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캐리어 '블랙 리스트' 떠돈다

등록 2001.07.17 12:28수정 2001.07.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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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콘 제조업체인 (주)캐리어의 하청업체에 근무하다가 하청업체의 폐업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작성된 '블랙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와 캐리어하청노조 등은 16일 광주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캐리어의 한 하청업체로부터 확보한 블랙 리스트'와 '캐리어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취업하지 못한 사례 등을 공개하고 관계당국에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캐리어와 6개 하청업체는 지난 5월말 폐업으로 하청근로자 639명 일자리를 잃게 하고도 이들 근로자들을 취업기피 대상자로 지목해 명단을 작성한 뒤 다른 업체에 통보해 재취업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랙 리스트'는 청우 등 6개 하청업체의 근무자 639명을 '최초 근무자'와 '현 근무자'로 구분돼 작성됐다. '최초 근무자'가 '현 근무자'로 표기되지 않은 노동자는 캐리어하청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에 동참한 사람으로 '블랙 리스트' 작성당시에는 생산 현장에 투입되지 않은 노동자들이다.

전국금속연맹 광주전남본부 유휘양 교선부장은 "캐리어하청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4월 이래 캐리어에서는 비조합원들을 생산현장에 투입했다"며 "이러한 구분으로 보아 캐리어 6개 하청업체가 폐업하기 전인 5월 28일 이전에 리스트가 이미 작성돼 배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블랙 리스트와 함께 '캐리어에 근무한 사람은 신원조회에 다 나오기 때문에 안된다'는 내용의 구직 문의 전화 녹취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캐리어 블랙리스트블랙 리스트는 6개하청업체에서 근무한 노동자를 '최초 근무자'와 '현 근무자'로 구분해 작성됐다.
ⓒ 강성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인력파견업체인 A사의 경우, 캐리어에 다닌 사실을 이력서에 적시하지 않으면 되지않느냐는 말에 "어차피 다른 큰 업체들은 대부분 명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거부했다. 그리고 실제 A사의 사장은 '블랙 리스트'가 실제 존재하고 대기업 하청업체와 중소기업 등에 이미 배포돼 "어쩔 수 없다"고 시인한 바 있다.


하청업체들이 채용을 한다해도 해당업체의 본청에서 취업여부를 최종결정하고 이미 '블랙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어 취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황모 씨는 지난 5월 파견업체를 통해 하남공단의 모 전자회사에 채용되었으나 취업된 후 캐리어에 다닌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블랙 리스트'의 배포 범위와 작성·배포에 대해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는 "하청업체들이 '(원청업체에서) 또 다시 신원조회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밝혀 지역의 대공장들이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조직을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내용은 (주)캐리어와 6개 하청업체가 아니면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라며 그들이 깊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조상영
캐리어하청노조는 이미 지난 5월 29일 가진 김동남 광주지방노동청장과의 면담과정에서 "블랙 리스트가 나돌아 재취업이 안되고 있으니 철저하게 조사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캐리어하청노조는 "이미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노동청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것은 직무유기"라며 "관계당국은 블랙리스트 작성경위 등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는 '블랙 리스트'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노동부와 청와대에 제출하기로 하고 18일부터 광주지방노동청 앞에서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할 계획이다.

한편 민주노총지역본부와 캐리어하청노조는 지난 5월부터 '블랙 리스트'가 떠돌아 재취업을 할 수 없다는 제보를 받고 자료 확보를 위해 해당업체들을 방문하는 등 조사과정을 거쳐 확보한 증거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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