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가르 이발사에 내 머리를 맡기다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35] 카슈가르 바자르 둘러보기

등록 2007.03.13 10:44수정 2007.03.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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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가르 고성

a 카슈가르 고성의 전경. 입장료가 있긴 하나 카슈가르의 오랜 주택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고 대부분은 내부에 가게를 운영해 살고 있다

카슈가르 고성의 전경. 입장료가 있긴 하나 카슈가르의 오랜 주택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고 대부분은 내부에 가게를 운영해 살고 있다 ⓒ 오창학

사막 모래의 특성 때문일까? 고비도 그랬지만 타클라마칸 주변의 집들은 그 지은 연대를 알기가 어렵다. 1년 된 집도 100년 같고 100년 된 집도 1년 같다. 그러나 카슈가르 고성이라 불리는 구시가지 주택구는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의 향취를 물씬 풍긴다. 이제 자동차가 나귀를 누르고 현대식 건물들이 그득한 고도에서 그나마 카슈가르의 옛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


교묘하게도 이런 장소를 관광지화 해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서는 입장료를 받는다. 주민이 거주하는 전통 공간. 우리의 하회마을이나 낙안읍성쯤 되는 발상이다. 위구르 안내원을 앞세우고 다니는 골목의 정취가 더욱 정겹다.

그러나 골목의 끝, 사이사이로 그녀가 안내하는 곳을 따르다 보면 결국 어떤 종류의 가게로 들어서게 된다. 소소한 기념품, 인근 유적에서 발굴했다는 골동품(믿을 수 없다), 카슈가르의 특산 양탄자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a 고성 안 풍경. 우측 하단 사진이 양탄자 판매점 대문이다. 주인아주머니와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자기 가게의 번호(349번)가 보이게 찍어 달라기에 원대로 한 컷

고성 안 풍경. 우측 하단 사진이 양탄자 판매점 대문이다. 주인아주머니와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자기 가게의 번호(349번)가 보이게 찍어 달라기에 원대로 한 컷 ⓒ 오창학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는 게 지겨워 상점 안으로 들어서는 건 건너뛰고 골목만 구경할 수 없겠냐 요청한 상태였지만 카슈가르의 양탄자와 칼에 대해서만큼은 진한 동경을 품고 있던 터라 양탄자 가게 안내를 부탁했다. 칼은 어차피 귀국 시에 통관이 어려울 터이므로.

물론 경제적 여력도 문제이거니와 백구에 실을 수 있는 더 이상의 공간도 없어 큰 양탄자 따위는 언감생심. 그저 여기 사람들이 기도할 때 쓰는 자그마한 방석용 양탄자를 몇 점 사서 나섰다.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말 운운은 귓등으로 들었다.

카슈가르의 바자르(일요시장)


a 카슈가르의 바자르(일요시장) 풍경

카슈가르의 바자르(일요시장) 풍경 ⓒ 오창학

운이 통하는지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바자르(시장)가 열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실은 운이라기보다는 바자르를 보고 싶어 일부러 일요일을 카슈가르에서 맞도록 일정을 진행한 노력의 공이다. 카슈가르 인근의 모든 사람과 타림분지 내의 모든 물산이 모인 것 같다. '국제무역시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상설무역시장 앞 모든 도가는 금세 거대한 시장으로 변하는 진풍경을 접한다.

뜨거운 햇살에 살 섞는 장사치의 호객소리가 순풍이 되어 사막 곳곳에서 운집한 사람의 물결 사이를 표류한다. 특별한 구매 목적을 갖지 않는 단순한 소요. 나는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나를 구경한다.


사람 사는 곳이란 어디나 그런 내음을 풍기는 것일까. 바자르는 단순히 물건이 거래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네 5일장처럼 정보가 오가고 반가운 얼굴들이 마주하는 교류의 장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는 풍경과 진득하게 나누는 흥정에는 정겨움이 담겨 있다.

바자르의 먹거리

a 바자르의 상인들. 이들은 정말 거래를 원해서 이곳에 앉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된 습관일까

바자르의 상인들. 이들은 정말 거래를 원해서 이곳에 앉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된 습관일까 ⓒ 오창학

영락없는 우리네 시골 장터의 풍경. 무좀과 신경통에 좋을 것 같은 말린 지네와 각종 벌레를 파는 이, 장식 괭이날 몇 점과 손도끼날 서너 개를 펼쳐 놓고 팔리길 기다리는 사람, 푸대 하나가 차지 않을 과일 얼마를 펼쳐 놓은 촌로, 한 사람이 끈으로 돌린 숯돌에 칼날을 가는 장인…. 참 다양한 인간군이 다양한 물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a 빙수 아저씨. 간이 극장처럼 TV로 영화를 상영하고 주문에 따라 얼음을 긁어 빙수를 만든다. 솜씨가 현란하다

빙수 아저씨. 간이 극장처럼 TV로 영화를 상영하고 주문에 따라 얼음을 긁어 빙수를 만든다. 솜씨가 현란하다 ⓒ 오창학

물건을 파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로 시선을 잡는 풍경이 있다. 마치 간이 극장처럼 텔레비전 한 대를 먼 발치에 두고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영화를 시청하는 빙수 가게의 모습. 위구르말로 더빙된 오래된 중국영화가 돌아가는 사이 주인 사내는 옆에서 얼음을 긁어 빙수를 만든다.

긁은 얼음에 우유와 시럽 같은 감미료를 넣고 머리 높이 만큼이나 그릇의 내용물을 털어 올리면 곧 잘 녹은 빙수가 된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손님들에게 내놓기 무섭게 다시 작업에 들어가는 그 솜씨가 현란하다.

a 바자르의 먹거리들. 맛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음료와 어디 가나 빠지지 않는 단 과일, 그리고 일종의 카슈가르식 순대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바자르의 먹거리들. 맛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음료와 어디 가나 빠지지 않는 단 과일, 그리고 일종의 카슈가르식 순대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 오창학

더운 날씨를 이용해 성황을 누리는 업종이 어디 빙수뿐이랴. 이름을 알 수 없는 음료도 성업이다. 몇 발짝 건너 하나씩 위치해 있는데 소다수 같은 물을 함박이나 양동이에 얼음과 함께 담아 500cc쯤 되는 유리 잔에 그득 부어 판다. 원재료라고는 거의 물과 얼음뿐이어서인지 가격도 저렴하다. 한 잔에 우리 돈 40원 가량.

객지 나와서 조심해야 할 게 물 갈아 마시는 것. 더구나 수백 명이 마신 유리잔에 다시 물을 부어 파는지라 위생상의 꺼림칙한 면도 있으나 그 맛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강해 한 잔을 나눠 마셨으나…. 어떤 맛인지 감지할 수 없다는 게 그 음료의 특징이다.

시장의 모습이 모두 그렇듯 카슈가르의 바자르에도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즉석에서 잘라 파는 과일은 물론이요 영락없는 카슈가르식 순대, 양꼬치 구이, 그리고 낭과 각종 빵들. 어떤 것은 기대감으로, 어떤 것은 두려움으로 손을 댄다.

약 700만 명으로 신장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는 위구르족은 돼지고기, 동물의 피, 늙어 죽거나 병사한 고기는 먹지 않는다. 남신장과 북신장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낙타, 양, 소 등의 반추동물은 먹고 통발굽 동물인 말, 노새, 나귀 등은 먹지 않는다.

a 거리의 악사. 소음 비슷한 그의 가창은 훌륭한 구걸의 방편이다

거리의 악사. 소음 비슷한 그의 가창은 훌륭한 구걸의 방편이다 ⓒ 오창학

여기 거리의 악사가 있다. 그의 연주 솜씨나 음색을 보니 '음악'과 연관한 사람은 아니고 구걸의 한 방편으로 노래와 연주를 택한 듯하다. 악보판을 크게 세워두고 괴상한 소음 비슷한 연주를 하다가 누가 동전이라도 넣어줄 양이면 두 손을 모아 눈을 찡긋하는 몸동작이 제법 익살스럽고 노련하다. 계속 같은 구절만 반복되는 그의 노래와 수없이 반복되는 그의 합장 인사를 한참이나 구경한다.

신장 지역에서 느낀 건데 여기 사람들에겐 적선이 하나의 문화요 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의 교리 때문일까? 길거리나 사원 앞에 돈통을 앞에 둔 걸인의 표정은 비굴하지 않고 그 안에 돈을 넣는 이들의 표정도 오만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걸인에게 선을 쌓으며 결코 나무라거나 지저분하다는 눈빛을 갖지 않는다.

국제무역시장의 할머니

a 국제무역시장의 화려한 틈새에서 무료하게 채소 몇 단을 놓고 하루를 기다리던 할머니.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에서도 꼭 저런 할머니만 눈에 들어와 가슴이 아팠다

국제무역시장의 화려한 틈새에서 무료하게 채소 몇 단을 놓고 하루를 기다리던 할머니.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에서도 꼭 저런 할머니만 눈에 들어와 가슴이 아팠다 ⓒ 오창학

국제무역시장 번드르한 길바닥에 노파 한 분이 시든 채소 몇 단을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저 노파는 자식이 없는 것일까? 사막 어디에나 가난의 모습이 넘쳐 흘렀지만 이런 장면은 눈에 쉬 잊혀지질 않는다.

한국에서도 재래시장에 가는 게 두려웠다. 다 팔아도 만 원이 안 될 것 같은 푸성귀 한 단을 놓고 하루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내가 사주겠지만 다음은, 그다음은? 그 할머니는 내가 사 주더라도 다른 할머니는, 또 다른 할머니는?

피한다고 보이지 않고 안 본다고 안 보이는 현실은 아니었지만 나는 무거웠다. 여기 카슈가르의 시장에서 또 무거운 마음이다. 한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왔는데 어여쁜 소녀 둘이 채소 한 단씩을 사 준다. 어딜 가나 이런 마음씨의 사람들이 있다.

카슈가르의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다

a 거리의 이발사. 장날에만 성업하는 업종인데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거리의 이발사. 장날에만 성업하는 업종인데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 오창학

집 떠난 지 이제 한 달이 다 돼 간다. 참 무던한 시간이 구물구물 흘러갔음을 내 머리칼과 수염을 통해 알겠다. 수염은 여행의 기록처럼 방치하고 싶지만 엉거주춤한 머리는 좀 다듬고 싶다.

시선을 한참 붙잡아 둔 진지한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싶었지만 그 옆의 익살스러운 이발사가 사람을 잡아끈다. 까짓것 머리끝만 살짝 치는데 누구면 어떠랴 싶어 머릴 맡겼다. 시장 사람들은 새 구경거리에 난리가 났다.

외국인의 머리를 다듬는 카슈가르 이발사의 가위질에 평소보다 과장된 동작으로 한껏 멋이 실리고 있음을 느끼겠다. 그러면서 연신 주변의 구경하는 사람들과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다. 철봉씨는 위구르 말을 모르니 통역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무언가 자랑의 말임을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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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학

두상의 모양이야 어찌 변하든 카슈가르의 이발사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주게 되어 기분이 좋다. 이 양반이 가정에 돌아가 풀어놓을 한 보따리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

머리를 깎고 값을 치르려 가격을 물으니 이발사가 5위안을 부른다. 그러자 주변의 구경꾼들이 왁자지껄 몇 마디를 쏘아부친다. 이발사가 멋쩍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편다. 2위안. 이 추억의 순간에도 어리숙한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고픈 욕심은 있었나 보다. 그의 수줍은 웃음이 순박하다.

바자르에서 카슈가르의 하루가, 실크로드의 어느 날이 저문다. 반갑다 사람 내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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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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