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3

-‘평화의 마을’에서 내 품으로 날아온 작은 천사

등록 2000.07.31 16:41수정 2000.07.31 17: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모든 것이 환하게 피어나던 3월의 어느 날, 대전에 취재갈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동수를 보고 가려고 잠시 ‘평화의 마을’에 들렀을 때입니다. 학기 초니까 공책이며 학용품이 필요할 것 같아서 문구점에 들러 이것저것 골라 들고 가는 길이었지요. 아이들에게 학용품 같은 건 이미 충분히 지원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뭔가 마구 주고 싶은데 뭘 주어야 할지 잘 모르는 초보 가족이라 그냥 만만한 문구류를 선택했던 겁니다. 동수는 이제 막 4학년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모든 생명에게서 생동의 에너지, 새로운 성장의 에너지가 가득 넘쳐나던 때였지요. 괜시리 들뜨고 설레이던 날입니다. 그 날은, 동수가 내 눈을 처음으로 똑바로 보아 주었던 날이고, 내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동수네 방 앞에서 우리는 아주 짧게 만났습니다. 조급하게 굴지 않기로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찾아간 길입니다.


“동수, 새로 만난 선생님은 어때? 남자 선생님이야?”
“아니요. 여자 선생님이에요.”
별 기대도 없이 물었는데 늘 묵묵부답이고, 고개를 외로 꼬기만 하던 아이가 내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겪어 보지 않은 이는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리곤 또 물어봤죠.
“선생님 어때? 동수 맘에 드니? 이뻐?”

동수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며 나를 보더니 수줍게 웃었습니다. 오, 이런! 세상에 그렇게 이쁜 웃음을 저는 난생 처음 보았답니다. 그리곤, 저는 완전히 경계심을 허물고 말았지요. 잘 해 볼 수 있겠구나, 이 아이는 이제 나와 관계맺기를 거부하지 않는구나…. 어린 왕자를 만난 여우의 마음이 이랬을까, 아니면 로미오를 만난 줄리엣의 마음이 이랬을까, 혼자 마음 속으로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더랍니다.

자기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 별 일 아니었을 것 같은 그 일이 자기에게는 너무나 감동적이고도 특별한 날이었다고 자랑하며 사진 찍은 걸 보여 주는 한 아버지가 등장하는 광고 기억하시나요? 그 때의 제 마음이 꼭 그랬습니다. 남들에겐 별일 아니었을 것 같은 그 일이 제겐 얼마나 가슴 벅찬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한 번씩 만남을 거듭할 때마다 동수는 놀랍게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묻지 않아도 자기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에 이르렀지요. 대전의 장태산 휴양림에서 있었던 수련회를 마치고 서울 오는 길에 또 잠시 ‘평화의 마을’에 들렀습니다. 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동수가 저보다 먼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녕하세요!”

유행하는 삼행시도 먼저 이야기해 주는가 하면 점심 시간에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을 때도 제가 먼저 먹고서는 “저… 먼저 나가 있을께요”하고 계단을 뛰어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 먹은 것과 다르게 나오는 자기 이야기에 저도 당황하기 일쑤였을 우리 동수가 변했습니다.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요. 어찌나 기쁘던지요.


그 날, 다른 아이들과 같이 팥빙수를 먹으러 갔을 때 동수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이거 다 먹으면 갈 거예요?”였습니다. 그러고 또 한참을 먹다가, 그릇이 다 비어갈 때쯤 다시 묻습니다. “서울까지는 몇 시간이에요? 언제 갈 거예요?”였습니다.

이제, 이 아이와 내가 또 배워야 할 것은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일입니다. 완전한 가족이 될 수 없는 저는, 좋은 친구가 되어 그저 헤어지고 또 이별하고, 다시 만나는 일밖에 해 주질 못합니다. 그저 그게 전부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일 주일 뒤에 있을 가족만들기 캠프 이야기를 꺼냅니다. 작년엔 두려워서 피해갔던 그 사흘 동안의 인연만들기입니다.


“우리 가족만들기 캠프에서 또 볼 거니까 괜찮아, 지금은 빨리 가야 하지만….”
“가족캠프 때 올 거예요?”
“그럼. 이제 다섯 밤만 더 지나면 돼.”
“우리끼리만 가족이에요?”

가족만들기 캠프에 참가하는 가족 수가 아이들 하나하나와 연결될만큼 많지 않아서 아이들 두어 명이 함께 한 가족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지요.
“글쎄, 그건 다른 가족들이 신청을 얼마나 하느냐에 달렸겠지?”
“우리끼리가 좋은데 그죠?”

머리 속으로 환한 햇살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동수가 그렇게 얘기해 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안 그럴려고 해도 괜시리 비죽비죽 웃음이 나오곤 했지요. 동수의 그 마음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을 안겨 주는 일이라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날, 동수에게 아버지가 계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동생과 함께 산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새어머니와 재혼한 아버지가 동수까지 키우진 못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동생과는 함께이면서, 저는 평마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을 우리 동수가 얼마나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생각하니, 바늘 하나 가슴에 품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말캉말캉해진 우리 동수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만, 어른들의 세상이 저주스러워지고 있었습니다. 동수를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하려고 덤벙대진 않기로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줄 수 있는 만큼만, 아니, 그보다 나눌 수 있는 만큼만 서로 나누며 그렇게 함께 걸어가려 작정해 봅니다.

그 날, 동수는 다시 서울로 가야 하는 나를 두고 평마의 자원봉사자들과 같은 방 식구의 생일 잔치를 하러 가는 길이 못내 미안한 눈빛을 보여 주었습니다. 안 간다고 버팅기다가 결국은 제가 녀석 어깨를 잡고 아이들 편에 보내고서야 동수는 방 아이들과 그 자원봉사자 누나의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면서 자꾸만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평마 현관 앞에 서서 저는 또 가라고, 괜찮다고, 우린 또 금방 다시 만난다고 자꾸만 손을 흔들고 있었지요. 한참을 걸어가던 녀석이 되돌아 뛰어와 내 앞에 섰습니다. 그리곤,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뒤돌아 뛰어갑니다. 세상이 잠시, 흐릿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