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소원했던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세요

[꼬투리의 falling in 뮤지컬 8]연극 <봄날은 간다>, 5년 만에 재공연

등록 2006.04.17 11:54수정 2006.04.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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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축제

말 그대로 소극장인 극장 내부에 들어서면 향긋한 풀내음과 함께 푸른 잔디가 눈 앞에 펼쳐진다. 무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객석 전체에 예쁘게 깔린 잔디는 천연잔디란다. 관객에게 주어진 선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눈이 예상 외의 호사를 즐기는 사이 귓가에는 친숙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요즘 공연계의 트렌드라고나 할까. 막이 오르기 전부터 관객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게 추세라면 추세다.


a 정말 대단한 무대와 객석이 아닐 수 없다. 천연잔디가 깔려진 극장...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 아니겠는가!

정말 대단한 무대와 객석이 아닐 수 없다. 천연잔디가 깔려진 극장...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 아니겠는가! ⓒ 극단 축제

조명이 꺼지면서 공연이 시작될 때쯤 살며시 신발을 벗어본다. 극단 측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잔디를 촉감으로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이 말 그대로 예술이다.

극단 축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2006 축제가 거는 수작(秀作) 둘' 연극 <봄날은 간다>. 제목이 주는 느낌 그대로 서정적이고 차분한 내용으로 공연은 이어진다. 너무 차분해서 조금은 지루함이 느껴질 법도 하다. 특별한 감정의 기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a 이렇게 편안한 표정은 진짜 피가 섞인 친형제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힘든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렇게 편안한 표정은 진짜 피가 섞인 친형제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힘든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 극단 축제

내내 잔잔하게 진행되던 공연은 '산 너머 남촌에는'이란 노래에 맞춰 세 배우가 합창을 하며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잠시 리듬을 탄다. 하지만 이내 무대는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객석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극장 위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만이 시끄럽게 들려올 뿐이다.

이용이와 박상종, 그리고 장영남 세 배우의 연기력으로 이끌어가는 연극 <봄날은 간다>. 거기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무대와 안무가 돋보인다. 무대를 맡은 심채선씨는 제작스케치를 통해 이렇게 밝힌다.

"잔디의 촉각적인 냄새는 우리와 '그들'을 과거의 시간으로 이끌고, 무대 어딘가 매달려 귓가를 울리는 풍경(風磬) 소리로 잡히지 않는 바람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a 극중 남편 역을 맡은 박상종(왼쪽)과 어머니 역의 이용이의 모습

극중 남편 역을 맡은 박상종(왼쪽)과 어머니 역의 이용이의 모습 ⓒ 극단 축제

이용이의 구수한 사투리와 구성진 노랫가락은 차분한 분위기의 극을 그나마 조금은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관객들을 잠간씩 웃게 해주는 역할도 그의 몫이다. 박상종의 푸근한 연기 또한 감칠맛을 낸다. 슬픔에 잠겨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배우 장영남에게서 처연함이 절절히 느껴진다.

a 차분함으로 극중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 배우 장영남의 연기하는 모습

차분함으로 극중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 배우 장영남의 연기하는 모습 ⓒ 극단 축제

극중 부부인 두 남녀는 손을 잡고 걸어다니는 것과 단 한 번 뜨겁게 포옹하는 것 외엔 어떤 사랑 표현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애잔하면서도 절절한 사랑은 뭉클함으로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남편의 등에 업힌 아내 수야의 모습은 영락없는 오누이의 그것을 닮았다.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지켜보는 그들의 어머니는, 기약없이 떠난 후 소식이 끊어진 그의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대사는 무척이나 시적이어서 더 절절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아직 멀었어?'라는 아내의 물음에 '거의 다 왔어. 봄볕 한 줌만큼만'이라고 남편은 대답하는 식이다.

<봄날은 간다>는 영화를 통해 더 잘 알려졌다. 그렇다면 연극과 영화의 차이점은 무얼까. 두 작품 모두 아련하고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영화에서는 그 애틋함을 담백하고 심플하게 풀어냈다면, 연극은 좀 더 질기고 원초적인 가족사와 신화적인 모티브를 작품 전반에 깔아 놓았다고 연출자는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채무를 갚아주지 않는 데 원한을 품어 어머니를 죽인 아들과, 빰 맞은 데 앙심을 품어 경찰에 신고한 아들의 뉴스가 사회면을 연일 장식해 우리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요즘. 실제 피붙이가 아님에도 뜨거운 사랑과 정으로 살아가는 극중 인물들이 더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a 이들의 모습은 흡사 진짜 오누이 혹은 실제 부부처럼 닮아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흡사 진짜 오누이 혹은 실제 부부처럼 닮아 있었다. ⓒ 극단 축제


a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 ⓒ 극단 축제

햇살 따사로운 봄날 가족의 손을 잡고 가까운 근린공원에 나가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건 어떨까. 비록 예쁘고 화려한 꽃과 신나는 놀이기구는 없어도 좋을 것이다. 들꽃 몇 송이 피어있을지라도 가족의 정이 물씬 풍기는 봄날을 만든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5월 가정의 달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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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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