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렁이에요!

[갯살림]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갯벌-둘

등록 2006.08.04 11:55수정 2006.08.0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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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징그러워."

1미터가 넘는 지렁이가 구멍에서 기어 나와 열심히 흙을 집어먹다가 인기척에 순식간에 몸을 숨긴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엄마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빨간 등대가 인상적인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어촌계사무실. 서울 어느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 10여 명이 엄마 손을 잡고 오이도어촌계사무실을 찾았다. 며칠 전 갯벌체험을 하기 위해 엄마들이 신청한 모양이다. 인터넷을 보고 신청한 엄마들은 서울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오이도역에 내려 이곳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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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엄마들은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느라 분주하다. 자신의 얼굴에 자외선을 차단하는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팔에도 다리에도 화장품을 바른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거의 채비가 끝나갈 무렵, 이희근 오이도어촌계 간사는 능숙한 솜씨로 아이들에게 갯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이야기해줬다.

"어린이 여러분, 갯벌에 와봤어요?"
"예, 게하고 맛하고 잡아 봤어요."

갯벌에 들어가기 전에 오이도를 비롯해 인근 대부도나 제부도, 그리고 선감도 등 경기만 갯벌을 촬영한 영상물을 아이들에게 이희근 간사가 보여주었다. 어민들이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칠게나 갯우렁, 서해비단조개, 민챙이 등을 잡는 모습도 영상물에 담겨 있었다.


갯벌에서 열심히 일하는 어민이나 갯벌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 이들이 모두 갯벌의 주인들이다.

아이들의 주목을 끌었던 대목은 1미터는 될 성싶은 갯지렁이가 구멍에서 어슬렁거리며 나와 개흙에서 먹이를 찾다가 조그만 반응에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기는 장면이었다. 또 갯우렁이 조개껍질에 구멍을 내고 속살을 먹는 장면 등도 관심 있게 봤다.


화면 가득 집게가 새로운 집을 찾는 장면이 나타났다. 집게는 자라면서 몸에 맞는 조개나 소라껍질을 찾아 몸을 숨기며 갯벌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이놈은 게을렀던지 빨리 집을 찾질 못했다. 그리고 칠게들이 생활하는 곳에 들어갔다가 날카로운 집게발의 공격을 받고 끝내 숨졌다.

아무리 흥미로운 화면을 보여준들 빨리 갯벌로 들어가 호미로 조개를 잡는 것에 비하겠는가. 더구나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으려 손에 잡힐 듯 나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10여분 가량 영상교육을 마친 후 드디어 갯벌로 향했다. 포구에 마련된 어촌계사무실은 영상교육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작은 매점도 갖추어져 있다. 모두 어촌계에서 운영하고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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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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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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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고둥'이나 '조개'는 갯벌에서만 살아요

어린이들은 갯벌에는 신발을 벗어두고 양말을 신은 채로 갯벌로 향했다. 오이도 갯벌은 모래 갯벌은 아니지만, 발목 이상으로 빠지지 않는 갯벌이다. 맨발로 갯벌의 부드러움과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조개나 굴 껍질 등이 있어 아이들이 상처를 입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양말만 신고 갯벌체험에 나서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갯벌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호미를 쥐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호미를 쥐어주는 순간 선생님의 설명보다는 갯벌을 파는 것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여러분, 고둥이나 조개들은 어디에서 살아요?"
"바다에서요."
"그럼 집에는 바다나 갯벌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래요. 조개들은 바다와 갯벌에서만 살 수 있어요. 먹을 수 있는 것들만 나중에 엄마와 함께 캐서 가져갑니다. 지금은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해요."

호미와 작은 바구니는 이미 어머니에게 나누어주었다. 대신 아이들은 어머니들과 떨어진 곳에서 호미질을 하도록 했다. 그곳에는 동죽과 가무락이 많은 곳이다.

"어린이 여러분, '우리가 왔어요'라고 갯벌에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손바닥에도 손등에도 팔에도 갯벌을 묻히세요. 주물럭거려 보세요. 갯벌의 흙은 더럽지 않아요. 선생님도 이렇게 만지잖아요."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민챙이'였다. 출발하기 전 영상을 통해서 확인했던 것들이라 아이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른다.

"민챙이다, 민챙이알이다."

그렇지만 쉽게 만지질 못한다. 이번에서 선생님이 가만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어린이들에게 만져보도록 한다. 그리고 느낌을 물어본다.

"미끌미끌해요."
"그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오염시킨 갯벌을 깨끗하게 하는 거예요. 갯벌에 민챙이가 없으면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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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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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여자아이가 예쁘게 생긴 고동을 들고 선생님의 관심을 끈다. 이간사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우리친구가 정말 예쁘게 생긴 고둥을 찾았네."
"여러분 엄마들이 입는 옷 중에서 가장 예쁜 옷이 뭐예요."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다. 선생님이 요구하는 답은 '비단'이었던 모양이다. 고둥 중에 가장 예쁜 갯벌이라 해서 '비단고둥'이다. 결국 선생님이 답을 말하고 만다. 서해에 있다고 해서 '서해비단고둥'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모두들 신기한 듯 갯벌에 널려 있는 비단고둥을 집어 든다.

"자 어린이 여러분 저기 깃발이 꽂아져 있는 곳까지 달려갈 거예요. 누가 먼저 가는 봅시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갯벌에서 달리기시합이 벌어졌다. 그곳에는 칠게와 갯지렁이들이 많은 곳이다. 작은 갯골을 따라 예쁜 갈매기와 칠게들의 발자국이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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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선생님이 작은 구멍에서 칠게를 잡아낸다.

"어린이 여러분, 이 게를 보세요 조금 있으면 눈이 튀어나올 거예요. 봐요 나오지요."
"와∼"
"가만히 만져봐요."

아이들이 게 눈에 손을 대자 '게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제 아이들은 게는 물론 민챙이까지 쉽게 만질 수 있다. 개흙도 주저하지 않고 만진다. 불과 30분전에 갯벌에 들어올 때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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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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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엄마 지렁이에요

마침내 선생님이 작은 갯지렁이를 찾아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어린이 여러분, 이게 갯지렁이에요. 갯지렁이가 갯벌에 구멍을 만들어 살기 때문에 갯벌이 숨을 쉬는 거예요. 갯지렁이는 갯벌만 먹고살아요. 지금 여러분이 만지고 있는 갯벌 속에 아주 작은 먹이를 먹고 흙은 다시 내놓아요."

선생님이 노리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갯지렁이를 만져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들이 '징그럽다'고 소리쳤던 지렁이를 아이들에게 만져보게 하고 싶었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보던 아이들이 이제 손바닥에 얹어놓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한 아이가 만지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갯지렁이를 만져본다. 어떤 아이는 갯벌에서 갯지렁이를 찾아서 선생님에게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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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그 사이에 엄마들은 작은 바구니에는 동죽과 가무락을 채워졌다. 엄마들도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달려든다. 선생님은 갯벌생물 관찰을 마친 아이들을 엄마들에게 데려갔다. 아이들은 엄마가 가지고 있던 호미를 들고 갯벌을 파기 시작한다. 엄마와 함께 조개를 잡는다.

"엄마 이거 민챙이에요. 이거는 비단고둥이에요. 지렁이도 있어요."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엄마에게 자랑한다. 엄마도 처음 듣는 이름들이다. 엄마가 징그럽다던 갯벌생물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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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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