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아름다운 10대의 몸... 노인들이 차지한다

[리뷰] 리사 프라이스 <스타터스>

등록 2012.06.21 12:05수정 2012.06.21 12:05
0
원고료로 응원
a <스타터스> 겉표지

<스타터스> 겉표지 ⓒ 황금가지

'다시 젊어지고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자신이 젊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의 경험과 지식, 지혜 등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다시 젊어진다면 어떨까.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10대 후반의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쩌면 몸은 10대인데 마음은 70대인 '애늙은이'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다시 젊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은 많을 것이다. 클럽에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실 수도 있고 번지점프를 하러갈 수도 있다. 젊고 강한 10대의 몸과, 70년이 넘는 경험과 지혜를 가진 정신이 결합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전쟁 이후의 디스토피아

리사 프라이스의 2012년 작품 <스타터스>에서는 부유한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의 육체를 임대한다. 작품의 배경은 '태평양 연안국 전쟁'이 터지고 난 뒤의 미국이다. 치명적인 생물학 포자가 담긴 미사일이 미국을 휩쓸었고, 미처 백신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 결과로 미국에는 20대 미만의 미성년자와 70세 이상의 고령자들만 남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70세 이상은 고령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사람들의 수명을 200살로 연장시켰고, 머지않아 250세까지 유지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을 '엔더'라고 부르고 미성년자들을 '스타터'라고 부른다. 세상이 엔더와 스타터로 나뉜 것이다. 여기서 주도권은 엔더들이 가지고 있다. 미성년자들의 취업은 불법이 되었고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은 수용소 같은 곳으로 끌려가게 된다.


주인공인 10대 소녀 캘리는 남동생과 함께 거리를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찌꺼기를 구하고 경찰의 눈을 피해서 무허가 건물의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하는 신세다. 캘리는 소문으로만 듣던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이라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은 캘리 같은 젊은이의 육체를 돈 많고 나이도 많은 노인들에게 일정기간 임대해 주는 곳이다. 캘리가 자신의 몸을 한두달 노인에게 임대해주면 그 대가로 캘리는 엄청난 현금을 챙길 수 있다. 더이상 거리를 전전하며 더러운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캘리도 자신의 몸을 정체모를 노인에게 빌려주기로 결정한다.

육체가 거래되는 세상

대부분의 SF에서 묘사하는 미래가 그렇듯이, <스타터스>의 배경도 독특하고 암울하다. 전쟁이 터지고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렸다. 전쟁 이후에 사람들이 뭔가를 깨달아서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타터스>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고령자와 미성년자로 나뉘었는데 고령자들은 미성년자를 이용하기 위해서 서로를 부추긴다. 경제적인 능력만 된다면, 육체가 가장 아름다운 연령인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육체를 골라가면서.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누군가가 내 몸에 들어와서 무슨 행동을 한다면, 그런데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하게 된다. 술마시고 필름이 끊겨서 자신의 행동을 기억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혹시 그가 내 몸을 빌려서 살인이라도 저지르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한 인물은 타인의 몸을 빌리는 행위를 '살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젊은 시절을 타인에게서 빼앗는 것이니까. 200살까지 산다는 것도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그 나이가 되서 미성년자의 몸을 빌리는 것이야 말로 정말 '노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스타터스> 리사 프라이스 지음 / 박효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스타터스> 리사 프라이스 지음 / 박효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

스타터스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황금가지, 2012


#스타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