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1

‘평화의 마을’에서 내 품으로 날아온 작은 천사

등록 2000.07.31 16:35수정 2000.08.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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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책상 앞에는 지난 3일 동안 새카맣게 얼굴 그을린 우리들 모습을 찍은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하얀 잇속 다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제 얼굴과는 달리 내 옆에 있는 내 어린 연인의 얼굴은 어색하게 굳어 있습니다.


그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마음, 안타깝고도 기쁘고 또 한편으론 즐거우면서도 불안한 그 마음을 저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길게 사랑할 것을 약속한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금산의 폐교된 분교 금강초등학교에서 보낸 사흘이 우리에겐 새로운 관계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많이 모자란 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던 그의 모습, 그 부족함까지 함께 하고자 마음먹기까지 그가, 그리고 내가 겪었던 아픔까지 다 짊어지고 앞으로는 진정으로 ‘따로 또 같이’일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내 어린 연인, 동수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긴 여름 무성한 잎을 드리우던 나무가 마지막 힘까지 다 내어 주고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낙엽을 떨구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대전에 있는 애육원 ‘평화의 마을’(이하 ‘평마’)에 대학생 때부터 자원활동을 하러 다니던 한 분을 알게 되어 우리 사무실 식구 전부가 그 곳 아이들 한두 명씩과 결연을 맺고 나서도 두 달인가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습니다.

가족만들기 캠프란, 가족 없이 혼자서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 주는 사흘간의 만남입니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초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 캠프에 일반 가정의 사람들이 함께 참석해 가족으로 사흘을 사는데, 그냥 쉽게는 후원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후원인이라고 해서, 돈이 무척 많아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아이가 시험 성적을 잘 받았을 때 자랑할 곳이 되어 달라는 것, 뭔가 섭섭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이 사람만은 내 편이지!’하고 전화할 수 있는 그런 가족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회 때 달리기 몇 등 했다고, 그래서 공책을 받았다고 재잘댈 수 있는 상대가 되어 달라는 이 캠프는 원래는 엄마, 아빠가 다 있는 부부 가족만을 참가 대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미혼의 남녀 어른도 참가하게 허락을 했지요. 대부분의 원인은 미혼으로 살던 우리 「작아」편집실 식구들 때문이었습니다.


다들 아이들 처음 만날 생각에 들떠 있는데, 저는 혼자 고민이 많았더랬습니다. 결국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나 하나의 인생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인 제가 또 다른 존재를 만나, 그 존재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섣부른 만남 뒤에 혹 그 아이에게 안겨줄지도 모를 실망을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결국은 참가를 포기한 것도 동수를 만나기 위한 작은 준비요, 배려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동수 역시 작년의 가족만들기 캠프 때 자기 친척네 집에 가 있느라 다른 아이들 전부 가족만들기 캠프에서 가족을 만났는데 초등학생 중 유일하게 새로운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곤, 평마 선생님 덕분에 동수와 나는 운명인 듯 그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려웠던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 열어가는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많이 어려웠지요. 동수가 다니는 가양초등학교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 놀다가 우르르 몰려서 떡볶이를 먹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가게 안에 들어가 스스럼없이 “이거 먹어도 돼요?”“저거 먹고 싶어요”얘기를 하고 있는데 동수는 저 혼자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한테 다가올수록 더 움츠러들고 도망가는 아이가 우리 동수라고 했습니다. 현명하지 못한 저는 그저 그 마음이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혼자 앉아 있는 동수에게 가서 들어가자고 떼를 썼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 됐다고, 좋은 친구가 되자고 하면 그냥 이쁘게 와서 안길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힘든 시작일 줄은 몰랐던 저는 그냥 황망히 동수 옆에 앉아서 “동수야, 떡볶이 싫어해? 딴 거 먹으러 갈까?”하는 소리만 소득없이 늘어놓고 있었지요.

급기야, 동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관심 보여 주는 누군가의 특별한 배려에 익숙치 못하기 때문이었고, 단체 생활을 하는 동안 자기에게만 쏟아지는 시선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었고,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상처받은 마음을 어쩔 줄 몰라서이기 때문인 듯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는 녀석을 보면서, 나 역시 그냥 퍼질러 앉아 울고만 싶었습니다.

그래, 미안하다, 왜 좀 더 일찍 너를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 다른 친구들 다 가족이 생겼는데 나는 내 욕심 차리느라 널 돌아보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동수야…. 속상했다고 온몸으로 울면서 말하는 동수의 마음을 느끼면서 아, 이제 이 아이랑 아무 상관없이 살진 못하겠구나, 모른 척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릴 순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동수의 아픈 목소릴 못 알아들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 날 이후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잊혀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로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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