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 연옥을 사신 내어머니④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등록 2001.10.08 05:45수정 2001.10.1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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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서 대전까지 가는 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상념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기도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어머니가 팔순을 바라보시는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질량과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고, 팔십 평생 동안 겪어오신 갖가지 수많은 슬픔과 고통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내 어머니의 삶에 대해 '이승에서 연옥을 치르시는 삶'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 왔습니다. 내 어머니 또래의,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두루 연옥 같은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내 어머니의 삶에는 참으로 그런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이런 관점은 어머니의 오롯한 '신앙심'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를 희구하시는 어머니의 그 깊고 변함 없는 신앙심을 결부시킨다면, 내 어머니가 겪어오신 수많은 슬픔과 고통들은 곧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기 위한 확실한 과정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양심 바르고 착하신 내 어머니는 깊고 오롯한 신앙심 위에 갖가지 수많은 슬픔과 고통들이 얹어져 있으므로 사후에는 연옥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천당으로 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어머니가 이승에서 겪으신 그 고통과 슬픔들은 하느님께서 내 어머니에게 베푸신 특별한 사랑의 은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큰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시는 것으로도 보았고, 자신을 확실하게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기 위한 각별하신 배려의 손길로 스스로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 어머니는 일찍부터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았고,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슬픔을 겪고 아는 자만이 진정한 기쁨을 알고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의 실체를 나에게 보여주셨던 것이지요.


나는 어머니의 평생에 어려 있는 연옥의 실체와도 같은 온갖 슬픔과 고통들 속에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가장 비통하게 한 것은 어떤 것일까―잠시 그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8년 전의 일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칠순 생신날 잔치하던 야외 음식점의 연못에 어린 손주를 잃어버린 일…. 아무래도 그 일이 어머니의 평생에서 가장 비통했던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로서는 조카를 잃은 것이지만, 그 일은 지금도 나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1993년 그날의 그 참담했던 일들은 지난 7월에 발표한 「일제 시대를 비켜 태어난 것에 대한 이문열의 생각을 보고」라는 글 중에 대략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그 후의 몇 가지 사항들은 기록을 해보고 싶군요.

그날, 잔치가 채 끝나지도 않은 음식점에서 집으로 돌아와 있다가 물에 빠진 손주가 끝내 절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몸부림치며 오열하시는 어머니의 손을 보니, 그 손에는 묵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야릇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칠순 생신날 잔치하던 음식점의 연못에 어린 손주를 잃어버린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슬픔 속에서 오열을 하고 있는 지금, 어머니에게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존재일까? 비수 같은 의문이 내 뇌리를 찌르는 듯하였습니다.

묵주고 뭐고 다 팽개치고 하느님을 원망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더 자연스럽고 인지상정에 부합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습니다. 더욱 단단히 쥐고 있는 듯했습니다. 나는 다음 순간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서 하느님의 실존을 느끼고 확인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머니가 매달리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 뿐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낀 기분 ―순간적으로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예리한 느낌은 그 후 내 가슴에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며칠 후 한 새벽에 나는 태안 성당의 '성체조배실' 안에서 어머니의 그 모습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목요일 새벽이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새벽마다 정해진 순서에 의해 성체조배실 안에 한 시간씩 있곤 했던 나는 또 한 새벽 예수님 앞에 앉아서 어머니의 그 오열하던 모습을 떠올린 것입니다.

다시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또 한차례 흐느껴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주머니 속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내 들고 시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성체조배실 안에서, 말하자면 예수님 앞에서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이 왠지 내 가슴에 가득하였습니다.

나는 시를 지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다 짓고 나서는 더욱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시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인가, 불행한 일인가….

나는 그날 새벽에 태안 성당의 성체조배실에서 지은 시를 그 후 <가톨릭신문>과 <흙빛문학> 19집에 발표하였습니다. 내 어머니에 관한 시이므로, 오늘 여기에 다시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



특별하신 어머니
―슬프게 고희를 보내신 어머님께


어머니, 당신의
칠순 생신 날은 공교롭게도
성모님의 날이었습니다
북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되다는 말의 뜻을 아십니까
천상의 모후가 아닌
지상에서의 성모 마리아의 생애
그 고통스럽고 비참한 삶이
어째서 복일까요

성모님이 그랬듯, 그 누구에게도
이승에서의 불행한 삶이 복일 수 있고
모진 고통들이 복을 내포하고 있는
그 신비한 역설적 의미를
어머님은 느끼십니까

어머니, 당신이 살아오신 칠십 평생은
세속적인 행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슬프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지요
십자가를 진 듯 살아온 삶의 고초
그 무거운 삶의 걸음걸음에 숱하게 뿌려진
진액의 피땀과 피눈물

남편도 짐이었고, 장성한 자식도 짐이었고
지금도 어머니의 가슴에 짐으로 남아 있는 자식들
아, 끝날 줄 모르는 당신의 박복

형편도 되지 않으면서
효성을 훔치려는 자식들의 세속적 열망에
마지못해 마련했던 당신의 칠순 잔치

그 잔치를 자시다가 연못에 손주 새끼를 잃은
하 기막힌 그 노릇, 그 슬픔이
어디 흔한 일입니까
아무에게나 있는 일입니까
참 특별하신 당신께나 어울리는
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일…

어머니, 이 불효한 아들은 때때로
성모 마리아의 삶을 생각하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당신의 얼굴 그득한 주름살을 바라볼 땐
성모님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칠순 잔치마저도 분에 넘쳤던 듯
슬프게 고희를 보내신 어머님 당신이
이제부터 성모님께 드릴 기도는 딱 한가지뿐입니다
"「날 닮았다」하소서"
이 말 한 마디 뿐입니다

어머님은 감히 그럴 수 없다고 하시겠지만
이제 당신은 그런 기도를 하실 수 있습니다
「날 닮았다」하소서
「날 닮았다」하소서.
(1993년 <가톨릭신문> 10월 24일)



그날 나는 연못에 빠진 아이를 건져서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하는 그 정신 없는 와중에서도 음식점에 음식값을 계산하여 모두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조사를 나온 경찰관들을 되돌려 보내고 사건을 무마하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정말이지 그 사고를 사건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음식점의 주인이 교우(敎友)이고 한 동네 사람이며 지역 선배이기 때문이었지요. 무엇보다도 그분이 '믿음의 형제'라는 사실이 내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음식점 건물 바로 옆 10미터 거리에 분수대가 있는 작은 연못을 조성하면서 아무런 안전 장치를 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형사 입건 사항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경찰서에서는 나의 간곡한 부탁이 다소 의외였는지, 나로부터 나중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확약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밤 그분은 자기 대자(代子) 두 사람과 함께 우리집에 와서 사죄의 말을 하면서 돈 봉투를 내놓았습니다.

"절대 보상금이라구는 생각지 말게. 그 어떤 금액두 보상은 될 수 읎다구 생각허네. 그저 아이의 영혼을 위해 연미사를 드릴 때 미사 예물루 쓸 수 있는 금액일세. 미사 예물이라구 생각허구, 동생헌티 잘 말헤 주게."

나는 그분의 말이 하도 간곡해서 동생과의 상의를 뒤로 미루고 일단 그 돈을 받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돈을 세어보니 3백만 원이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한참 생각에 잠겼던 어머니가 내게 말했습니다.
"금액이 얼마든간에 돈을 받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여. 합의를 했다는 소문도 날 테구…어쨌거나 돈을 받는 것은 아무 죄 없이 죽은 깨끗한 어린 영혼에게 누가 되는 일이여. 내일 아침에 가서 돈을 돌려 주도록 허여."
"예, 어머니 말씀이 옳유. 그렇게 헐게요."
내 말에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우선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나서 신부님께 어머니의 뜻을 말씀 드렸습니다. 신부님은 내 어머니의 뜻에 깊이 동감하며 꼭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동생집에 들러서 아직도 큰 슬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생과 제수씨에게 어젯밤의 일을 말하고 어머니의 뜻과 신부님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동생 부부도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요.

나는 그 길로 그 음식점으로 가서 안채의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분은 아직 잠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어머니의 뜻과 신부님의 말을 전하고 돈봉투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우리의 뜻을 강조하였습니다.

"절대루 금액이 즉다는 뜻으루 이러는 게 아니유. 그런 오해는 꿈에두 허지 마십시오. 다만 우리가 금전이 오가는 세속적인 일을 결부시키면 어린아이의 깨끗헌 영혼에 누가 되리라는 생각으루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의를 그대루 이해허구 받어주십시오."

그분은 잠시 무슨 생각인가를 하더니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럼, 이렇게 허세. 지금 자네 제수씨의 몸 안에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그 아이의 이름으로 교육보험을 하나 들겄네. 그래 갖구 매월 꼬박꼬박 보험료를 잘 치르겄네. 내 약속험세."
"그건 형님이 알어서 허십시오. 지가 그것을 강요허는 것은 아니니께 억지루 그러시지는 마시구요."

그때 내 제수씨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첫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지금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둘째 아이가 곧 세상에 나오리라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제수씨는 역시 아들인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한동안은 첫아이에 대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지요. 젖먹이에게 젖을 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그 아이는 잘 자라서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이랍니다. 그 아이의 교육보험 건에 관해서는, 즉 그분이 스스로의 그 '약속'을 잘 지켜서 그 아이가 태어나는 즉시 그 아이 이름으로 과연 교육보험을 들었는지의 여부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려분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최근에 어머니가 그분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신앙 생활이 온전치를 못한 데다가 그분의 많은 대자들이 거지반 냉담 상태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몹시 안타깝게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많은 기도를 하시며 사시는 내 어머니는 자신보다는 남들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신답니다. 자식들을 위한 기도가 자신을 위한 기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위하여, 수많은 은인들을 위하여 분명한 지향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넉넉하게 살면서도 신앙 생활이 온전치 못한 그분과 그분의 냉담 대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해 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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