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견고한 성, 장성과 역사

삶의 몸부림 배어 있는 길, 실크로드를 따라 (3)

등록 2004.08.31 14:12수정 2004.08.3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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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기대와 실망이 함께 한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막상 그곳에 가면 '뭐 다 마찬가지네, 또는 별 것 아니네'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내 집이 가장 좋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도 이름난 만큼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실망을 한 곳도 많았다. 그 실망에는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인데 나의 눈이 따라 가지 못하였다는 것도 큰 몫을 하였으리라.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힘들었지만 '참 잘 왔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묶어두는 몇 곳이 있었다.

란주 병령사

병령사에 가려면 란주에서 버스와 배를 이용해야 한다. 먼저 버스를 타고 1시간 30여분을 가면 선착장에 다다른다. 병령사 가는 길을 댐으로 막아 놓았기에 쾌속선을 타고도 50분 정도는 더 가야 한다.

a 병령사 가는 길

병령사 가는 길 ⓒ 정호갑

배를 타고 가면서 말로만 듣던 황하의 누런 물줄기를 직접 보았다. 중국 문명의 태동을 상상하여 보는 것도 괜찮았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배에서 내리면 그 곳 주민들이 기념품을 사달라며 달라붙는다. 비싼 물건들이 아니기에 그냥 물건을 하나 사 두는 것이 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은 살 때까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군다.

a 병령사의 석굴

병령사의 석굴 ⓒ 정호갑

a 병령사에서 가장 작은 부처상

병령사에서 가장 작은 부처상 ⓒ 정호갑

병령(炳靈)이란 티베트어로 십만 부처를 뜻한다고 한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병령사에는 부처상이 많다. 한국에서는 부처님을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법당에 모셔 놓았는데 이곳에는 변변한 법당조차도 없다.


그저 석벽에 굴을 파고 그 굴의 크기에 맞춰 여러 부처상을 조각해 놓았다. 총 183개의 석굴이 있다고 하는데, 내 눈으로 확인한 바는 181개의 굴을 확인하였다. 큰 불상은 27m에 이르며, 아주 작은 것은 손바닥만한데 조각이 섬세하고 매우 예쁘다. 또한 그 모습도 와불, 입상, 좌상 등으로 다양하다.

예술적으로는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169번과 172번 불상은 석벽을 구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사다리 입구가 막혀 있다. 왜 막아놓았으며, 어떻게 하면 저 곳으로 갈 수 있느냐고 안내원에게 물으니 주로 전문가들이 저 곳으로 올라가는데 가려면 한 사람에 300위엔(우리 돈으로 4만50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a 병령사에서 가장 큰 부처상

병령사에서 가장 큰 부처상 ⓒ 정호갑

올라가서 보아도 내 눈이 따라가지 못할 것이고, 또 현실에 매여 있는 나에게 너무 큰 대가라 생각하며 호기심을 접고 돌아섰다.

1000여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절,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절의 모습 그리고 살아 있는 황하의 물줄기를 볼 수 있기에 란주하면 병령사가 먼저 떠오른다.

가욕관성루

일반 사람들은 중국하면 가장 먼저 만리장성을 떠올린다. 만리장성은 동쪽으로는 진황도 산해관에서 시작하여 북경의 팔달령 장성을 거쳐 서쪽으로 가욕관으로 이어진다. 가욕관성루는 다른 장성과 달리 내성과 외성이 잘 복구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내성에는 관리와 귀족이 살았고, 외성에는 평민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분에 따라 이용하는 길도 달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성루로 들어갈 때 길은 잘 닦여져 있었고, 나올 때 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귀족의 길로 들어가 평민들의 길로 나왔으니 몇 시간만에 평민과 귀족을 다 맛본 셈이다. 일장춘몽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a 가욕관 내성

가욕관 내성 ⓒ 정호갑

그중 외부의 침공에 견딜 수 있도록 사다리꼴로 만들었던 옛 성루를 그냥 밋밋한 사각형으로 복구한 것을 보면 역사에 대한 고증보다 먼저 관광 수입을 올릴 목적으로 그냥 대충 쌓아 올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에 거슬린다.

a 가욕관 외성

가욕관 외성 ⓒ 정호갑

강력한 힘을 지닌 그들이 6000여㎞에 이르는 장성을 왜 오랜 세월에 걸쳐 쌓고 쌓았을까? 중화를 자부하는 그들이 오랑캐라 무시하는 주위의 작은 나라들을 정말 두려워했을까?

a 가욕관성루

가욕관성루 ⓒ 정호갑

물리적인 침공을 막는데도 그 목적이 있었겠지만 오랑캐의 문화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막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오랑캐와 다른 중화라는 선민의식이 있었기에 이것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강력한 힘은 밖으로 나아가는 데서보다 나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장성은 물리적인 것을 넘어 정신의 벽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을 경계로 저들과는 다르다는 그들의 자부심이 바로 중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뺏은 것을 지키는 것이 바로 중국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뺏은 땅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인 장성을 쌓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중화를 지키기 위해 역사의 성을 쌓고 있다. 그들은 고구려의 땅을 비롯한 많은 소수 민족의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의 것을 그리고 뺏은 것을 지켜내기 위해 견고한 성을 쌓고 있는 것이다.

지킴과 받아들임, 이 두 가지의 조화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고 지키기만 하면 썩기 마련이고,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결국에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다.

중국은 이제 문을 활짝 열어 젖혀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 것을 꾸준히 지켜 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세계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내 것 없는 세계화는 식민지화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내 것을 확실히 가지고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발걸음을 돈황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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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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