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루쉰형제를 결별하게 만들었나

중국현대문학사 최대의 수수께끼...저우쭈어런 사망 40주년에 부쳐

등록 2007.05.14 12:22수정 2007.05.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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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선생에게. 나는 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나는 기독교신도는 아니지만 다행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잘잘못을 따져 책망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모두 가엾은 인간일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꿈꿔 왔던 것은 모두 환상이었으며 지금 바라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인생이다. 다음부터 다시는 뒷마당에 있는 우리 집에 오지 말아 달라. 다른 말은 필요 없다. 평온하고 자중하길 바란다. 7월 18일, 동생 쭈어런(作人)."

등돌린 형제, 루쉰과 저우쭈어런

a 루쉰과 저우쭈어런형제는 의좋은 형제에서 카인과 아벨처럼 대립하며 각기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루쉰과 저우쭈어런형제는 의좋은 형제에서 카인과 아벨처럼 대립하며 각기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 김대오

이는 1923년 7월 18일, 루쉰(魯迅, 1881.9.25 - 1936.10.19)의 동생 저우쭈어런(周作人, 1885.1.16 - 1967.5.7)이 네 살 위인 형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그리고 이 편지 이후로 그토록 절친한 혈육지정을 나누던 의좋던 형제는 형제의 인연을 끊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과연 무엇이 중국현대문학 초기, 5.4 신문화운동의 두 큰 별이던 루쉰과 저우쭈어런, 형제를 갈라놓은 것일까? 이 문제는 중국현대문학사 최대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1966년 시작되는 문화대혁명의 충격 속에서 1967년 5월 7일 작고한 저우쭈어런의 사망 40주기를 맞이하여 중국언론은 이 해묵은 수수께끼를 다시 꺼내 풀어보려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은 없고 추측만이 무성하다.

루쉰형제 결별 수수께끼의 중심에는 저우쭈어런의 일본인 아내 하부토 노부코(羽太信子)가 있다. 1906년 형 루쉰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저우쭈어런은 1909년 일본인 여인 하부토 노부코와 결혼하고 1912년 고향인 샤오싱(紹興)으로 귀국했다가 1917년 루쉰의 소개로 베이징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외국문학서 번역 등 왕성한 활동을 한다. 1919년 루쉰과 저우쭈어런은 베이징에 집을 장만하여 형은 앞뜰에 동생은 뒤뜰에 나란히 살아가게 된다.

형제가 함께 한 지붕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불화가 생겨난 것은 분명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우선 루쉰이 제수씨 되는 하부토 노부코를 사모하여 몰래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고 또 남몰래 애정표현을 하다가 저우쭈어런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회복 불가능한 불화가 생겨났다는 추측이 있다.


또 루쉰이 장남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근검절약, 동분서주하며 돈을 버는데 제수 되는 하부토 노부코가 일본산 고급제품만을 고집하며 낭비를 일삼는가 하면 루쉰이 조카에게 중국음식을 사 줄라치면 지저분하다고 못 먹게 하는 등 생활습관과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잦은 갈등이 형제간의 우애에도 금을 가게 했다는 추측도 있다.

1924년 루쉰이 쓰던 물건을 가지러 동생 집을 찾았을 때 벌어지는 장면은 그때 이미 마흔을 넘긴 중국 최고의 작가이자 지성인이던 그들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골동품을 내던지는 그야말로 장난 아닌 싸움 장면으로 루쉰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형제간의 인연을 끊고 각자의 길을 가는 주씨 형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중국현대문학의 절반을 차지한다고까지 하며 '민족혼'으로 불리는 형 루쉰에 비해, 동생 저우쭈어런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의 길을 걷게 된다. 또한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국민당 정부에 의해 '매국노'로 몰려 감옥살이를 하게 되며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에는 루쉰연구에 관한 자료 정리와 외국문학의 번역과 민속학 연구로 여생을 보낸다.

'인간문학'을 주장하며 개인주의적 휴머니즘을 제창하고 혁명문학의 광풍 속에서도 은일적 삶을 살며 중국 현대수필의 최고봉을 이루었던 저우쭈어런에 대한 평가는 1990년대 크게 달라져 저우쭈어런 연구열풍을 몰고 오기도 하였다.

루쉰과 저우쭈어런 형제의 서로 엇갈린 인생행로는 굴곡진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현대 중국 지식인들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형 루쉰은 시대적 사명과 마주하고 처절한 투쟁의 삶을 살았는가 하면, 동생인 저우쭈어런은 시대와 비켜서서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색채를 지켜갔다.

그래서 루쉰과 저우쭈어런의 불화는 한 가족사적 비극이라기보다는 양립할 수 없는 중국 지식인사회의 불행으로 읽혀지는 측면이 강하다.

열정적으로 시대와 맞서 투쟁한, 위대한 형과 비겁하게 시대와 영합하였으나 다정하고 운둔자로서의 깊이를 지녔던 동생의 이야기는 카인과 아벨처럼 비극적이며 결국엔 흥부와 놀부처럼 다시 화해하는 그야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우쭈어런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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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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