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애들만 이뻐하면 안 되잖아요"

<시 하나에 삶 하나 11> 새 아이들을 생각하며...

등록 2007.02.27 14:41수정 2007.02.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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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가슴에 칼금을 그은 편애를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구나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순결의 첫눈을 맞으며
한 칠판 가득 적어놓은
법칙과 법칙으로 이어지는
죽은 모국어의 흰뼈를 지우자
흰눈발 위로 싱싱히 살아오르는 모국어로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너희들은 나의 이름을
사랑과 용서로 힘차게 불러 껴안으며
한 몸이 되자
한 몸이 되어 달려 나가자


- 정일근 ‘바다가 보이는 교실9’ -


새 학년 새 학기를 앞두고 내가 맞이할 아이들을 생각한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한다는 것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이번에 함께 할 아이들은 괜찮은지, 크게 말썽을 피울 애들은 없는지, 학교생활에 걱정하고 학비를 걱정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없는지. 그리고 올핸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고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등이다.

@BRI@초임 시절이다. 대부분 그렇지만 초임 땐 모든 게 열정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실수도 많다. 열정이 지나치다 보니 자신의 생각에 아이들이 무조건 따라와 주길 원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에 무조건 동의를 하질 않고 내 생각과는 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면 데리고 여러 이야길 나누지만 그때도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주기보단 내 생각, 내 마음, 내 신념을 들려주는 걸로 대화를 시작하고 대화를 끝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서로 생각에 엇박자가 나게 되고 내 마음에 맞는 아이에겐 더 신경을 쓰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겐 신경을 덜 썼다. 그러면서 아이들 사이에 떠돈 말이 누구누군 예뻐하고, 누구누군 미워한다는 말이다. 아이들한테 그렇지 않다고 해명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난 편애라는 걸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자식도 예쁜 자식이 있고 예쁘지 않은 자식이 있듯이 아이들도 그런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다. 늘 지각하고 결석하고 무슨 말을 하면 톡톡 내뱉는 아이보단 살갑고 모든 일에 열심히 하려는 아이에게 아무래도 마음이 더 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들 눈엔 그게 '편애'라는 눈으로 보인가 보았다.


한 번은 아이들과 솔직 대담을 한 적이 있었다. 야자 시간, 공부에 지친 아이들과 운동장에 모여 공놀이를 했다. 여름의 한밤중, 아이들은 뛰고 고함치고 때론 넘어지며 운동장을 왁자하게 펼쳐놓았다. 나도 그 아이들 속에 묻혀 땀을 흘리고 헉헉거렸다. 운동, 아니 놀이가 끝나고 아이들과 달빛이 환한 스탠드에 앉아 일명 솔직 대담이라는 걸 한 것이다.

"자,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아라. 불만도 괜찮고 너희들에게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요구 사항도 괜찮다."


처음엔 내 말에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아이들이 어느 한 아이가 말을 꺼내자 이런저런 불만을 봇물처럼 터놓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누군 예뻐하고 누군 예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선생님 말 잘 듣는 애들만 이뻐해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지각할 수도 있고 수업 시간에 딴 짓 할 수도 있지 그런 걸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어떡해요. 선생님은 어른이잖아요."
"또 있어요. 화 안 냈으면 좋겠어요. 웃을 땐 좋은데 화를 낼 땐 솔직히 무서워요. 그리고 잘 토라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도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할 테니 화내지 마세요. 알았죠?"


그런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의 아이들이었다. 평소 잘 대해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평소 말썽 피우고 딴 짓 하던 아이들이 불만을 터트릴 줄 알았는데 그 아이들은 오히려 날 위로하거나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때 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날의 솔직 대담은 나의 사과와 당부의 말, 그리고 아이들의 다짐으로 끝을 맺었다. 그 이후로 아이들과 난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 그 아이들은 간간이 연락을 해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날 이후로 변한 아이들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부러 아이들의 긴장감을 높이려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화를 내려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특별히 어떤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골고루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직 진행형이지만 말이다.

곧 새 아이들과 일 년을 함께 해야 한다. 벌써부터 몇몇 아이들은 날 볼 때마다 "선생님, 올해 고생 좀 하겠어요. 선생님 반에 학생부 출신 많거든요" 하고 걱정을 한다. 1학년 때 학생부를 들락거렸던 아이들이 내가 맡은 반에 많이 포진돼 있다는 소리이다.

그러나 난 특별히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변하기 때문이다. 또 말썽을 피우면 피우는 대로, 얌전하면 얌전한 대로 장단점이 있음을 또 알기 때문이다. 물론 걱정해주는 아이들 말대로 고생이야 하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으며 시인의 시구를 읊조려 본다.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 너희들은 나의 이름을 / 사랑과 용서로 힘차게 불러 껴안으며 / 한 몸이 되자 / 한 몸이 되어 달려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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