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과 목탁 그리고 무술로 수행하는 한국판 소림사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46)-함월산 골굴사

등록 2004.04.06 08:53수정 2004.04.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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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750리 길 아스팔트에 무릎꿇고 머리 조아리던 장도의 삼보일배가 있었던 게 어느새 일년이 지난 일이 되었다. 그때의 삼보일배는 종파를 초월한 성직자들이 모든 인간들을 대신해 개발논리에 무참히 죽어갔고 죽어 가는 갯지렁이와 아기 조개의 넋을 달래는 씻김굿 같은 애절한 큰절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행하는 인간들의 우매함을 깨우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 같은 그런 큰절의 고행이었다.

a 만개한 벚꽃나무와 나란히 달을 머금고 있다는 함월산 골굴사임을 알리는 일주문이 서있다.

만개한 벚꽃나무와 나란히 달을 머금고 있다는 함월산 골굴사임을 알리는 일주문이 서있다. ⓒ 임윤수


그 후 삼보일배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명분으로 여러 차례 있었다. 한 표가 새로운 총선을 코앞에 둔 요즘, 한때 호남의 맹주로 군림하던 어느 야당 선거책임자가 80년 민주의 광장이었던 광주에서 또 다른 형태의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갯지렁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작년의 삼보일배나 총선을 앞둔 지금 광주에서 있었던 삼보일배나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똑같은 형태의 삼보일배지만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색깔이 다를 듯하다.


보여지는 모양새가 다르고 등장하는 구호가 다를 거다. 모여든 사람들 성향이 다르고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다를 것이다. 거룩하고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때의 삼보일배와 달리 금남로에서 벌어지는 삼보일배는 왠지 표를 달라는 구걸의 몸짓으로 신성해야 할 큰절의 의미까지 정치판에 이용되는 듯한 안타까움이 먼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필자만의 편견이거나 착각이길 바란다.

이젠 심심하지 않게 거리에 등장하는 삼보일배, 세 걸음 걷고 한 번 하는 큰절 속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마와 양 팔꿈치 그리고 양 무릎 등 신체의 다섯 군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온몸을 낮추어 하는 큰절이기에 큰절을 '오체투지'라고도 한다.

불가에서 올리는 큰절은 삼보(부처님, 가르침, 스님)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또한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수행 방법으로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시하는 예법이다.

a 자목련 꽃잎 사이로 커다란 바위산이 보이고 바위산 꼭대기엔 아크릴 보호막이 보이고 좌측 아래쪽으로 곱게 단청된 법당도 보인다.

자목련 꽃잎 사이로 커다란 바위산이 보이고 바위산 꼭대기엔 아크릴 보호막이 보이고 좌측 아래쪽으로 곱게 단청된 법당도 보인다. ⓒ 임윤수


몸을 낮추어 납작 엎드리면 세상의 모든 것들 아래 내가 있다. 미물로 여기던 갯벌의 갯지렁이도 내가 받들어야 할 공경의 대상이며 존중해줘야 할 생명의 존중체이다. 의미를 알고 하는 삼보일배의 큰절이라면 모든 유권자와 국민 아래로 자신을 낮추어 공경하고 존중한다는 뜻일텐데 과연 그것이 그들의 평상심 인지엔 의구심이 생긴다. 그들이 여태껏 해왔던 정치적 행보가 선뜻 그들의 순수성을 믿을 수 없게 한다.

두 눈 말똥거리고 사지 펄럭이며 살 맛 나는 중·노년의 삶을 살아가야 할 망월동 영령들을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어 놓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80년 민주학살의 주역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정치권에 뿌리를 둔 또 다른 야당과 공조로 이뤄낸 그들의 영광스런(?) 정치적 산물인 탄핵정국을 금남로에 머리 숙인 그이는 망월동 영령들께 어떻게 설명하고 변명할까 몹시도 궁금해진다.

큰절엔 하심과 같은 의미가 담겨진 만큼 절을 할 때도 나름대로 순서와 방법이 있으며 참회나 기도로 하는 큰절은 일반적으로 108배, 1080배, 3000배 등을 한다. 절을 할 대상, 대개의 경우는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이 되겠지만, 앞에 서면 먼저 합장한 자세로 합장절을 한 다음 큰절을 한다.


합장이란 반듯하게 몸을 세우고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듯한 자세에서 두 손을 가슴높이 정도에서 모으는 것을 말한다. 합장절이 끝나면 합장한 자세에서 두 무릎을 굽히면서 오른손과 왼손 순서로 바닥을 짚는다. 이때 손은 머리가 닿을 정도 위치에 나란히 놓되 너무 넓거나 좁아서는 안되니 어깨넓이만큼 벌려서 짚는다.

a 바위엔 12개의 굴법당이 있으며 지그재그로 설치 된 철제 보호대를 따라가면 모든 법당을 다 들릴 수 있다. 제일 꼭대기 아크릴 보호막은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었다.

바위엔 12개의 굴법당이 있으며 지그재그로 설치 된 철제 보호대를 따라가면 모든 법당을 다 들릴 수 있다. 제일 꼭대기 아크릴 보호막은 마애불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었다. ⓒ 임윤수


무릎을 꿇고 앉을 때는 왼발이 오른발 위에 오게 포개며, 엉덩이가 두 발의 뒤꿈치에 닿게 앉는다. 그리고 양 팔꿈치와 이마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양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귀에 닿을 정도로 받쳐 올린다. 일어날 때에는 올렸던 손을 바로 하면서 머리를 들어 허리를 펴고 손은 왼손 오른손 순서로 가슴으로 가져와서 합장의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발을 세워 무릎을 일으키면서 일어선다. 이렇게 하므로 한 번의 큰절이 끝나게 된다. 글로 설명을 하니 매우 복잡한 듯하지만 실제 해보면 일상의 동작과 다를 게 없다.


큰절도 수행법의 하나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이란 말을 들으면 조용한 분위기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명상에 잠기는 참선을 생각할 것 같다. 스님들이 하는 수행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되는 법경(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책)을 밤낮으로 읽고 염불을 외거나 읊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행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기본적 공부야 당연하지만 어느 정도의 단계에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수행법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하여 법문에 능통한 것도 한 수행법이지만 불가에서 요구되는 남다른 예능적 기능이나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는 것도 한 수행법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스님들이 얻는 깨우침의 절정인 득도도 여러 가지 행태서 얻어지는 듯하다.

a 마애불 하단 좌측에 있는 굴법당 관음전이다. 12개나되는 석굴 중에서 가장 넓은 굴법당으로 동굴입구에 기와 얹은 건물을 덧대어 놓았다.

마애불 하단 좌측에 있는 굴법당 관음전이다. 12개나되는 석굴 중에서 가장 넓은 굴법당으로 동굴입구에 기와 얹은 건물을 덧대어 놓았다. ⓒ 임윤수


깊은 고민에 빠진 듯 화두 삼매에 빠져 골몰하던 중 섬광석화처럼 순간적 깨우침으로 득도하였다는 스님도 있고 평생을 막노동처럼 일하다 어느 순간에 뭔가를 깨달음으로 득도를 하셨다는 스님도 계신다. 그러니 각자의 수행법에 따라 득도하는 순간도 방법도 달라질 뿐이다. 어찌 보면 속세의 이런저런 유혹과 인연을 끊는다는 그 자체가 수행의 길로 접어든 구도의 실현이며 수행의 연속이다.

스님들 중에선 설거지를 하다 득도를 하셨다는 분도 계실 수 있고 목공처럼 절을 짓거나 가수처럼 찬불가를 부르다 순간적으로 뭔가를 깨우쳐 득도하시는 분도 계실 듯하다. 종을 치다 득도를 하셨다는 분도 있고 돌다리를 건너다 불현듯 화두로 잡았던 것에 대한 답을 구함으로 깨우침을 얻었다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많은 사람들은 절에서의 수행하면 조용한 산사에서 좌선을 한 스님들 모습을 연상할 듯하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을 깡그리 부수는 한국판 소림사가 경주근처에 있다. 권법이 등장하고 화려한 동작과 함께 하는 심오한 무술이 계승되고 발전되는 소림사는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국내에도 영화 속 소림사처럼 고도의 무술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 하고 있는, 한국판 소림사라 할 수 있는 '골굴사'라는 절이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 불교문화의 성지답게 경주엔 절도 많고 불교유적도 무지기수로 많다. 경주에선 눈 돌리고 발길 돌리는 곳마다 불교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토함산이 그렇고 남산이 그렇다. 불국사가 그렇고 분황사나 주변의 왕릉들도 다 불교와 관련이 있다. 한국불교의 최대 번성기자 중흥기의 도읍지다운 문화적 유산이 전해지는 곳이 경주다.

a 관음전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셨으며 동굴의 벽면에는 청동 108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셨으며 동굴의 벽면에는 청동 108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 임윤수


그런 경주는 요즘 꽃대궐에 떡과 술이 흥건히 넘쳐나는 잔치판이다. 사방은 온통 벚꽃화관을 두르고 있다. 길거리는 길거리대로 화관을 두르고 있고 호수는 호수대로, 공원은 공원대로 꽃 치장을 하고 있다. 벌어진 잔치 판이니 들어서기만 하면 객이 되어 거하게 차려진 잔치 상을 한 상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대궐을 노니는 세자나 공주도 될 수 있고 한가롭게 봄날을 즐기는 대궐 속 왕과 왕비로 자신의 신분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소품과 무대가 마련된 곳이 요즘 경주다.

그런 경주를 지나 4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 감포 쪽으로 약26km쯤 달리다 보면 기림사와 골굴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달린 안동3거리를 지나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여 5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하나의 일주문이 저만치 보이니 이곳이 바로 선무도라고 하는 무술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 하고 있는 골굴사다.

골굴사는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光有)스님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기림사와 함께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창건당시 인도의 사원 양식을 본 따서 지은 전형적 석굴사원으로 석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산 정상에 마애불을 각인하고 12개의 석굴을 파 법당으로 조성한 한국 최초의 석굴 불교성지다.

넓은 진입로를 들어서 일주문을 지나게 되면 두 갈래 길로 갈라진다. 여기서 골굴사는 곧장 들어가게 되며 오른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신축된 건물을 지나 선무도장의 본산인 선무대학으로 들어 가게 된다. 오른쪽에 보이던 현대식 건물은 선무대학에 입교하여 선무도를 수행하게 되는 수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생활관이며 그 안쪽으로 완공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선무대학 본관이 있다.

a 바위 벼랑 너머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셔놓은 대적광전이 보인다. 건너 쪽 공터에 오륜탑이 있다.

바위 벼랑 너머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셔놓은 대적광전이 보인다. 건너 쪽 공터에 오륜탑이 있다. ⓒ 임윤수


수행자들이 선무도의 기본동작을 배우고 익히는 학습의 공간이며 수행의 도장이기도 한 선무대학은 적당한 크기의 운동장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대학건물을 중심으로 빙 둘러진 산들이 영화에서 보았던 심산유곡의 소림 도장을 연상하게 한다. 금강장사가 외호하고 있는 건물로 들어서니 공중을 휙휙 나는 무공들 모습이 그려지는 넓은 수도장이 있다.

반질반질한 나무바닥엔 수행자들이 흘린 수도의 땀방울과 기합소리가 두터운 층을 이뤄 인고의 각질처럼 반짝이고 있다. 넓은 도장은 숨죽인 듯 고요했으나 요동치듯 출현하는 기가 쏟아질 듯 응결된 듯하다.

갈림길에서 곧장 들어서면 다시 한번 야트막한 고개를 넘게 된다. 이 고개를 넘어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주차할 공간이 나오고 다시 경사 길을 오르면 골굴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활짝 핀 목련꽃 사이로 전각의 일부가 보인다.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몇몇 전각과 요사채를 지나게 된다. 앞쪽에 있는 가파른 바위산꼭대기에 아크릴 보호막이 보이고 조금 아래쪽 왼편에 단청된 작은 전각과 단청이 되지 않아 목질감이 물씬한 또 다른 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좀더 안쪽으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멀리서 보았던 바위들이 좀더 뚜렷하게 보인다. 바위는 깎아세운 듯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제일 꼭대기, 아크릴 보호막 아래엔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산더미 같이 커다란 바위는 곳곳이 움푹 파인 동굴형태로 되어 있다. 굴과 굴 사이는 철 파이프로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굴 하나 하나가 법당이며 기도처다.

a 좌측의 남근석과 우측의 여궁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속신앙의 흔적을 볼수 있는 곳으로 자손을 원하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려 영험을 보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좌측의 남근석과 우측의 여궁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속신앙의 흔적을 볼수 있는 곳으로 자손을 원하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려 영험을 보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 임윤수


올라가는 입구에 '노약자는 이곳에서 참배하시오'란 푯말이 붙어 있을 정도로 바위로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계속하여 돌계단을 오르면 대표적 굴법당인 관음전에도 들릴 수 있고 남근석과 마주 보고 있는 음궁에 차려진 산신각 그리고 다른 굴에 마련된 나한전 등도 참배할 수 있다.

12개나 되는 석굴 중에서 가장 넓은 관음전은 동굴입구에 기와 얹은 건물을 덧대어 관음전을 만들어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셨다. 돌계단을 올라 처음으로 맞게되는 관음전엔 정면에 모신 관세음보살뿐만 아니라 동굴의 벽면에 청동 108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듯 가파른 바위굴에 마련된 이런저런 굴 법당을 찾아다니는 길은 만만치 않다. 암벽을 타듯 줄을 잡고 오르기도 해야하고 바위틈을 지나 아찔한 행보도 하여야 한다. 그러나 태산같은 바위에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철제 보호대를 쫓아다니면 웬만한 굴법당은 다 참배할 수 있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보호시설이 있기에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옛부터 굴법당인 관음전에서 잠을 자고 나면 병들고 허약한 이가 생기를 되찾았다 하는데 결코 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 함월산 지역은 석회암 지층으로서 제올라이트 등 광산대가 형성되어 있어 암반 성분이 맥반석처럼 인체에 유효한 원적외선을 발산한다 할 수 있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1500여 년의 신비가 담긴 골굴사 관음굴은 세세생생 많은 중생들에게 불보살님의 가피를 전하는 감로정이 될 것이다

a 석굴법당 건너편 고갯마루엔 오륜탑이 세워져 있다.

석굴법당 건너편 고갯마루엔 오륜탑이 세워져 있다. ⓒ 임윤수


골굴사에도 우리의 토속신앙이 녹아있는 전설을 담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산신당이 있는 여궁과 그 앞에 있는 남근석이다. 불교가 도입되기 전에도 분명 우리 조상들이 의지하던 신앙의 대상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속신앙이며 자연신앙이다. 전해지는 민족 고유의 민속 신앙 중 하나가 남근과 여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적 자연신앙이다.

자손의 번성과 수명장원을 기원하였으며 특히 득남기도의 중심이 되었던 여궁 터에 산신당이 마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아들을 얻지 못한 부인들이 여근(산신당)바닥에 자연적으로 패인 여궁에 앉아 밤샘 기도를 하면 다음날 새벽 여궁에 물이 고임으로 기도의 성취를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인들은 이를 음양의 조화로 생긴 정수라 생각하였고 득남의 증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자손을 이은 사람들이 대대로 골굴사의 신도가 되어 전체 신도의 3분의1이나 된다하니 여궁의 효험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단언하기 곤란하다.

골굴사가 여느 절들과 특이한 점은 아무래도 '선무도(禪武道)'라는 무술을 수행법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무도란 흔히 '위빠사나'라고도 불리는 수행법으로 불교의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에 전하는 전통수행법이라고 한다. 선무도, 무술이라고 하니 일방적으로 격렬한 격투기나 화려한 몸 동작이 수반되는, 영화에서 보았던 싸우는 무술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듯하다. 위빠사나 혹은 요가처럼 인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수행법의 하나인 선무도는 깨달음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수련법이라고 한다.

a 선무대학 1층 수련장으로 반질반질한 나무바닥엔 수행자들이 흘린 수도의 땀방울과 기합소리가 두터운 층을 이뤄 인고의 각질처럼 반짝이고 있다. 넓은 도장은 숨죽인 듯 고요했으나 요동치듯 출현하는 기가 쏟아질 듯 응결된 듯하다.

선무대학 1층 수련장으로 반질반질한 나무바닥엔 수행자들이 흘린 수도의 땀방울과 기합소리가 두터운 층을 이뤄 인고의 각질처럼 반짝이고 있다. 넓은 도장은 숨죽인 듯 고요했으나 요동치듯 출현하는 기가 쏟아질 듯 응결된 듯하다. ⓒ 임윤수


선무도를 수행하는데도 단계별 과정이 있다고 한다. 본 수련에 들어가기 전 신체의 각 부위를 부드럽게 하여 줌으로 심신을 이완시키고, 골관절을 교정하여 근육의 탄력을 키워주는 오체유법(五體柔法)이라고 하는 요가 수준의 선요가가 그 첫 단계라고 한다.

선요가를 익히면 합장의 변화와 호흡의 조화를 통해 법륜을 발현하고 정(精), 기(氣), 신(神)의 조화를 통해 심신의 통일적 삼매(三昧)를 구하는 좌관법을 수행하게 된다. 이 단계를 넘으면 손발의 부드럽고 느린 동작을 마음으로 관(觀)함과 동시에 의념과 함께 흘러가는 기를 조화시켜 우주의 신비와 선정(禪定)의 법열(法悅)을 느낄 수 있다는 입관법을 수행하게 되니 이쯤이 되면 머릿속으로 상상하였던 소림권법이나 소림사 무술동작이 등장할 만하다.

선무도의 최고 경지는 입관법에서 터득하게 되는 화려한 동작이나 파괴적인 힘이 아니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적 원소와 정신적 차원을 조화시켜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구하고 해탈에 나아가는 경지, 선기공 체조인 행관법 경지를 넘나드는 구도의 길만이 선무도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a 무술이 일상생활인 듯 관음전에서 사시마지를 올리고 나온 스님이 자연스런 발동작으로 그 정도를 가늠케 해 주었다.

무술이 일상생활인 듯 관음전에서 사시마지를 올리고 나온 스님이 자연스런 발동작으로 그 정도를 가늠케 해 주었다. ⓒ 임윤수


그러니 선무도는 단순한 무술의 차원을 넘어 깨달음을 구하기 위한 수행의 한 방편이다. 궁극적으로 선무도를 통해 누구나 몸과 마음이 활짝 열린 대자유인을 염원하며 우주와 일체를 이루는 세계로 나아가고자 함을 구현하고자 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또 다른 형태의 수행법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곳이 골굴사다. 귀를 째는 듯한 '얍!'하는 기합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지만 골굴사에선 무공의 함성과 수행의 정적이 가슴에 다가왔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신념과 성직자들의 신심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천양지차인 모양이다. 성직자들은 2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750리 아스파트길에 삼보일배를 하면서도 신체적 한계를 극복했는데 정치지도자는 기껏 3일만에 휠체어에 기댄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개인의 신체적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역시 종교적 신심은 정치적 신념보다 위대하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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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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