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29) 비인간적

― ‘비인간적 상황’,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다듬기

등록 2008.11.16 11:17수정 2008.11.16 11:17
0
원고료로 응원

ㄱ. 비인간적 상황

 

.. 억압당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네 비인간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해 주는 활동이란 어떤 것인가? ..  《레오나르도 보프/김수복 옮김-해방신학 입문》(한마당,1987) 17쪽

 

 ‘억압당하다(抑壓當-)’는 ‘억눌리다’나 ‘시달리다’나 ‘짓밟히다’ 같은 낱말로 고쳐 줍니다. “효과적(效果的)으로 극복(克服)하도록”은 “슬기롭게 이겨내도록”이나 “훌륭하게 씻어내도록”으로 다듬고, ‘활동(活動)’은 ‘일’로 다듬습니다.

 

 ┌ 비인간적(非人間的) : 사람답지 아니하거나 사람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   - 비인간적 행위 / 그가 겪어야 했던 비인간적인 고난 /

 │     아무리 비인간적인 기능이기는 해도

 ├ 비인간(非人間)

 │  (1) 사람답지 아니한 사람

 │   - 부모를 구타한 금수보다 못한 비인간을 어찌 용서하겠는가 /

 │     비인간을 반성할 겨를이 없었는데, 모처럼 대접을 받자 그동안 사람

 │     노릇 못한 것이…

 │  (2)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

 │

 ├ 비인간적 상황을

 │→ 사람 대접 못 받는 상황을

 │→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상황을

 │→ 끔찍한(괴로운/고달픈/힘겨운) 상황을

 │→ 짐승만도 못하게 된 상황을

 └ …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인간적’이라는 말과 함께 곧잘 듣습니다. 아니, 퍽 자주 듣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움직이거나 살아갈 때에는 ‘인간적’이라 하고,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거나 스스로 사람다움을 내팽개칠 때 ‘비인간적’이라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사람다이 사니까 ‘사람답다’고 하면 되고, 사람답게 못 사니까 ‘사람답게 못 산다’고 하면 넉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비슷한 뜻과 느낌으로 ‘살갑다’와 ‘살갑지 못하다’를 적어 보아도 괜찮으리라 보고요.

 

 ┌ 비인간적 행위 → 말도 안 되는 짓 / 끔찍한 짓

 ├ 비인간적인 고난 → 말할 수 없는 괴로움 / 모진 괴로움

 └ 아무리 비인간적인 → 아무리 사람을 업신여기는

 

 생각을 조금 더 넓히면,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없는 터전은 참으로 ‘끔찍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끔찍하다고 느낄 만한 터전은 ‘모질’거나 ‘고달픕’니다. 힘겹고 고되고 괴롭고 벅찹니다.

 

 그런데 국어사전 보기글을 보니, “비인간을 반성할 겨를이 …” 하고 죽 나아가다가 끝에 “사람 노릇 못한”으로 적어 놓습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서 느끼는데, 사람들이 으레 쓰는 ‘인간적’이란 ‘사람 노릇’을 가리키기도 하고, ‘비인간적’이란 ‘사람 노릇을 못하는’을 가리키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답지 못한”, 또는 “사람답지 않은” 모습은 “사람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 싶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그때그때 잘 살피면서 알맞게 말할 수 있고 글쓸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면, 마음을 기울이면, 눈길을 두면.

 

ㄴ.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 그것이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배신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이자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말해 주는 증거였으리라 ..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내가 만난 아이들》(양철북,2004) 36쪽

 

 ‘친절(親切)한’을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따뜻한’으로 고치면 한결 낫습니다. ‘증거(證據)’를 두 차례 쓰는데, “가장 뚜렷이 보여주면서”와 “말해 주리라”로 고쳐 봅니다. ‘배신(背信)했다는’은 ‘등돌렸다는’이나 ‘저버렸다는’으로 손봅니다.

 

 ┌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

 │→ 내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 내가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 내가 얼마나 짓궂었는지

 │→ 내가 얼마나 나빴는지

 └ …

 

 세상을 착하게 살기가 어려울지, 세상을 나쁘게 살기가 어려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착하게 살기가 훨씬 수월하고, 나쁘게 살기란 몹시 어렵다고 느낍니다. 버스를 타건 전철을 타건, 무섭게 달음질을 치며 밀어젖히는 사람들보고 먼저 타라고 한 다음 맨 나중에 탈 때가 속이 시원하고 가볍습니다. 다리가 아픈 사람들보고 앉으라 하고, 저도 다리가 아프지만 안 앉으면서 꾹 참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좁은 골목에 굳이 들어와서 싱싱 내달리는 차가 있으면, 달리던 자전거를 멈추고 먼저 가라고 손짓합니다.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베풀어야만 착한 일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만이 나쁜 일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 늘 착한 일과 궂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믿음을 저버리는 짓도 저지르고, 믿음을 따스히 껴안는 사랑도 베풉니다.

 

 ┌ 내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 내가 얼마나 말썽쟁이인지

 ├ 내가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 …

 

 말 한 마디로도 사랑을 나눌 수 있기에, 말 한 마디로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말 한 마디로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 한 번씩 주어진 삶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려 하느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늘 쓰는 말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펼쳐 나가려 하느냐가 갈린다고 느낍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애틋한 삶을 사랑한다면 사랑스러운 말을 술술술 쏟아내리라 봅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고마운 삶을 얕은 셈속으로만 바라본다면 끔찍하고 짓궂고 무서운 말만 자꾸자꾸 쏟아내는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8.11.16 11:1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적 #적的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