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선 지금 '4·19'를 만날 수 없다

등록 2001.04.19 10:57수정 2001.04.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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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4월 19일, 그 날의 혁명을 생각하면 나는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던 한편의 시가 생각이 난다. 오늘이 4·19혁명 마흔 한 돌을 맞이하는 날이기도 하니 다소 길다는 생각은 들지만 시의 전문을 소개해 본다.

지금 대학에서 4·19혁명의 자취를 느끼기는 어렵다.ⓒ이승욱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창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시인은 이 시를 통해 4·19혁명의 정신을 왜곡하는 모든 세력을 거침없이 질타하며, 저만치 멀리 떠나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 오늘 난 그의 시를 잠시 '왜곡' 해본다. 알맹이가 '혁명의 정신'을 말한다면 껍데기는 4·19혁명을 기념하는 '겉치레 행위'이라고...


하지만 2001년 오늘 대한민국의 대학가엔 그 '껍데기'마저 없다.

"4·19혁명 말인가요? 글쎄..."


4·19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대구, 봄볕이 따갑게 내리는 한 대학 교정에서 만난 99학번 남학생은 '4·19 혁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민해 보지 못했다"는 짧은 대답만을 남겼다. 그리고, 그 보다 선배인 듯한 한 학생은 "국사교과서에서 나오는 이상의 4·19혁명을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조금 길게 말을 붙였다.

한발 물러나 '알맹이'를 알지 못한다고 넘기고 '껍데기'를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대구지역에 있는 대학가에서는 쉽게 껍데기를 만날 수도 없었다.

우선 경북대는 매년 개최했던 4·19혁명 기념 마라톤 대회가 올해엔 잡혀있지 않았다. 영남대도 상황은 마찬가지. 겨우 마라톤대회를 한다는 계명대로 전화를 해봤다. 그러나 840명 정도가 참가한다고는 하나 그 '4·19를 기념하는 껍데기'로서의 신빙성은 적어 보인다.

계명대 총학생회의 관계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라톤대회는 의례적인 마라톤 이상의 의미로 내게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외 학교에도 실제 학생들이 나서 준비하는 행사는 '거의 없다'.

왜? 2001년 대학가엔 4·19혁명의 알맹이는 고사하고 껍데기마저 찾기 힘든 것일까? 특히 대구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고 평가받고 있는 2·28학생 봉기의 본거지가 아닌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60년 그 당시를 살았던 '선배'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4·19혁명부상자대구경북연합지부(옛 부상자동지회) 박원범 지부장. 그는 당시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혁명 당시 경찰이 쏜 총탄 2발을 맞고 부상을 당한 후 민주당 정권을 몰락으로 이끈 61년 군사쿠데타 이후엔 옥살이 경험까지 있다고 하니 그 주장대로라면 '혁명세대'임에 틀림없지 않을까. 그는 대학가에서 혁명이 자취를 잃어 가는 현실에 대해 그 원인이 '교육'에 있다고 주장했다.

"4·19혁명이 제 이름을 찾은 것도 얼마 되지 않거든. 그러니 학생들이 제대로 된 4·19혁명을 알 수 있나. 4·19를 격하시켰던 군사독재 시절의 시기 교육이 바로 그 원인이 아닐까 싶어"

'늙은' 혁명세대의 비판은 그나마 학생들을 비껴가니 너그러운 편이다. 지금의 젊은이를 나무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교육만을 탓하기엔 씁쓸한 마음을 쉽게 쓸어 내릴 수 없다.

'껍데기'마저 사라진 상아탑 속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그 이유를 더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미완의 혁명'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우리는 껍데기마저 버리지 않았는지, 정치권 한 자리를 차지하며 '4·19혁명의 적자'를 자임하는 '금배지 어르신들'에게 질려버려 그런 건 아닌지...

"4·19혁명을 가리켜 '미완의 혁명'이라는 표현을 곧잘 쓰지만 4·19를 평가하는 시각에 따라서 그것을 기념하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한총련에서도 공식적으로 기념사업을 '주문'하고 있지만 문제는 현실적인 여건에 문제다" 경북대 총학생회 간부인 김아무개(25) 씨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는 매년 시기적으로 4·19혁명 기념일은 중간고사 기간과 겹친다고 한다. 그때는 학생들의 관심은 시험 공부에만 매달려 있어 '대중적인 기념행사의 준비가 어렵다'는 말로 요약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남대 총학 간부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학생들의 현실-쌓여가는 도서관의 사물함에서 취업난과 '경쟁논리'에 짓눌린 청년을 만난다.ⓒ이승욱
대학은 4·19혁명만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명분'에 알맹이를 잃고 껍데기마저 던져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에서 어느덧 하나의 주류로 정착하는 '자유경쟁체제'는 대학에도 '도입'됐고, 그 속에서 대학인들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 속에서 4·19혁명과 5월 광주, 그리고 87년 6월 항쟁에 대한 기념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만 같다.

졸업 1년 차라는 김아무개(28) 씨는 현실 속에 대학을 생생히 설명해줬다. "4·19혁명 말인가요? 시험 준비한다고 좀 책을 보긴 했는데... 기념이라고요? 글쎄요. 가슴에 와 닿지 못할 걸요. 지나간 일에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성적 걱정에다 취직 걱정까지 해야하니 지금 닥친 현실에 더 급급하죠."

IMF의 여파는 고스란히 대학사회에도 파문을 던져졌다. 그 현실에 '장사'는 없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수그러들고 세상 모든 것에 '알맹이'는 사라져가고 거기에 맞춰 '껍데기'가 잊혀지는 현실만이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차츰 드러내고 있다. 학생운동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변화되지 않은 사회에 대해 적응하지 못한다는 비아냥의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게 지나치기엔 뒤가 개운치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찾노라면 60년 4월 19일과 오늘 2001년의 4월 19일은 별반 틀린 게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인천 부평에서 노동자들이 머리 깨지고, 친일 앞잡이 모 신문이 세상을 더럽히는, 매향리의 농섬에는 미군기의 도발이 계속되는 이 현실에선 말이다.

대학가에서 만난 4·19혁명에 내가 주목하는 이유는 그 고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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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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