 노란색 양은 도시락에 둘둘 말아 숭숭 썰어 넣은 김밥 채워 소풍을 가던 그 때가 생각나고, 다시금 그때로 돌아가 그런 소풍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a 칠불사를 찾아드는 계곡 이쪽 저쪽엔 만개한 봄꽃 사이로 고깔 쓴 벌통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부지런히 벌통을 드나들며 달콤한 꿀을 만들고 있을 벌들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칠불사를 찾아드는 계곡 이쪽 저쪽엔 만개한 봄꽃 사이로 고깔 쓴 벌통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부지런히 벌통을 드나들며 달콤한 꿀을 만들고 있을 벌들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 임윤수


밤잠을 설치도록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런저런 일들 중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초등학교 때 소풍이다. 계절적으로 좀 더 있어야 본격적인 봄 소풍이 시작되겠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알 수 없는 설렘의 미동이 다시금 시작된다.

소풍이라고 해야 형과 누나가 갔던 곳, 학교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 평소 한두 번쯤은 어른 몰래 다녀올 법한 그런 곳이다. 5, 6학년쯤이 되면 보물이 숨겨질 만한 곳도 전부 알 수 있을 만큼 매년 반복되는 그런 단골장소로 가는데도 소풍은 어린 마음을 잠 못 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갔던 곳 또 가는데 왜 그렇게 기다려지고 가슴은 설렜는지? 평소엔 엄두도 못 내던 둘둘 만 김밥, 노랑물 진하게 배어 나오는 단무지와 파란 시금치 그리고 주홍빛 홍당무로 알록달록 구색을 맞춘 김밥이 눈길을 유혹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넉넉지 않은 재료와 농번기의 바쁜 손길을 빌려 썩둑썩둑 만들어진 김밥이지만 그때 김밥엔 추억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들어있었다.

요즘엔 밥을 밖으로 내어 마는 누드 김밥, 해물을 넣은 해물김밥까지 등장하니 김밥도 시대의 다양성에 따라 별의 별 종류가 다 생긴 모양이다. 사용되는 재료도 계란으로 만든 지단은 물론 햄과 맛살 등 눈맛과 입맛을 만족시킬 다양한 재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지금의 김밥과 예전의 김밥은 맛 차이가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왠지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 먹었던 그 김밥이 제일 맛있는 김밥으로 기억된다.


a 칠불사는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 하여 칠불사가 되었다고 한다.

칠불사는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 하여 칠불사가 되었다고 한다. ⓒ 임윤수


둘러멘 가방엔 그렇게 만들어진 김밥과 삶은 계란 몇 개, 선생님께 드릴 것을 포함한 콜라나 사이다 한두 병 그리고 사탕과 과자 한두 봉이 들어 있다. 소풍지에서 아이스께끼(얼음과자)를 사먹고 장난감을 살 수 있는 얼마간의 용돈도 특별하게 지급 받던 날이 바로 소풍날이니 어찌 아니 기다릴 수 있었겠는가 싶다.

매일 아침 늦잠으로 야단을 맞던 게으름뱅이도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은 어른들보다 일찍 일어난다. 혹시 비가 오지 않나 날씨 걱정에 몇 번을 들락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느라 단잠을 자지 못했어도 그날만큼은 부지런한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 일찌감치 아침을 재촉했다.


물통을 어깨에 비껴 메고 줄 지어 가는 소풍 길 내내 재잘재잘 잘도 떠들어댄다. 모처럼 챙겨 입은 새 옷이 피부를 사각사각 스쳐 조금씩 쓰라려도, 처음 신는 운동화에 발뒤꿈치는 물집이 생겨 통증이 무거워져도 마냥 즐겁기만 하던 그런 길이 소풍길이다.

지금 섬진강변은 그런 소풍 길을 생각나게 한다.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 꽃에 산하가 온통 샛노란 산동 마을을 나와 칠불사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전북 이북에선 보기 힘든 보리와 토종 밀이 넓은 들판에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펼쳐진 보리밭은 벌렁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포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a 칠불사에선 채마전을 삭발한 스님들 머리만큼이나 잘 정돈하는 것으로 봄맞이를 하는가 보다. 머지않아 씨 뿌리고 거둬들인 야채나 채소로 산사 음식이 마련될 듯하다.

칠불사에선 채마전을 삭발한 스님들 머리만큼이나 잘 정돈하는 것으로 봄맞이를 하는가 보다. 머지않아 씨 뿌리고 거둬들인 야채나 채소로 산사 음식이 마련될 듯하다. ⓒ 임윤수


'보리밭이 과거엔 현대판 러브호텔로 한 몫 하였다'는 누군가의 이야길 떠올리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생기며 호기심이 생긴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온통 꽃밭이며 자연이 만들러낸 화원이다. 오빠랑 누이동생이 나란히 만든 꽃밭은 아니지만 그런 정성이 느껴지는 꽃밭이다. 샛노랗던 산수유 꽃은 예외로 한다 해도 주변은 온통 꽃들이다. 만개의 단계를 넘어선 목련이 있다.

일찍 개화하는 올 벚꽃은 이미 활짝 피어 있고 개나리와 진달래도 활짝 피었다. 강 너머 언덕엔 만발한 매화꽃이 넘실대고,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처럼 산비탈에 줄 맞춰 만들어진 야생녹차 밭에선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녹차 향이 우러날 듯하다.

그 길이가 십리나 된다는 쌍계사 벚꽃 길을 지나 이십오 리는 더가야 한다는 칠불사를 찾아든다. 접어든 계곡 이쪽 저쪽엔 만개한 봄꽃 사이로 고깔 쓴 벌통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부지런히 벌통을 드나들며 달콤한 꿀을 만들고 있을 벌들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이리 굽고 저리 굽은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오르다보면 정말 다랑논 같은 다랑논들을 보게 된다. 겨우 어른 한길쯤 되는 논두렁 폭을 가진 논들이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사람들은 그런 밭떼기조차 그냥 놀리지 않는 억척스러움과 땅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나보다. 그런 길, 다랑 논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그렇게 헉헉거리며 올라가면 일주문으로 들어서게 되고 조금 더 들어가면 좌측으로 칠불사 전각이 보인다.

a 주차를 하고 촘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동국제일선원'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보설루를 지나게 된다.

주차를 하고 촘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동국제일선원'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보설루를 지나게 된다. ⓒ 임윤수


높은 고지 때문인지 칠불사는 아직 늦겨울과 이른봄 중간쯤이다. 부화뇌동하는 인간들이야 섬진강변 봄 풍경에 마비된 착각으로 칠불사에도 봄이 왔다 할지 모르나 기온의 절대적 바로미터인 주변의 초목들이 아직 겨울이라 말한다.

강변에선 이미 꽃잎지기 시작한 목련도 칠불사에선 아직 몽우리 채 뽀얀 솜털에 두툼한 껍질을 벗지 않았다. 실눈 뜬 듯 조금 벌어진 껍질 사이로 아래로부터 오는 봄을 지켜볼 뿐이다. 땅을 헤집고 올라오는 새싹들도 선뜻 몸체를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레 모양새만 햇살에 조금 내밀었을 뿐이다.

칠불사는 지리산 반야봉서 출발한 거대한 혈맥이 남쪽으로 40여리 뻗어 내린 해발 800여m,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자리하고 있다. 가야(伽倻), 일명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이 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가 되었다고 한다.

a 경내는 모든 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선방에서 수도승이 뀌는 방귀 소리조차 들릴 듯하다.

경내는 모든 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선방에서 수도승이 뀌는 방귀 소리조차 들릴 듯하다. ⓒ 임윤수


김수로왕은 서기 42년 생으로 인도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슬하에 10남 2녀의 자녀를 둔다. 큰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고 차남 석(錫)과 삼남 명(明) 왕자는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나머지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왕비의 친정 오빠인 보옥(寶玉) 선사를 따라 수도 정진하다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현재의 칠불사 자리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수도하다 103년, 수로왕 62년 음력8월 15일 모두 생불이 되었으니 광불, 당불, 상불, 행불, 향불, 성불, 공불 등 일곱 부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칠불사의 창건설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일곱(七) 왕자가 성불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수로왕과 왕비는 기쁜 마음에 일곱 왕자를 만나려 지리산 운상원을 찾았다. 그러나 일곱 왕자의 스승이자 외삼촌인 보옥선사는 불법의 엄한 계율에 따라 그들을 대면시키지 않았다.

대신 '경내에 있는 연못을 지켜보라'고 일러주었다. 일곱 왕자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 수 없이 왕과 왕비는 연못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연못을 지켜보니 얼마의 시간이 지나 연못에 성불한 일곱 왕자의 금빛 찬란한 모습이 비쳐졌다.

a 맞배지붕 형태의 정면 전각이 아자방이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로 넓이가 8평방미터 정도라고 한다.

맞배지붕 형태의 정면 전각이 아자방이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로 넓이가 8평방미터 정도라고 한다. ⓒ 임윤수


일곱 왕자의 모습이 비쳤다는 연못은 영지로 칠불사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 있는 원형연못으로 고지임에도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일곱 왕자가 수도 정진하던 운상원이 지금의 칠불사며 당시 수로왕이 머물던 곳이 범왕사, 왕비 허황옥이 머물던 절이 대비사, 왕과 왕비를 따라 동행하였던 3정승이 기다리던 곳을 삼정이라 하였으니 지금은 모두 지명으로 굳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주차를 하고 촘촘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동국제일선원'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보설루를 지나게 된다. 보설루를 통과하여 몇 계단 올라서면 경내로 들어서게 되며 정면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우측으론 문수전이 있으면 경내 우측으론 설선당이 있고 그 뒤로 공양간과 신도들이 기도하며 머물 수 있는 처소가 있다. 보설루 우측엔 범종이 달려있는 원음각이 있으며 경내 좌측에 칠불사하면 떠올릴 수 있는 아자방(亞字房)이 있다.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될 정도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는 아자방(亞字房)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로 넓이가 8평방미터 정도라고 한다. 여느 방들처럼 방 전체를 평평하게 하지 않고 방안 네 귀퉁이를 70cm 높게 하여 아(亞)자 형태의 구조로 되었기에 '아자방'이란 이름이 붙었다. 방안 네 구석의 높은 곳은 좌선처이며 중앙의 십자형 낮은 곳은 행경처인데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또는 겨울 내내 훈훈한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칠불사의 대표적 좌선처며 전각인 아자방에도 이런저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목마 탄 사미승'이야기가 그 대표적 전설로 조선 중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a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될 정도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는 아자방은 처마 밑에 달린 편액조차 단정하기만 하다.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될 정도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는 아자방은 처마 밑에 달린 편액조차 단정하기만 하다. ⓒ 임윤수


새로 하동으로 부임한 사또가 초도순시 차 쌍계사엘 들렸다 그 말사인 칠불암에 있는 아자방 선원을 보고 싶어했다. 안거 중이라 외인의 출입을 금했지만 군수는 권력을 빙자하여 억지로 선방문을 열도록 하였다. 익히 소문을 들어 아자방의 명성을 들었던 군수는 엄청난 계율을 상상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막상 아자방의 선풍을 보게 된 사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춘곤증 무거운 늦봄이라 그런지 점심 공양을 마친 스님들 중 일부는 천장을 쳐다보며, 일부는 고개를 떨구고, 일부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일부는 방귀를 뀌면서 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군수는 이들을 혼내 줄 심산으로 쌍계사에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한 바퀴 돌면 후한 상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준다'고 기한을 정해 통문을 띄웠다.

통문을 받은 쌍계사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묘안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때 한 사미승이 자신이 이 일을 맡겠다며 다른 스님들에게 목마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정해진 날자가 되어 스님들이 만들어 준 목마를 둘러메고 하동 관아로 들어간 사미승은 자신이 그것을 타고 동헌을 돌아보겠다고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는 사미승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없어 하면서 "칠불암에 도인이 많다더니 내가 직접 보니 참선한다는 중들이 모두 졸기만 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미승은 "수도승이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요"라며 담담하게 답을 하였다.

a 여느 방들처럼 방 전체를 평평하게 하지 않고 방안 네 귀퉁이를 70cm 높게 하여 아(亞)자 형태의 구조로 되었기에 '아자방'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네 구석의 높은 곳은 좌선처며 중앙의 십자형 낮은 곳은 행경처라고 한다. (사진은 아자방 입구에 붙여진 사진을 근접촬영한 것임)

여느 방들처럼 방 전체를 평평하게 하지 않고 방안 네 귀퉁이를 70cm 높게 하여 아(亞)자 형태의 구조로 되었기에 '아자방'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네 구석의 높은 곳은 좌선처며 중앙의 십자형 낮은 곳은 행경처라고 한다. (사진은 아자방 입구에 붙여진 사진을 근접촬영한 것임)


그러자 사또는 그럼 도대체 "천장을 쳐다보며 졸고 있는 것이 무슨 공부란 말이냐?"하고 힐책하듯 질문을 던지자 사미승은 그런 행동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 즉, 하늘을 우러러보며 별을 관찰하는 공부로 상통천문(上通天文) 하여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수행이라고 하였다.

사미승의 설명에 말문이 막힌 사또는 "그럼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졸고 있는 자들은 어떤 수행을 하는 것이냐"하고 재차 묻자, 그런 행동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을 수행하는 것으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게 되는데 그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사미승이 답하였다.

계속하여 사또가 "그렇다면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조는 것은 무엇이며 방귀는 무엇이란 말이냐"고 다그치듯 묻자 사미승이 답하기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조는 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이라 하는 수행 법인데, 있음과 없음에 집착해도 안되며 전후좌우 어느 것에도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달관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귀를 뀌는 것은 '타파칠통관 (打破漆桶觀)이라고 하는 것으로 사또같이 우매한 관리들을 깨닫게 하는 공부라고 합니다"라 답한 사미승은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한바퀴 빙 돌더니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a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난이 대웅전 뒤에서 땅을 헤집고 올라왔다. 싹들은 선뜻 몸체를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레 모양새만 햇살에 조금 내밀었을 뿐이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난이 대웅전 뒤에서 땅을 헤집고 올라왔다. 싹들은 선뜻 몸체를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레 모양새만 햇살에 조금 내밀었을 뿐이다. ⓒ 임윤수


이 사미승은 다름 아닌 문수동자였다고 한다. 칠불사는 높은 위치에 있는 만큼 오는 봄도 늦은 듯하다. 잠시나마 호들갑스레 봄 소풍을 추억하던 봄날의 설렘도 칠불사에선 사치인가 보다.

사미승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이 다시금 현화하여 고하 할 것 없이 모든 관리들에게 타파칠통관을 깨우쳐 주었으면 좋겠다. 보설루를 지날 땐 뒤쪽 아자방에서 뿡∼하는 방귀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네 이놈 정신차려 하는 호령소릴 대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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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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