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탐정, 추리소설의 트릭을 파헤치다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 <명탐정의 규칙>

등록 2010.05.24 16:58수정 2010.05.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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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명탐정의 규칙> 겉표지

<명탐정의 규칙> 겉표지 ⓒ 김준희

고전추리소설에는 트릭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가 독자를 속이고, 범인이 탐정을 혼란스럽게 하는 그런 트릭. 종류도 다양하다. 밀실에서 사람이 살해당하고, 범인은 알리바이를 조작한다.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마지막에 살아서 나타나고, 고립된 장소에서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작중화자가 범인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살인을 자살로 위장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트릭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하긴 일반 독자들이 간파할 정도의 트릭이라면 그건 상당히 수준낮은, 또는 그동안 많이 우려먹은 트릭일 것이다.

현대추리소설에도 트릭이 나오지만 고전추리소설에 비하면 그 비중이 무척 낮아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전추리작가들이 워낙 다양한 트릭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더이상 새롭고 참신한 트릭을 생각해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최근의 추리독자들은 트릭 사용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릭을 분석하는 탐정과 형사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도 이런 트릭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작가의 96년 작품 <명탐정의 규칙>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트릭을 종류별로 나누어서 분석하고 파헤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등장인물이 있어야 한다. 작품에는 한 명의 탐정과 한 명의 형사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탐정의 이름은 덴카이치 다이고로. 나이는 정확하지 않고 항상 낡은 양복에 더부룩한 머리를 한 채 고풍스러운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스스로를 가리켜서 '두뇌 명석, 박학다식, 다재다능, 뛰어난 행동력의 명탐정'이라고 말한다.


덴카이치와 콤비를 이루는 형사는 지방 경찰 본부 수사 1과의 오가와라 반조 경감이다. 오가와라 경감은 덴카이치를 가리켜서 '왕초보 탐정'이라고 말하며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렇더라도 <명탐정의 규칙>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덴카이치다.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이상한 살인사건들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때마다 오가와라 경감은 현장으로 출동하고 그곳에서 어김없이 덴카이치를 만난다. 몸이 여러개로 토막난 살인사건도 있고, 구전되는 동요가사에 맞춰서 연쇄살인이 터지기도 한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범인이 있는가 하면, 이상한 메시지를 남기고 죽은 시체도 있다.


경감과 탐정은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면서 한편으로 이번 사건에서는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는지, 이런 트릭의 사용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토론하며 때로는 트릭을 비웃기도 한다. 사건은 엽기적이지만 경감과 탐정의 대화는 가볍기만 하다.

작품에서 다루는 12가지의 트릭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탐정의 입을 통해서 기존의 트릭을 조롱하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고전추리소설의 트릭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의 몇몇 작품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탐정과 형사는 추리소설 독자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독자가 아무리 꼼꼼하게 메모하면서 읽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독자는 범인을 알아낼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소설속에서 보여주는 단서만으로는 결코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구조를 가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탐정처럼 논리적으로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직관과 경험으로 범인을 간파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때려맞췄는데 결과적으로 들어맞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아예 추리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냥 탐정이 추리하는 과정을 편안하게 지켜볼 뿐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해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어느쪽이건 추리물을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는 있다. 낡은 트릭은 거부해야겠지만, 트릭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추리물도 상상하기 어렵다. 추리소설에 동원되는 트릭의 종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명탐정의 규칙>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속에서 범죄나 인간이 아닌, 오직 트릭에 관한 이야기만을 풀어놓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이혁재 옮김. 재인 펴냄.


덧붙이는 글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이혁재 옮김. 재인 펴냄.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재인, 2010


#명탐정 #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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