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툰 감축' 신문보도가 헷갈리는 까닭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미국의 심기를 어떻게 다스리나

등록 2005.11.21 10:20수정 2005.11.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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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라크 아르빌로 파병되었던 자이툰 부대원 340여명이 지난 2월 26일 새벽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부대원들은 오후 3시 경기도 광주 특전사교육단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1달간의 휴가에 들어가거나 전역을 했다.

이라크 아르빌로 파병되었던 자이툰 부대원 340여명이 지난 2월 26일 새벽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부대원들은 오후 3시 경기도 광주 특전사교육단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1달간의 휴가에 들어가거나 전역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것 같다. 손님을 불러놓고 뒤통수를 칠 수 있냐는 반응이다. 정부여당이 자이툰부대 파병기간을 1년 연장하되 부대원 1천명을 감축하기로 비공식 결정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 결정적 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지난 18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1천명 감축 결정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게 문제가 됐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자이툰부대 파병에 여러 번 감사의 뜻을 표한 지 몇 시간 만에 감축안이 보도됐다. 미국 입장에선 뒤통수가 아렸을 법하다.

뒤통수 맞은 부시, 한국의 실책인가?

그럼 한국이 잘못한 걸까? 일단 그렇게 보인다. 외교관례로 봐도, 인간사 도리로 봐도 '결례'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일보>는 "공연히 한미 간에 아무런 이득 없는 논란을 부른 실책을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중앙일보>는 <한국일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예민한 사안을 보다 신중하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이미 사전협의를 진행해 온 게 맞다면 미국도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2~3개월 전부터 한미 실무급에서 협의를 진행해온 사안이기 때문에 미국이 몰랐을 리 없으며,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비공식 입장이기 때문에 한미간 공식 의제로 공개할 사안이 아니라는 국방부의 설명을 들은 뒤 나온 논평이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모두 국방부의 설명을 들었을 터인데 어떻게 이리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은 두 신문의 다음 구절을 보면 더 증폭된다.


한국 당국의 '실책'을 지적한 <한국일보>는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저항공격과 이라크 민중의 반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철군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마당에 "우리가 이라크 평화재건 명분에 마냥 매달리는 것이 옳은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미국의 '자제'를 당부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자이툰부대 파병은 한미동맹의 재조정 과정에서 터져나온 양국간 불협화음을 해소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라크 문제로 수렁에 바진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자이툰부대는 큰 원군이며 양국 동맹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양국은 더 이상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긴밀한 협조체계를 다시 다지길 바란다."


<한국일보>는 사실상 철군을, <중앙일보>는 파병 연장을 주장한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사실상 철군을 주장한 <한국일보>는 왜 한국의 '실책'을 지적했을까? 또 파병 연장을 주장한 <중앙일보>는 왜 미국의 '자제'를 당부했을까?

한국 감군→미 철군파 입지 강화→한국 내 지형 변화

a 지난해 12월 31일 밤 '국군의 이라크 파병기간 연장동의안'이 국회에서 찬성 161 반대 63 기권 54로 가결됐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국군의 이라크 파병기간 연장동의안'이 국회에서 찬성 161 반대 63 기권 54로 가결됐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에 대한 힌트는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는 1천명 감축 보도가 "공교롭게도 부시 대통령이 미국 내 이라크 철군 주장을 강하게 반격하는 시점"에 나온 점 때문에 미 행정부가 무척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전쟁에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한 동맹국의 감군 계획은 미국 내 비판세력에 철군 주장의 더욱 큰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더 나아가 1천명 감축에 대해 "미 측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묘한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마이클 그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16일 일본에서 부시 대통령의 방한 사전 브리핑을 하면서 자이툰부대 규모가 3천명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여단 규모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신문이 던진 힌트를 모아 정리하면 이렇다. 자이툰부대 1천명 감축은 부시 미 대통령에겐 타격이다. 한미간 이견이 노출되면서 감축이 추진된다면 미국 내 철군파의 입에 마이크를 대주는 격이다. 파병규모 3위인 우방 한국마저 감축하는 마당에 미국은 뭐 하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미국 내 철군파가 힘을 얻으면 얻을수록 한국 내 지형도 달라진다. 이라크 전쟁의 본가 미국에서마저 철군 논란이 거세지는 마당에 왜 우리가 파병기간을 연장해야 하느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감축방안 설명 과정, 꼬투리 될까

그래서 빨리 덮는 게 상수다.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1천명 감축보도가 문제가 되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경위를 설명했고, 라이스 장관이 '양해'했다고 한다. 이로써 돌출된 사안은 정리됐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돌출된 부분만 정리됐을 뿐 뿌리는 남아있다. 미국 행정부 입장에선 감정을 털기 쉽지 않다. 문제는 이 감정이 자이툰부대의 감축과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 협상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관건은 이것이다. 국방부는 2~3개월 전부터 1천명 감축방안을 미국에 설명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단지 일방적 설명에 불과했다면, 즉 미국이 1천명 감축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진다. 한미간 이견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정부 여당이 부시 방한기간 중에 감축을 비공식 결정했고, 그것이 공교롭게 외부로 흘러나왔다면 미국은 이를 꼬투리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일보>가 "우리가 이라크 평화재건 명분에 마냥 매달리는 것이 옳은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이득 없는 논란을 부른 실책"을 비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감정이 손상된 만큼 꼬투리를 잡은 손아귀 힘을 배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a 지난 6월 2일 오전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 20여명이 청와대 입구 합동청사앞에서 부대 철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6월 2일 오전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 20여명이 청와대 입구 합동청사앞에서 부대 철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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