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열이 기념관 개관식에 가고 싶지 않아요"

김주열 열사 가족과 함께 한 2시간 동안의 동행

등록 2001.04.19 02:25수정 2001.04.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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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김주열 열사 가족 되시는...?".

18일 오전 11시 20분, 서울역 대합실에서 김영자(64세. 여) 씨와 김경자(59세. 여) 씨를 만났다. 19일 전라북도 남원에서 열리는 '김주열 열사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두 분과 대전까지 동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열사의 기념관이 열리는 뜻 깊은 때, 오랫동안 이를 소망했을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개관식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나고 있었다.

"무슨 공문이나 초청장도 오지 않았어요. 물론 이전에 몇 차례 전화는 왔지만, 한결같이 19일 오전 11시까지 오라는 얘기만 되풀이하는 거에요. 어려운 일을 해주셨고, 이렇게 불러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만... 그래도 수유리(4.19국립묘지)도 아니고 정말 먼 곳인데. 가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잖아요. 막내동생은 이따가 새벽 3시에 출발한다는데 밤길이라 걱정되기도 하구요."

김주열 열사의 막내동생 김길열(45세. 남) 씨는 현재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근무 중이다.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11시 40분.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승강장으로 가야 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 김영자 씨의 불편한 걸음걸이가 눈에 띄었다. "언니가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았거든요", 김경자 씨의 귀띔.

"서울에서 어떻게 11시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전날 와서 친척집에 묵으면 되지 않냐는 거예요.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지금 남원에는 저희 친척이 아무도 없어요. 결코 많은 걸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유가족의 마음을 배려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는 것에 화가 난다는 거죠."

자리를 잡자마자 계속되는 얘기. 열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4.19기념 행사에 초청 받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섭섭하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주열이가 떠난 후 얼마 있다 돌아가시고, 89년에 어머니도 세상을 뜨셨어요. 그 다음부터 저희 형제는 국가 유공자 가족에 대한 어떠한 예우도 받을 수 없었죠. 법에 그렇게 돼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연금이야 당연히 그렇지만 그 외 것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지금 마산 상고에 있는 주열이 흉상도 그래요. 아무리 봐도 딴 사람 같거든요. 우리 주열이 모습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번 기념관에 세워지는 흉상이 마산 상고에 있는 것을 본뜬 거라더군요."


- 신문에서 본 것 같습니다.

"신문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우리 주열이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죠. 그러다 한번은 XX일보였을 거예요. 일요일날 교회까지 따라와서 인터뷰를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해줬더니 4.19묘지에 가서 사진도 좀 찍자고 하더라구요. 다 해줬죠. 그런데, 너무 태도가 달라지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왠지 인터뷰 같은 거 하기가 싫어졌어요. 때만 되면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고... 그것까지도 좋아요. 그래도 뜻이 있으니까. 하지만 유가족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면, 거기에 맞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왜 이 분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너무나 두 분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김밥'을 파는 아저씨가 다가와, 잠시 얘기를 멈출 수 있었다. 자리를 비켜주려 일어난 김에 사진을 촬영하니, "나중에 사진 좀 받을 수 있을까?"물어 보신다. '그래야죠. 당연히 그래야죠'. 어느덧 열차는 수원역을 지나고 있었다.

- 혹시 이번에 대우자동차 노조원들이 폭행 당하는 뉴스 보셨나요?

"봤죠. 너무 안쓰러웠어요. 그냥 드러누워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하지만 경찰들도 다 명령을 따라 그렇게 했을 거 아니에요. 언젠가 주열이 얼굴에 있던 최루탄을 뺀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 서로 못할 짓이죠. 가끔 시위하는 사람들 좀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 김주열 열사님이 생각나셨겠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더욱 주열이가 보고 싶어요. 그렇게 떠나가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곁에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우리 주열이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솔직히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다들 열사고, 다들 아까운 죽음이지만.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주열이가 그렇게 죽어서 박종철 씨나 이한열 씨가 나올 수 있었던 거 아닌가... 가끔 속상해요."

지난 3월, 14년만에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결정되어 공식적으로 명예회복이 된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그리고 작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때 동행했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기뻐할 수만은 없었을 마음이 어느 정도 짐작됐다.

- 젊은이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도움을 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우중 씨처럼 그렇게 욕심 내고 살면 뭐해요. 결국 그렇게 쫓겨나잖아요. 자기 잇속만 챙기고 팽개쳐 버리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지금 누가 믿어요? 지조가 있는 젊은이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많은 시간을 열차에서 보내야 하는 두 분에게 인사를 하고 서대전역에 내렸다. 내내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정작 행사에 참여하는 마음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애초부터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은, 40여년동안 김주열 열사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고 있는 '또 다른 의무'를 알아 달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남원 시청 복지 행정과에 전화를 했다. 거듭되는 통화중. 아무래도 기념관 개관 때문에 무척 바쁜 모양이다.

- 김주열 열사님 가족들을 초대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그 분들을 위한 교통비나 숙박비 등 예산이 따로 편성되어 있습니까?
"아뇨."

너무나 짧고 분명한 대답에 당황해서 바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과연 우리에게 4.19는 어떤 것일까. 필요할 때만 꺼내보는 사진첩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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