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영웅'들을 욕되게 하는가

[取중眞담] 석 선장 총탄 논란과 '미국의 영웅 만들기'

등록 2011.02.13 19:36수정 2011.02.1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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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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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4일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하는 제시카 린치(앞)와 케빈 틸먼. ⓒ zaiusnation.blogspot.com


영웅이 된 린치 일병 "난 람보처럼 싸우지 않았다"

지난 2007년 4월 24일 미국 하원에서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웅담을 고의로 조작하거나 과장했는지 밝히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대표적 영웅담의 주인공이었던 제시카 린치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펫 틸먼의 동생과 동료 군인들이 증인으로 참석했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 보병 3사단에 배속된 507 보급정비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제시카 린치 일병은 동료들이 모두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상황에서 끝까지 싸우다 총상을 입고 포로로 잡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것으로 발표돼 당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2003년 4월 2일(현지시각) 쿠웨이트에 주둔한 미 중부군의 빈센트 브룩스 부사령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군에 생포됐던 미군 포로 7명 중 한 명인 제시카 린치 일병(당시 19세)이 구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린치 일병의 구출 작전은 이날 자정 미 해군 특수부대(SEAL)와 육군 레인저부대, 미 중앙정보국(CIA)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이뤄졌죠.

린치 일병의 구출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환호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대단한 일"이라고 좋아했고, CNN, ABC, CBS, NBC 등 미국의 방송사들은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린 특수부대원들이 이라크 나시리야의 한 병원을 급습, 린치 일병을 무사히 구해내는 전 과정을 담은 비디오 화면을 방영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마치 한편의 전쟁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시카 린치가 청문회에서 밝힌 진실은 알려진 것과 달랐습니다. 그녀가 "나는 람보처럼 싸우지 않았다. 내 M-16 소총은 고장이 나서 교전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독일 병원에서 내 부상은 총격 때문이 아니라 타고 있던 험비가 뒤집혀 발생한 것으로 진단했다"며 "실제로 하지 않은 일로 칭찬을 받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말했던 것이죠.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구출작전의 전말도 밝혀졌습니다. 미군의 구출작전이 벌어질 당시 그녀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는 이라크군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었지만, 중무장한 미군 특공대가 '고 고 고(Go Go Go)' 하고 외치며 총탄을 쏘면서 들어왔다는 것이죠. 이 광경을 목격했던 이 병원의 의사는 "미군들은 마치 실버스터 스탤론이나 재키 찬이 나오는 액션 영화처럼 '쇼'를 연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미군이 병원을 급습하기 이틀 전 이라크 의료진이 린치 일병을 앰뷸런스에 태워 송환시켰지만 앰뷸런스가 미군 초소에 앞에 이르자 미군은 총을 쏘아 대며 앰뷸런스를 돌려보냈다는 것이죠. 애당초 구출작전이란 필요치 않았다는 얘깁니다.

"형이 오발로 죽은 사실 5주 후에나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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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틸먼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간판 수비수로 활약하던 시절의 펫 틸먼(좌)와 입대 후 군복을 입은 모습. ⓒ www.indiegeniusprod.com


2004년 4월 2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펫 틸먼 상병의 이야기는 더 어두운 그늘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360만 달러의 프로구단 연봉 계약 제의를 뿌리치고 2001년 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자원입대한 미국 프로풋볼(NFL) 스타 틸먼은 알카에다 잔당과의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죠.

당초 미군 당국은 그가 위험에 빠진 다른 특수부대원을 구출하기 위해 레인저 팀을 이끌다 적의 사격을 받았다고 발표했죠. 그가 입대할 때부터 "돈이 아닌 조국을 택한 영웅"으로 한껏 추켜세웠던 언론은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를 주도했고, 백악관은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TV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그의 장례식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공화당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장례식에서 동료 군인은 "틸먼은 집중 포화 속에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는 조사를 읽었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전쟁영웅에겐 은성 무공훈장이 추서되었죠. 그의 소속팀이었던 애리조나 카디널스는 그의 등번호 '40번'을 영원히 결번으로 남겨두겠다고 발표했고, 애리조나 후버댐 부근에 새로 건설된 다리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영웅에 대한 애도 열기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번지기도 했죠. 미국의 시사만화가 테드 랠에게 가해졌던 살해협박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자신의 만화에서 "틸먼은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이 9.11 테러와 관계된 것으로 착각했고 정치 지도자들의 꼭두각시로서 석유 착취를 위해 테러리스트들보다 선량한 민간인을 더 많이 사살했다"고 묘사했던 랠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한 수백 통의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랠은 "내 만화는 틸먼을 국가적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비정상적인 추세에 대한 반응이었다"며 "미디어가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테러와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폭과 다를 바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는 반역자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원 청문회에서 펫 틸먼의 친 동생 케빈은 "형이 아군의 오발로 사망했음에도 가족들은 5주나 지나서 진실을 알게 됐다"면서 미 국방부를 '고의적이고 계산된 거짓말을 한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은성무공훈장이 추서된 것 역시 조작극의 일환이었다고 비판한 케빈은 "전쟁 지지 여론을 약화시킬 끔찍한 비극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옹호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탈바꿈됐다"고 지적했죠.

틸먼이 숨진 현장에 있었던 브라이언 오닐 상병은 "대대장 제프 베일리 중령이 진상을 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특히 "같은 부대에 근무하고 있던 동생 케빈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 이 일을 발설할 경우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까지 받았다"고 폭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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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전에 미 육군 레인저 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펫 틸먼(좌)와 케빈 틸먼(우) 형제. ⓒ zaiusnation.blogspot.com


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는 미 국방부와 언론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전쟁영웅 만들기'의 이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하기해서 영웅이 절실히 필요했던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언론이 놀아났던 것이죠.

이미 기원전 5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전쟁에서의 최초의 희생자는 진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기자에게 그의 말은 진실이 사라질 때 폭력이 지배하는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들립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던 석 선장, 그러나...

지난달 21일 '아덴만의 여명'으로 명명된 구출작전 성공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곧바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 담화에서 대통령은 "방금 전 우리 군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나라 선원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해냈다"며 자신이 "국방부 장관에게 인질구출 작전을 명령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해적들과의 협상은 없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한편 '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었습니다.

특별담화가 끝난 후 국방부에서 열린 공식 브리핑에서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은 "해적 13명 전원을 제압하고 피랍된 선원 21명의 안전을 확보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선원 1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며 "사전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피해를 최소화한 가운데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작전을 수행하여 완전작전을 달성함으로써 대한민국 국군의 우수한 작전수행능력을 입증하는 성과"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던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은 군 당국의 설명과는 달리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석 선장이 아군의 총탄에 맞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군은 "석 선장은 작전팀이 진입과 동시에 교전상황이 벌어지면서 인질범으로부터 총상을 입은 것으로 식별하고 있다"고 답변했죠. 이후에도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석 선장은 해적의 총이 아닌 우리 UDT 대원의 총에 맞은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자, 군은 석 선장이 있던 곳에서는 총격전도 없었다며 이것을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9일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총탄 3발을 감식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그 중 한 발이 우리 해군이 사용하는 9mm 권총탄이라는 정밀감정 결과를 해경에 통보했습니다. 국과수는 석 선장의 몸에서 발견된 아군의 탄환이 변형 형태로 볼 때 벽면이나 바닥과 같은 곳에 1차 충격한 뒤 발생한 유탄이 석 선장의 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총탄은 석 선장의 오른쪽 옆구리에 박혀있던 것으로 석 선장은 이 부위를 15cm가량 절개하고 고름을 빼낸 뒤 염증 괴사조직까지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우리 군이 의도적으로 석 선장에게 발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치명적인 부위에 부상을 입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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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을 입고 지난달 29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석해균 선장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성공한 작전, 논란 자초한 군

이처럼 군사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정부와 군 당국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석 선장이 아군의 유탄에 의해서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을 솔직히 밝혔더라면 오해를 살 일도, 인터넷상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벌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석 선장이 아군 총탄에 맞았다는)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의 발언이나 "석 선장이 인질로 잡혀 있던 장소에선 교전이 없었다"는 국방부의 설명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또 해적에게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전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했고, 이를 어긴 3개 언론사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했던 군이 작전 성공 이후 보여준 행태는 납득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똑같은 선박 피랍 사건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데도 해적들을 속인 기만작전의 내용, 사용 주파수, 해군 특수전요원(UDT/SEAL)들이 소지한 무기와 그 재원을 고스란히 공개하고 요원들의 선박 진입 작전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도 공개한 것은 전형적인 이중잣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기자는 어떤 군사작전이라도 불가피한 희생을 100% 배제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대다수 국민들은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이 우리 해군의 것이라고 해서 어려운 구출작전을 성공시킨 군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과대포장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국방의 요체는 국민의 신뢰라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한다면 작전 성공에 대한 과도한 홍보가 자칫 진실의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목숨을 걸고 구출작전에 참가했던 해군 특수부대원들과 기지를 발휘해 작전 성공에 일조한 석 선장은 그 자체로도 영웅이라는 평가를 들을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완벽한 성공을 강조하는 일이 오히려 이들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이 아닐까요?

끝으로 제시카 린치가 하원 청문회에서 한 말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당신들이 왜 나를 영웅으로 만들려 했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진실이 하찮아 보일지라도 당신들이 과장하려는 영웅담보다는 훨씬 더 영웅적이란 점이다. 꾸며낸 거짓말이 없이도 국민들은 스스로 누가 영웅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덴만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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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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