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에 관한 단상

등록 2001.09.13 10:32수정 2001.09.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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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워싱턴에서 일어난 끔찍한 테러 사건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거대한 빌딩이 무너지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당했다.


비행기에 탑승했던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세계무역센터에 일찍 출근했던 사람들에겐 그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치솟는 불길에 창문 밖으로 밀려나 종잇장처럼 펄럭이며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죄 많은 짐승인가 생각했다.

펜타곤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또 어떤가. 미국 국방성이 제국주의적 폭력과 죄악의 온상이라 해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을 한 사람의 청소부를 생각하고 비행기에 실려 있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펜타곤을 향한 테러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민간인을 제물로 삼는 테러는 분명한 죄악이다.

한편으로, 생각하게 된다. 모든 테러가 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때 그것은 부당한가.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虹口) 공원에 들어가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의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등을 폭사시켰다 할 때 그것은 부당한가. 그렇다면 그를 사지로 몰아넣은 김구도 한갓 테러리즘의 괴수에 지나지 못할 것이요, 그를 암살한 CIC 대원 안두희의 죄상도 그만큼 가벼워질 것이다.

나는 테러리즘이 이성을 상실한 광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도는 광신적이고 기독교도는 합리적인가. 또 그 반대인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은 비이성적이고 영국의 지배는 이성적인가. 나치 테러는 악하고 이스라엘의 폭력은 선한가. 이스라엘의 보복 암살·폭격은 선하고 팔레스타인의 테러는 악한가.

쿠웨이트를 강점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악하고 '사막의 폭풍'으로 대항력 없는 이라크 군을 숱하게 숯덩이, 불쏘시개로 만든 미국군은 선한가. 수십 년 동안 우리들이 겪어온 군사독재의 테러리즘은 어떤가. 테러리즘에서도 모든 것은 불변적이라기보다는 가변적이고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라 광기에 가까운 이성이다.


테러리즘에도 정치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테러를 가하는 자들도 여론과 대중의 지지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만약 부시가 휘두른 미국의 자유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덜 무식했고 그가 클린턴의 온건주의를 조금이라도 더 배웠다면, 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행사되었다면, 민간 항공기를 대량으로 공중납치해 쌍둥이빌딩과 펜타곤으로 돌진하는 미친 짓은 시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 아무리 광적이고 교조적이라 해도 그것을 실현해 가는 그들의 방략은 현실적인 정치학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테러리즘에도 윤리학이 있다. 테러리즘은 그것이 행사된 크기에 의해 정당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 끔찍스러움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하는, 지극히 애매모호하고 심리적인 기준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견딜 수 있음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는 그런 폭력이 무감각하게 행사되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핵폭탄은 수십만을 죽였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죄악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그저께 미지(未知)의 사람들이 벌인 테러는 시기와 상황에서 볼 때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주고 있다. 그것은 묵과할 수 없는 국제적 죄악이 되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미친 짓이 중동 사태를 보다 낫게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테러를 자초한 부시의 어리석음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부시를 보면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두 사람은 자기를 절대적 선(善)으로 타자를 절대적 악(惡)으로 단정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테러리즘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테러리즘이 생장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정의가 더 증대되어야 한다. 일국적이든 국제적이든 권력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폭력을 행사한다. 또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즐긴다. 또 그것은 독재와 제국주의로 가시화되기도 한다. 그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것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저항이 일어나고 그 저항의 극단에 놓이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지칭하는 테러리즘이다.

증오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간이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기이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이한 세상을 살아간다. 벌레처럼. 증오와 폭력의 군화발에 짓이겨지면서. 타인을 짓이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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