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늘어나는 미국의 한국인 입양

창간 1주년 현지취재=해외 게릴라 리포트

등록 2001.03.07 10:50수정 2001.03.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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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춤했던 한국인 해외입양이 또 다시 늘어나고 있다.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던 해외입양아의 수가 IMF 경제난의 지속과 함께 최근 몇 년새 다시 역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대의 '고아수출' 시장인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인 새 세대의 수는 최근 3~4년 동안 매해 수백명씩 증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 제 3위. 지난해 미국으로 향한 한국 아동들의 '수출'실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의 통계로 볼 때 한국은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다. 해외입양아 수출실적 14만명. 우리는 과연 우리 아이들의 '양육권 포기'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

한 인간의 운명을 가정과 국가가 보살펴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탈출'을 무조건 막는 것만이 능사인가?라는 물음에서는 우리는 떳떳할 수 없다. 보내는 것도 문제지만 '힘들어도 같이 살자'라고 말하기엔 이들이 평생을 통해 부딪쳐야 할 사회적 멸시와 차별의 벽이 너무나도 높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든 것을 경제사정이나 정치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이제 너무나 궁색하다. 경제적인 여유의 유무를 떠나 아동들을 방출하지 않는 국가들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이들을 방출의 길로 내몰아야만 할 것인가. 장기화로 치닫는 경제난의 와중에서 다시 해외로 내몰리는 새 세대들의 현주소를 미국현지에서 조명해 봤다.

한국과 중국, 미 입양신청 부모들에게는 천국

짐과 린다 헤스켈 부부는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40대 백인 부부. 결혼생활 10년이 지났지만 아기를 가질 수 없던 이들 부부는 처음엔 미국 내에서 백인아동의 입양을 원했다. 그러나 빨라야 2~3년에서 5~6년이라는 입양기관측의 설명을 듣고서는 망연자실해야 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입양을 원하는 다른 3쌍의 미국인 부부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4명의 보모들이 얘기들을 데려와서는 우리들에게 건네줬습니다. 우린 그야말로 순식간에 부모가 되어버린 거지요." 이 부부는 3살난 제닛의 '즉석부모'가 됐다. "정말 굉장했어요.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영미"하고 이름을 부르자 얘들이 차례로 나타나 받아든 거지요." 이 부부는 아직도 '감격적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미국 내에서는 입양을 신청한 이가 '자식'을 얻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저런 조건이 많고 아무에게나 잘 내주질 않는다. 입양을 신청한 부모가 나이가 많을 경우는 물론, 독신부모이거나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입양을 하려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이 소요되는 홈 스터디, 즉 신청가정에 대한 자격심사를 통과해도 빨라야 1~2년은 기다려야 한다. 국내입양은 길게는 6~7년까지 기다리는 지루한 세월과의 줄다리기이다. 구비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가정의 경우 "집에 새로 울타리를 쳐라" "카펫을 새 것으로 바꾸고 집안 구조도 바꿔라"는 등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채우기가 벅차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특히 백인아이, 그것도 건강한 여아를 얻기란 더욱 힘들다. 백인아이의 경우 수요는 많지만 항상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다. 최소한 3~4년은 기다려야 하고 대기가정들이 항상 줄지어 서 있다. 백인 아기를 원하는 경우 대개 부부가 결혼한 지 최소한 1년이 경과해야 하며 부모 둘다 나이가 25세에서 40세 사이여야 하며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조건이다. 흑인이나 장애아동의 경우는 조건이 좀 느슨한 편.

입양신청 부모들과 관련기관들에 있어서 한국과 중국 소련은 그야말로 '황금어장'이다. 시멘사 고메즈는 독신 여성으로 한국으로부터 무려 3명의 여아를 데려온 경우. 미국 내 거의 모든 입양기관들에서 독신녀라는 이유로 그녀는 양부모로서 '자격미달'이지만 한국 아동들에게서는 그런 조건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입양 신청자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여자아이의 수급도 거의 문제가 없다. IMF 이후 계속된 경제난 등으로 여아가 '포기'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그 이유중의 하나.

미국 내 입양기관들과 입양신청 가정들은 이같은 '희귀한' 여아풍년 현상의 이유로 "한국에서는 장남이나 아들은 결혼해도 부모와 같이 살면서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입양을 원하는 대다수 미국인 부모들은 남자아이대신 여아를 선호한다. "여아가 남자아이에 비해 가족의 울타리에 친화적"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겨진 아동들의 수는 공식집계로 약 2천명.

지난 87년 5천8백여명에 육박했던 대미 입양아 수출실적은 90년대 들어 계속 줄어들다가 97년에 1천6백여명에서, 98년 1천8백여명, 99년 2천여명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 증가추세는 그나마 한국정부의 해외입양아 방출제한 쿼터에 묵여(미국 연간 2천명 허용) 이 정도 선에 그친 것이다. 미국정부는 그러나 한국정부에 이 쿼터를 늘여달라고 강력하게 권유하고 있는 중이다. 공급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이와 함께 최근 입양과 동시에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촉진 법안을 지난 주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7만5천명에 달하는 미국 내 입양아들이 즉시 시민권을 얻게 됐으며 이 조치는 미국인들의 해외입양 의욕을 더욱 자극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시민권을 얻는 데 평균 2년이 소요되는 한편, 요구되는 서류절차도 까다롭기만 했었다.

"저기 4만5천달러가 걸어간다."

입양신청 부모들을 자극하는 조치는 재정 분야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일부 은행들에서 입양아 부모들을 위한 대출 프로그램이 재미를 보면서 군소 은행들이 입양융자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는 중이다.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거에 거주하는 브렌다와 케니 뷰처트 부부. 이들은 한국으로부터 그레이스를 입양해 오기 전 임신시술에 2만달러를, 입양 과정에서 1만5천달러를 각각 지출했다. 이 부부는 9천달러를 은행에서 융자하는 한편, 나머지는 청소와 페인트일, 남의 집 정원조성 등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경비를 조달했다. 이 부부는 연간 10만달러를 벌어들인 고소득 가정이지만 두 번째 아이의 입양은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다시피한 상태이다.

이 부부는 두 번째는 남자아이를 한국으로부터 입양하기 위해 "리"라는 이름까지 생각해 두었지만 융자심사에서 그만 탈락하고 말았다. 뷰처트 부부는 그레이스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기 4만5천달러(액 6천만원)가 걸어가고 있다"라며 자족하고 만다는 것.

뉴저지주 느왁에 사는 헨 거스와 마리아 텍세리아 부부도 지난해 10월 한국으로부터 한 유아를 데려오는 데 모두 1만4천달러를 썼다. 이는 보통 국제입양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반 수준이지만 자신들의 자동차값과 맞먹는 거금이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MBNA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4년간 12%의 이자율로 할부지불중에 있다. 입양가정이 지불하는 돈은 입양알선기관에 내는 수수료와 여행경비가 대부분.

미국 내 금융기관들에서는 현재 약 1백만 가구가 입양을 원하고 있으며 미국은 매년 세계 각국으로부터 12만명의 어린이들을 입양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의회의 시민권 자동부녀 조치와 함께 은행들의 본격적인 입양융자 제공으로 앞으로 이같은 미국인들의 입양열기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늘어나는 고아들, 변함없는 국내 입양

반면, 한국 내의 입양곡선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경제난으로 인한 가정파괴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난 98년 한 해 동안에만 국내 공공 보호시설에 새로 등록된 19세 이하 청소년 및 아동의 수가 약 9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한 조사는 집계했다. 이는 그 전년에 비해 무려 40%가 늘어난 수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정부 복지시설에 수용된 고아들의 수는 2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그러나 '공급폭등'과는 달리 국내의 고아입양 실적은 미동조차 않고 있다. 미국 내 입양기관 관계자들은 "한국에서는 해외입양을 '국민적 수치'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혈연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서는 막상 '외부인'을 자기 가정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주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입양아부모협회를 발족시킨 박영숙 씨는 얼마 전 아시아위크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고아수용시설에서 머물고 있는 아이들은 몇 년 못 가서 자신들이 가족적인 배경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밝혔다. 그 결과 "이런 아이들은 결국에는 대부분 밑바닥 인생을 맛보게 된다"는 것. 미국 언론들의 입양 관련 기사를 보면 으레 "아시아 나라들에서 고아들은 보통 길거리에서 담배나 신문, 꽃을 팔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팔게 된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의 입양방출 정책이 국가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이런 구도 아래서 사회적인 대책 없이 무조건 입양아 방출을 억제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어차피 국내에서 새출발의 희망이 없을 바에야 당사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희망의 탈출구인 해외입양을 억제시키는 것만이 최선인가"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굳이 한국 입양아 출신으로 대통령 자문위원 등 성공한 인사들의 예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경우, 그래도 자신들이 입양아라는 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고 사회적 경쟁에서 소외되는 일만큼은 없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는 기회의 장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 물론 일부 입양아에 대한 학대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런 부작작용은 여전히 '소수'에 머물고 있다

'김치 걸' '아리랑 홈 페이지' '동아리'... 인터넷에 들어가면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 입양아와 각종 클럽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이름들은 수도 없이 많다. 프랑스, 독일 등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경우 각 주별 도시별로도 한인 입양아 단체들이 형성되어 자신들의 뿌리를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부모들도 자식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고(피부색으로 숨길 수도 없지만) 입양아 관련 모임 등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스스로에 대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성한 자들의 의무는?

미국의 입양기관 등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정부들은 사회복지와 2세 교육등 분야에 있어 현재 하고 있는 역할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아동기금(UNICEF)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컬 고탐 국장은 "경제적 위기상황이라 해서 사람들이 경제에만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아동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충격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것 같다"며, "요는 사회적인 자원들을 어디에다 투입할 것인지 하는 것과, 사회적 우선사항을 어디에다 둘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불안상황의 가장 큰 희생자들인 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가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데서도 문제가 덮어질 우려는 제기된다. 시위 등 의사표현의 수단을 갖지 못한 이들이 단지 타의에 의해서만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어져야 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에게 발언권이 주어진다면, 자신들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로 했던 시기에 이 사회가 자신들을 '방치'한 사실을 놓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라는 고탐 국장의 지적은 '성한' 사람들의 자각을 촉구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한국정부가 취하고 있는 입양제한 쿼터제는 한국의 대외이미지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는 낳았지만 소외된 계층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국내 수요의 증가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한 단순한 '이미지 방어용'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입양아를 외국에다 '뺏기느냐 지키느냐'의 차원이라기보다는 국내에 남건 해외로 나가건간에 당사자들이 과연 어떻게 최대한 인간다운 조건에서 삶을 누릴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연도별 대미 입양아수

1987  5,834 
1988  5,001 
1989  3,486 
1990  2,573 
1991  1,785 
1992  1,809 
1993  1,749 
1994  1,778 
1995  1,640 
1996  1,640 
1997  1,640 
1998  1,810 
1999  1,995 (잠정집계)    

자료: 미 국무부

덧붙이는 글 연도별 대미 입양아수

1987  5,834 
1988  5,001 
1989  3,486 
1990  2,573 
1991  1,785 
1992  1,809 
1993  1,749 
1994  1,778 
1995  1,640 
1996  1,640 
1997  1,640 
1998  1,810 
1999  1,995 (잠정집계)    

자료: 미 국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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