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 월북작가, 식민지 누드사진, 문세영 사전

<용산-뿌리서점>에서

등록 2000.10.24 10:38수정 2000.10.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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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 온 손님 한 분이 '아셈을 한다며 차량 이부제를 한 건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며 "이 좁은 나라에서 석유를 세계 6위로 수입해서 쓸 게 뭐가 있어? 국민소득 육천불 칠천불할 때 벌써 자동차가 그렇게 많았으니 아유..." 하면서 집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감을 때 샤워기로 물 쫙 틀어놔서 그냥 버리지 말고 대야 같은 데 받아서 쓰라고 하면 아이들은 "냅둬유" 하고 애어머니는 옆에서 "아이고, 애국자 났네 애국자 났어" 하면서 되려 자기를 부끄럽게 한답니다.

아저씨는 우리가 `애국자 노릇하자'고 한 말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렇게 물을 마구 쓰면 나라가 통틀어 물이 모자라게 될 생각을 해서 조금씩 아껴쓸 줄도 알아야지 하고 얘기했지만 말이 안 통한 거죠.


아저씨는 "우리 집에 방이 넷인데 텔레비전이 세 대가 돌아가. 애들방 컴퓨터 한 대도 따로 돌아가고. 그냥 밤이면 밤마다 전기도 팡팡..." 하는 얘기도 덧붙입니다. 허, 그리고 보니 요샌 어린 학생들도 텔레비전을 자기 생활로 보니 아이 방마다 텔레비전이 한 대씩 있는 집도 퍽 늘었죠. 그렇군요.

김영삼 씨가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받은 일을 두고 뒤에서 마구 씹고 욕하고 노벨상 권위가 떨어졌다느니 하고 말한 고대 강연회도 헌책방 <뿌리>에 온 손님들에게 이야깃감이 됩니다.

다른 아저씨는 "국민들이 문제야. 정치가 개판이라고 하지만 개판이면 개판인 사람을 왜 뽑아?" 하면서 무능한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는 현실이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중성도 꼬집네요.

그렇기도 하네요. 김영삼 씨가 요즘 `웃을 일이 없는 세상살이'를 즐겁게 하려는 듯 별의별 `쑈'를 합디다. 그이에게 권력이 있었다면 엄청난 `반민주'였겠지만 종이호랑이가 된 김 영삼 씨에겐 지금 하는 짓은 그냥 `재미난 놀음'이자 `웃음거리'가 되고 있죠.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시며 "잘못된 정치인이 계속 뽑히게 표를 던지고, 잘못이 있음을 알면서 행동하지 않고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쓰는 국민이 문제다"라는 말은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아저씨들은 먼저 자리를 뜹니다. 언뜻 보니 만화와 얽힌 일을 하는 아저씨는 일본만화 <보노보노> 원판 한 권과 번역판 한 권이 끼어 있군요. 다른 아저씨는 <역사비평> 1998년 ?호-정신대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 표지로 들어가 있는 호, 몇 호인지는 못 봤습니다-와 <현각-만행>을 집었습니다. 두 아저씨 모두 <뿌리>를 자주 들르는 분들이라 이 책들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어도 금세 골라가시는군요.

다음에 오신 아저씨는 월북작가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풉니다. 한국전쟁 앞서 나온 이태준, 정지용 사찰카드가 나왔는데 참 별의별 자료들이 다 나온다는 얘기와 일제 식민지 때 나온 누드사진 이야기를 하시네요.


식민지 때 나온 누드사진은 예술사진이라 할 만한 녀석으로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유리판으로 찍은 필름이라 합니다. 어느 출판사에서 이 필름을 사겠다 하니 이 필름을 가진 분은 일억은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빌리는 값을 이천만 원이라 합디다. 그러나 그 필름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고 그 필름으로 뜬 사진을 얻으려는 출판사-잡지를 펴내는 곳임-에서도 충분히 큰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자료기에 큰 돈을 써서라도 그 사진을 잡으려 하겠더군요.

월북 문인 이야기에 덧붙여 공산주의자였던 이상 씨 아우가 한국전쟁 때 북으로 넘어가면서 형이 쓴 원고를 모두 들고 넘어가서 지금 남쪽에는 남아있는 작품이 얼마 없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렇다면 북쪽에선 이상 전집이나 다른 작품이 책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상 씨는 혼인했던 이가 다른 사람과 재혼-김환기 씨와-했고 아우도 북으로 넘어갔기에 그이가 죽어서 묻힌 무덤-미아리에 있었다 함-은 전쟁 앞뒤로 무연고 무덤이 되어 그냥 사라져 버려 이상 무덤은 남아있지 않다는군요. 허허. 이상이든 누구든 연고가 없는데 누구 무덤인지 자시고 했겠습니까.

11월 1일이면 헌책방 문연 지 첫 돌이 되는 노고산동(신촌) <숨어있는 책>에서 전시할 헌책방 사진 가운데 몇 장이 나왔기에 그 사진을 들고 <뿌리>에 갔답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신 분들에게 사진도 좀 보여드리며 11월 첫머리에 짬나시면 구경오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며 <뿌리> 아저씨가 "표지가 떨어져서 살까 말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필요할지 몰라 골라놓은 사전이 있다"면서 보여 주신 <수정증보 표준국어사전>을 봅니다.

판권이 떨어져서 이 녀석이 몇 년도 초판이고 몇 년도 재판이나 삼판인지를 알 수 없겠더군요. 그러나 머리말을 보니 4283년에 문세영 씨가 <조선어사전>을 내고나서 고침판을 한 번 냈고 그 뒤에 다시 깁고 고쳐서 <수정증보판>을 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 사전을 펴낸 출판사 사장 `신태희' 씨 머리말이 따로 있네요. 이 머리말을 보니 표지가 떨어진 이 사전은 적어도 4287(1954)년 고치고 더해서 나온 낱말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깁고 고쳤다면 그 말을 덧붙였겠죠. 곧 문세영 씨는 4283(1950)년에 <조선어사전> 수정증보판으로 <표준국어사전>을 내기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표준국어사전>은 문세영 씨가 처음 펴낸 <조선어사전>과 아주 다릅니다. <조선어사전>은 세로쓰기로 되어 있지만 <표준국어사전>은 가로쓰기입니다. 그런데 문세영 씨는 4286(1953)년에 <우리말큰사전>이란 녀석도 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우리말큰사전>은 4290(1957)년에 삼판을 내면서 `新修標準'이란 말을 새로 넣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큰사전>은 또 세로쓰기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말큰사전>은 <조선어사전> 틀을 좇은 낱말책으로 보이며 그대로 세로쓰기로 했고 <표준국어사전>은 젊은 학생들이 보기 좋도록 꾸미는 한편 새말을 많이 넣고 죽은말은 많이 빼놓은 낱말책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냐 합니다.

1967년에 첫판이 나오고 1968년에 삼판이 나온 <박성원-일한사전,휘문출판사> 한 권을 집었습니다. 1970년대 앞에 나온 번역사전들은 꽤 쓸 만한 자료가 됩니다. 요새 나오는 낱말책들이야 워낙 짜깁기에다 엉성한 풀이를 달고 있어서 볼 것도 없지만-낱말수가 많다 해서 좋은 낱말책은 아니니까요- 1970년대 앞서 나온 낱말책들은 잘 살피면 풀이를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달아놓은 낱말책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 영한사전을 보면 `image'란 낱말을 `이미지'라고 풀이해 놓은 모습을 보지요. 세상에 이런 엉터리 풀이가 어딨답니까. 1952년에 나온 <신생영한사전-물론, 이 낱말책도 일본에서 나온 영한사전 틀을 고대로 베껴서 문제가 되지만 뜻풀이는 나름대로 알뜰하게 지어서 붙였습니다->을 보면 요즘 낱말책 만드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배워야 하는지 깨닫게 합니다.

[image] (1)모습,초상,像;우상;影상,物象
(2)꼭같은것,판박이,꼭닮은것,典形,化身
(3)[심리학] 心像,개념,表象 ...

여기서 한자로 쓴 말들은 일본사전을 베꼈다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글로 달아놓은 말들을 보며 `image'를 `이미지'로 옮겨놓은 엉터리 번역은 없음을 알 수 있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 요즘 번역작가로 활동하는 이들도 1940년대 50년대 60년대 외국어 낱말책을 한 권쯤 갖고 있으면서 번역하는데 참고로 삼으면 좋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낱말책들은 용산 <뿌리서점>이나 독립문 <골목책방>에서 손쉽고 싼 값에 사 볼 수 있습니다. <뿌리서점>은 이밖에도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나온 옥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도 있어서 여러 모로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 <뿌리>에 가서 살핀 책 가운데 제게 있거나 다른 분들에게 찾을모가 있을 만한 책목록을 좀 적어 봤습니다. <뿌리>에서 파는 책값은 따로 적지 않고 책이름과 지은이와 펴낸곳(펴낸해)을 적어 보겠습니다.

<조성관(월간조선 기자)-한국 엘리트들은 왜 교도소 담장 위로 걷는가,조선일보사>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1997-2000 사이 38권
<동아대백과사전(30권 전질),1982년 첫판>
<한국인물사 10권,良友社>
<최인훈-화두 1,2,민음사>
<계간 사회비평 2000년 봄호(통권 23호)>

<성민엽 평론집-지성과 실천,문학과지성사(1985)>
<민중자서전 2권-이제 이 조선톱에도 녹이 슬었네(목수 배희한씨 이야기),뿌리깊은나무(1981)>
<유재현 지음-생명을 풀무질하는 농부(원경선 이야기),한길사(1998)>
<법률 스님-통일로 가는 길,정토출판(1999)>
<마르쿠제 평론 모음-위대한 拒否,광민사>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정성진,정진상 옮김-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
<고려사절요 개정판-2,3,4,5권,고전국역총서>
<90년대를 찾아서(90년대 대표작품선,소설),개마고원(1996)>
<일본만화잡지 1998년부터 1999년 사이 것 많음, 중국말판도 많음>
<싱클레어 지음-체 게바라,한울림(1984)>

<칼 마르크스/강 신준 옮김-자본 1-1,2,3 + 2-1,2,3, + 3-1,2 (8권),
이론과실천>
<전국역사교사모임-사료로 보는 우리 역사,돌베개(1992)>
<이광수 전집 11권,又新社>
<德川家康 18권,講談社(일본말판)>
<스위스(SWITZERLAND)(1979):스위스 사진과 설명 담은 꼼꼼한 자료책>
<한국사 23권,국사편찬위원회>
<중국현대문학전집 16권 (3,9,13,15번 빠짐),중앙일보사>

<동아대백과사전>은 초판본이 나중 것보다 좋답니다. 민중자서전 2권은 뿌리깊은나무에서 펴낸 초판본으로 나중에 나온 재판본보다 보기 훨씬 좋지요. 한울림에서 1984년에 낸 <체 게바라>도 볼 만합니다.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체 게바라>를 읽은 분이라면 찾아서 볼 만합니다.

알랙스 캘리니코스가 지은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은 이 책을 옮겨낸 책갈피 출판사 사장을 올초였던가요?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며 구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처음 나온 1994~1995(조금 헷갈립니다)년에 대학교에서 교재로 쓴 책이며 지금도 대학교에서는 교재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국보법을 들이대며 거의 판금까지 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참말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막스 사상을 알고자 하는 분들이 손쉽게 볼 수 있는 길잡이 책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펴낸 <한국사>는 23권인데 <뿌리> 아저씨는 이것이 모두 갖춘 건지 24권에 색인이 한 권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합니다. <자본, 이론과실천>은 8권이 완본이 아닐까 합니다. <통일로 가는 길>은 (사)좋은벗들을 꾸리는 법륜 스님이 남북 화합을 얘기하면서 북녘에서 굶주려 죽는 사람들 현실을 우리가 함께 껴안아야 함을 역설한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 * <뿌리서점>은 한 번 소개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에서 살 수 있는 책 목록을 소개한다는 테두리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올립니다. 다른 헌책방들도 오마이뉴스 독자분들에게 찾을모가 있을 만한 책 목록을 적으면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 

연락할 곳 : 02) 797-4459

덧붙이는 글 * <뿌리서점>은 한 번 소개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에서 살 수 있는 책 목록을 소개한다는 테두리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올립니다. 다른 헌책방들도 오마이뉴스 독자분들에게 찾을모가 있을 만한 책 목록을 적으면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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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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