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만 신경썼는데... "희망식당 문 닫습니다"

희망식당 1,2호점 이제 역사 속으로... 25, 26일 각각 마지막 영업

등록 2012.11.23 21:05수정 2012.11.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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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희망식당 '하루'의 내부.

희망식당 '하루'의 내부. ⓒ 박선희


"25일 1호점, 26일 2호점이 마지막 영업을 합니다. 1호점은 오후 여섯시, 2호점은 오후 여덟시까지 정상 영업을 하고, 2호점에서 오후 여덟시 이후 '희망식당 뒤풀이 파티'를 합니다." - 희망식당 트위터 '하루(@hopeharu)'

11월 25일, 희망식당 1호점(상도점)이 문을 닫는다.   

지난 18일, 마지막 장사를 앞둔 희망식당 1호점에서 오후에(필명)씨를 만났다. 그는 희망식당 기획자다. 저녁 장사 후 가게 정리를 돕기로 약속한 터였다. 희망식당 상도점은 7호선 상도역 1번 출구에서 오십 걸음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나온다. 찾기 쉽지만 지나치기도 쉬운, 평범한 실내포장마차가 바로 희망식당 '하루'다.

희망식당이 이제 문을 닫습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가로등 불빛으로 희망식당 앞은 환했다. 식당 안은 한가했다. 곧이어 손님이 들어왔지만, 자리가 꽉 차지는 않았다. 인터뷰 전에 끼니부터 때웠다. 희망식당에 와서 밥을 거를 순 없는 노릇이다.

8일 메뉴는 만둣국이었다. 한 그릇 당 만두가 대여섯개씩 들어 있어 푸짐했다. 밑반찬으로 나온 갓김치는 환상이었다. 말로는 "조금만 주셔도 된다" 면서도 서너 번을 더 먹었다. 함께 온 친구는 말을 아끼며 반찬을 집어 삼켰다.

a  맛있게 차려진 한 상. 방울토마토와 귤은 손님이 가져온 것이다.

맛있게 차려진 한 상. 방울토마토와 귤은 손님이 가져온 것이다. ⓒ 박선희


희망식당은 그동안 일반 식당을 빌려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열었다. 메뉴는 딱 하나였고, 매주 바뀌었다. 가격은 5000원이지만 더 내도 상관은 없다. 밥, 반찬 모두 양이 찰 때까지 '무한리필'이었다. 술은 팔지 않지만 1인당 1병씩 사와서 마셔도 됐다. 수익금은 운영비를 제외하고 해고·비정규직 농성장에 기부했다.


현재 서울 2곳(상도, 상수), 청주, 대전, 대구 각 한 곳씩 총 5개의 희망식당이 있다. 1~3호점인 상도, 상수, 청주점은 통합 운영돼 수익금을 함께 관리했고, 4·5호점은 따로 운영됐다. 서울의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내년에도 영업을 한다.

희망식당은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기 위해 차려졌다. 노조 임원을 지낸 오후에씨가 식당을 기획했고, '쌍용차 희망텐트'의 셰프였던 신동기씨가 합류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였던 신동기씨는 지난 8월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오후에씨는 쌍차 노동자도, 해고자도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근속연수가 10~20년이 기본이거든요. 셰프였던 신동기씨가 서른이 넘는데 쌍용차에서 막내였데요. 나이를 먹으면 학교보다 직장에 따라 관계가 변하거든요. 해고는 그걸 끊어버리는 겁니다. 10~20년씩 봐왔던 사람들과 딱 끊기는 거죠. 비정규직은 (사내에서) 관계를 아예 맺지 못하게 하는 거고요."

오후에씨의 말이다. 그는 쌍용차 농성장에 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해보기로 했다. '밥'이 생각났다.

"어릴시절, 아버지가 술 드시고 집에 오는 날엔 아랫목에 누워 있는 우리 삼형제한테 간식거리 주시며 그렇게 얘기하곤 했어요. '그래, 내가 니들 밥이지.'"

아버지의 말씀은 희망식당의 컨셉이 됐다. 식당에서 모여 사람들과 함께 '밥의 희망'을 말하게 된 것이다.

따뜻한 밥 한끼로 나누던 연대

희망식당에는 '숙제'가 있다. SNS나 블로그에 '해고는 나쁘다'라고 쓰고, 희망식당 방문기나 해고와 비정규직에 대한 생각을 적는 것이다. 식당 안에도 방명록도 있다. 일본인 관광객도 쓰고, 혼자 온 손님도 쓴다. 구구절절 쓰면서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해고는 나쁘다"만 꾹꾹 눌러쓰는 사람도 있다. 상도점 방명록은 벌써 7권째다.

희망식당 운영도 보통 식당과는 다르다. 요리나 운영의 총관리는 오후에씨가 맡지만 설거지나, 서빙은 호스트나 자원봉사자, 심지어 손님이 한다.

"오늘 만두 320개를 빚었어요. 점심밥 먹은 손님들이 같이 빚어놓고 간 거예요."

밥 먹으러 왔다가 한참 설거지 하고 가는 사람도 많고, 장사 끝날 즈음에 온 손님이 반찬을 얻어가는 일도 있다. 이날 마지막 손님이었던 김가희씨와 김홍원씨도 남은 밥과 멸치 반찬을 조금 챙겨 갔다. 김가희씨가 말했다.

"5000원보다 더 많이 먹고, 받아가는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와 볼 걸. 다음에도 꼭 와야겠어요."

손님들은 대개 신문, SNS에서 정보를 듣고 온다. 안암동에서 온 김가희씨도 SNS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신문을 보고 순천에서 올라온 노부부도 있었다. 한국인 친구와 함께 오는 외국인도 있고, 일부러 희망식당에서 약속을 잡아 만나는 사람도 있다. 요새는 공지영이 쓴 <의자놀이>를 읽고 오거나, 과제를 하러 오는 대학생도 많다.

호스트나 자원봉사자는 손님으로 왔다가 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휴가나 월차를 내 일을 돕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은 취업준비생이 호스트를 하다가 최종면접을 보러 잠깐 다녀온 일도 있었다.

a  요리와 설거지가 동시에 이뤄지는 상도점 주방.

요리와 설거지가 동시에 이뤄지는 상도점 주방. ⓒ 박선희


사연이 많은 희망식당 '하루'는 37회째(11월 18일)까지 장사를 마쳤다. 올해 3월 11일 문을 연 이후 추석연휴가 있던 주를 빼고 매주 하루씩 장사했다. 매주 번 돈을 모아 현재까지 농성장 30곳을 지원했다. 초기 쌍용차 농성장에 300만 원을 지원했고, 재능교육, 코오롱, 콜트콜텍 등에도 지원을 했다. 6월부터 매달 후원금을 전달했으니 꽤 흑자인 셈이다.

"사실 돈 생각하면 계속 해도 돼요. 손님도 많이 오고, 돈을 더 내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근데 이제 왔던 사람이 또 오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죠. '해고가 나쁘다'는 것도 잘 알고요. 오랫동안 하다보니 끼리끼리 소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애초 연말까지만 장사 하기로 했던 이유도 크다. 오후에씨는 주중에 대전에서 일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장을 보고 밑반찬을 준비해서, 일요일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종일 장사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상수점, 청주점을 도와주러 갈 땐 월차를 쓰고 갔다. 희망식당 연 뒤, 주말을 가족과 보낸 적이 없다. 오히려 가족들 불러 일을 시킨 적도 있단다.

"일생에서 가장 잘한 게 아내를 쫓아다닌 일이에요."

남편을 이해해주는 아내에게 보내는 고마움과 찬사다. 희망식당은 문을 닫지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는 그의 노력은 아직 진행형이다.

"방명록이 7권이 있어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중이에요. '희망식당 시즌2'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도 해요."

희망식당 '하루'... 정말 하루만 남았다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눠 마신 후 함께 가게 정리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삶고, 쓰레기를 버리고, 야외 테이블을 들여왔다. 가스를 잠그고, 온풍기와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리면 '하루'의 장사가 끝난다. 희망식당 상도점은 이제 25일 단 한 번만 장사를 한다.

a  영업을 마친 희망식당 상도점 '하루'.

영업을 마친 희망식당 상도점 '하루'. ⓒ 박선희


25일 38번째 상도점의 메뉴는 보쌈이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마지막인 만큼 저녁 6시까지만 운영한다. 26일 상수점은 저녁 8시까지 영업하고 이후부터 손님들과 함께 뒤풀이를 할 예정이다.

책 <의자놀이>에서 공지영은 쌍용차 노동자 김을래, 김봉민, 서맹섭의 굴뚝 농성이 끝나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중에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씨는 바로 병원으로 호송되었지만, 그들은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바로 구속된다. 그들에게는 김진숙씨를 주시하고 보호하려고 둘러싼 시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희망식당 1,2호점이 문을 닫아도 '숙제'는 여전하다. 노동자들은 아직도 송전탑 위에 있다. 평택 쌍용차 공장 앞 송전탑에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울산 현대차 공장 앞 송전탑에 최병승, 천의봉.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아직 우리 앞에 있다.
덧붙이는 글 박선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3기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희망식당 #상도점 #1호점 #정리해고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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