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소탕물' 퍼내기 최고였지

아이들 꿈은 둘째 치고, 상수원까지 오염시키는 일... "험난한 물난리에 꼭 감시해야 하는지"

등록 2006.07.19 12:20수정 2006.07.1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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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예전 남부지방 전형적인 외양간과 행랑채 모습. 돼지, 닭, 소가 나눠 쓰며 살았다. 쇠죽솥 옆에 아랫방이 있었다.

예전 남부지방 전형적인 외양간과 행랑채 모습. 돼지, 닭, 소가 나눠 쓰며 살았다. 쇠죽솥 옆에 아랫방이 있었다. ⓒ 시골아이 김규환

예전 외양간은 아래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쇠죽솥도 밥솥이나 국솥보다 대여섯 배는 컸다. 측간과 돼지 막에 방 한두 개로 행랑은 채워진다.


부사리도 오줌발이 보통이 아니지만, 암소는 마치 옹녀가 폭포수를 쏟아내듯 어린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오줌을 싼다. 그때마다 나는 행여나 묻을까봐 저만치 한쪽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그 드넓은 외양간도 소똥이 묻지 말라고 하루 두어 번 조금씩 나누어 넣어준 외양짚 양이 늘어감에 따라 차차 높아지면서 좁아지곤 한다. 송아지라도 한 마리 더 있으면 한 달이 채 못 되어 비좁은 상태가 된다.

때론 소똥 범벅이 되기도 하는데, 사람도 견디기 힘든 장마철이나 태풍 때는 그야말로 질컥거리는 수렁이 되어 발 디딜 틈이 없다. 왜인고 하니, 소가 싼 오줌과 똥뿐만 아니라 땅에서 빗물이 스며들어 양을 대폭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주인이 가보 1호를 위해 한 달 전이나 최소 보름 전에 퍼냈어도 감당하기 힘들도록 늘어만 갔다. 이땐 소뿐만 아니라 사람이 밥을 해먹는 아궁이마저 물난리를 겪고 있는 때니, 맨 땅 위에 지은 집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전남 화순 출신 문병란 시인은 코카콜라를 '소탕물'에 비유하였다. 소탕물은 외양간 안이나 밖에 소똥과 오줌이 뒤섞인 물이 한곳에 모인 탁한 색깔의 오물이다. 더러 외양간 바깥이 넓은 집은 소탕물을 모아둔 곳이 외양간과 분리되어 밖에 있었지만, 대개는 외양간 한 귀퉁이에 소탕물이 모이는 곳이 있다.


a 측간 바로 앞엔 소변통이 놓여있었다. 그걸 받아서 물지게로 져날라 밭이나 논에 뿌렸을 만큼 퇴비와 거름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도시 아이는 빈 통도 제대로 지지 못하고 있다.

측간 바로 앞엔 소변통이 놓여있었다. 그걸 받아서 물지게로 져날라 밭이나 논에 뿌렸을 만큼 퇴비와 거름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도시 아이는 빈 통도 제대로 지지 못하고 있다. ⓒ 시골아이 김규환

아버지는 외양간 하나는 정갈하게 관리하셨다. 외양짚을 내서 1차로 마당 한 쪽에 가득 쌓고는 발효를 돕기 위해 소탕물마저 허투루 버리지 않고 위에 끼얹었다. 농한기엔 오줌장군에 가득 담아 밭에 뿌리곤 하였다.

근 일주일 동안엔 마당에 소탕물이 흘러서 고이기도 했지만, 그게 바로 요즘 생각해보면 환경까지 생각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들에 일을 나가면 어린 우리에게 오줌 한 번도 아무 데나 누지 말고 논이나 밭에 싸라고 하셨던 분이다.


때는 바야흐로 장마철이다. '마른장마'가 아닌 6월 23일 경부터 시작된 '진장마'가 7월 중순까지 지속되자 마을은 물바다가 되었다. 골목길과 우리 집 마당도 질컥거려 푹푹 빠지기 일쑤다. 빗물이 부쩍 불어나 바짓가랑이를 걷지 않고는 오가기 힘든 지경이다. 패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때 동네 아짐('아주머니'의 전라도 사투리)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 있었다. 수법을 넘어 호기로 보고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고무로 된 소매통에 이 소탕물을 퍼 담아 비가 철철 쏟아질 때 아무도 모르게 몰래 버리는 일이다.

a 돼지 우리에 어미 돼지 두어 마리, 새끼가 예닐곱 마리였을 때까지가 딱 좋았다. 대량 사육하면서 더 이상 가축이 아니되고, 오염의 주범이 되어 안타깝다.

돼지 우리에 어미 돼지 두어 마리, 새끼가 예닐곱 마리였을 때까지가 딱 좋았다. 대량 사육하면서 더 이상 가축이 아니되고, 오염의 주범이 되어 안타깝다. ⓒ 시골아이 김규환

허드렛바가지로 듬뿍 퍼서 통에 가득 차면 머리에 이고 또랑으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립문 앞까지만 가서 소탕물이 튀지 않게 들이붓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마치 김빠진 콜라를 아깝게 쏟는 모양이다.

한도 끝도 없을 성싶던 소탕물이 열댓 번을 거듭하자 양이 약간은 준 듯하다. 아침나절부터 시작된 소탕물 퍼내기가 서너 시간 가까이 지속된다.

마침 장맛비가 약간 주춤하니 물 반, 소탕물 반으로 고샅길이 옅은 커피색으로 바뀌었다. 그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물이 흐르면서 거품이 살아나 뽀글뽀글 굴러가니 보기에도 영 아니었다.

우린 그 무렵 또랑에서 큰물도 아랑곳 않고 국기봉 앞에서 다이빙으로 시작하여 급물살을 타고 놀았다. 성난 파도처럼 일렁이는 물살을 헤치고 건너편으로 건너기도 했다. 봇물을 터 버렸지만, 동네 앞길을 쓸어가 여간 위험한 게 아니다.

얼마간 놀다가 보면 야릇한 냄새를 확인하고는 아이들은 더 이상 몸에 바닷가 뻘처럼 생긴 흙탕물을 배통아지에 바르지 않는다.

"야, 누구 집이냐? 소탕물 냄시 난당께. 아이 더러워."
"글게 말이다. 꼭 비만 오면 이러더라."
"아니, 장대비가 쏟아질 때면 몰라도 꼭 비가 그칠 때 이러면 우린 어쩌라는 것이여?"
"누가 아니래. 그래도 정해진 집이 있게 마련이지. 누군지 알겠다."
"이 골목에서 나오는 것인께 성호집, 성열이집, 병문이집, 용기집…."
"그만 해람 마, 글다가 집집마다 다 부르겠다."


평소 줄줄이 도랑 앞에 서서 "광주 새끼덜 오줌물 먹게 짝짝 갈겨불자"고 했던 우리였다. 치기로 한 일이라 100미터도 안 가 정화되고 말았지만, 너도나도 동시에 양심을 버리니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a 인분과 축분을 여기에 담아 지게에 지고 논밭에 뿌려주면, 때로 기생충은 있을지언정 요즘처럼 오염된 농산물은 없었다. 유기농을 하면서 퇴비 자급은 필수가 아닐까?

인분과 축분을 여기에 담아 지게에 지고 논밭에 뿌려주면, 때로 기생충은 있을지언정 요즘처럼 오염된 농산물은 없었다. 유기농을 하면서 퇴비 자급은 필수가 아닐까? ⓒ 시골아이 김규환

소 키우는 집 가운데 8할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한 집에서 최소 1톤에서 2톤까지 한꺼번에 쏟아낸 오물은 결국 광주전남지역 상수원인 동복댐으로 고스란히 흘러갔다.

"야, 물 색깔이 갑자기 흐리멍텅해졌어야."
"아까침에 영희 엄마가 윗 보에서 소탕물을 붓더라."
"에잇 참, 글면 진작 야그 해줘야지 임마."
"아휴 기분 나빠. 그만 들가자."


물에 빠진 쥐 마냥 머리를 적신 채 어깨엔 웃옷을 걸치고 고무신은 양손에 들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샅은 거품을 잔뜩 머금은 소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짚시랑물에 발을 씻는 것으로 모자라 난데없는 비누칠을 해야 했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소나 돼지를 길렀지만 한 집에 많아야 두어 마리였다. 한 세대가 흐른 요즘에도 기업화된 대량목축으로 인한 축분(畜糞)을 수십 톤 마구 버려 구속되었다고 한다. 그 버릇 어디 남 줄까 보냐.

아름답지 못한 관습이나 인습은 한 시라도 빨리 버림이 마땅하다. 이 험난한 물난리에 꼭 감시를 해야 하는가?

a 여름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이처럼 맑을 물거품을 내뿜는 도랑, 계곡이 산골짜기에 즐비하면 좋겠다.

여름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이처럼 맑을 물거품을 내뿜는 도랑, 계곡이 산골짜기에 즐비하면 좋겠다. ⓒ 시골아이 김규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를 만들고 있답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를 만들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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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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