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드러나는(?) 구려국(句驪國)

등록 2001.06.09 12:54수정 2001.06.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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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공화국(北朝鮮人民共和國)
북한의 정식국가명에서 알수 있듯이, 대한제국 이전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의 맥을 잇는다는 의식이 강한 북한은 유난히 자주적인 역사의식이 강한 편이다. 그런 영향에서인지 역사연구도 활발하여 고대사 부분에서는 남한과 비교도 안될 만큼 고고학에서의 유물발굴과 관리라던지 역사연구 결과들이 훌륭한 편이다.

예전 서로간에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북한에서 발간되는 역사논문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최근에 들어와서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양측 정부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역사학계의 숙원인 남북한 공동발굴이나 상호교류를 통한 역사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만약 쌍방간의 역사연구에 대한 교류가 성사된다면 북한의 지리학상 옛고구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그동안 한국 고대사에서 최강의 국가로 군림했던 고구려나 그 이전의 한반도 최초국가인 고조선에 대한 궁금증을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헌데 최근에 북한학계에서 일반인들에겐 그 이름조차 생소한 '구려국(句驪國)'이란 국가가 존재했다는 여러 연구를 발표하고 있어 남한학계에서는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역사공부를 잠깐 하자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각각 구려국(句驪國) 백제국(伯濟國) 사로국(斯盧國)이라는 소국(小國)에서 비롯하여 주변의 소국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세 나라로 정립되었다.

북한학계의 주장은 고구려 전신이 된 '구려국(句驪國)'보다도 훨씬전인 기원전 14세기무렵에 또 다른 똑같은 이름의 '구려국(句驪國)'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만약 사실이라면 우린 잃어버린 옛왕조를 다시 찾는 셈이 된다.

북한학계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구려국(句驪國)'은 고조선이 내부분열을 보이던 기원전 14세기 무렵부터 독자적인 고대국가로 성장하다가 기원전 277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기전까지 약 1000년간 한반도 북부지역과 지금의 중국 동북부 지방을 지배하던 세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고조선의 건립시기인 기원전 2333년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들도 많고 위치 또한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이유는 '실증자료의 부족'. 마찬가지로 아직 '구려국(句驪國)'에 대한 정확한 북한학계의 발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한학계에선 일단 '근거가 미약한 학설'이라고 일축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다.

*혹시나해서 말씀드리지만 고조선의 '고(古)'는 위만조선과 구분짓거나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고(古)'를 붙였을뿐 정식 국가 명칭은 '조선'이었다


일단 '구려국(句驪國)'이 존재했던 영토의 중심지가 졸본이라고 하는것과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이 국가를 세운 지역이 졸본지역(압록강 북부) 중심이었다는 것은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구려국(句驪國)'의 지방행정단위인 5부(연나부, 적나부, 관나부, 순나부, 계루부)의 명칭과 고구려의 정치세력이자 중심부족의 명칭인 소노부(消奴部)·계루부(桂婁部)·절노부(絶奴部)·관노부(灌奴部)·순노부(順奴部)는 명칭상으로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한반도의 고대국가들의 형성과 멸망과정을 보면 새로운 국가의 성립은 대체적으로 기존 국가를 흡수, 병합하는 계승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한 점에서 '구려국(句驪國)'의 존재유무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한 추론으로 결론을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를 뒷받침해줄 고증자료와 유물이 필요하다. 특히나 고대사에 있어서는 더욱...

1980년대말 단(丹)이란 책이 나오면서, 한반도 역사는 '환웅'이라는 신화속의 신(神)이 시조라고 묘사된 환단고기(桓檀古記)란 책도 세간에 널리 알려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이 한국 침략을 합리화하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를 위한 일본서기(日本書紀 )나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근 역사극인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죽음을 역사고증에 근거하지 않고, 임의대로 미화한 것에 대해 반론이 만만치 않았던 점은 드라마에서 보여준 장면이 마치 역사적인 사실인양 세인들에게 그대로 각인될 것을 우려한 목소리라고 볼 수 있다.

일단 북한학계의 주장은 '천리마'라는 대중잡지를 통해서 알려진 것이 전부이고 보면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남한학계가 성급하게 이런 학설을 가볍게 보아 넘기기 보다는 제안을 통해 역사유물의 발굴이나 관련서적들의 연구를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북한학계는 학설을 뒷받침할 자료들을 서둘러 마련해서 역사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는 한반도의 옛 왕국이 다시 역사 앞에 모습을 드러낼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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