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1.10.15 13:42수정 2001.10.15 17:5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영삼 '문민 정부' 시절에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날치기 통과'가 자행되었다.

연립주택 현관 난간에다 자전거 매놓는 일을 하루 잊었더니, 누군가가 자전거를 가져가버렸다. 뒷동 우유 배달 아줌마의 오토바이도 반짝 들어서 차에 실은 듯,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다. 벌건 대낮에 홍명 아파트에서는 트럭까지 동원한 도둑들이 두 집이나 털어 가전 제품들을 몽땅 실어가버렸다.


주인 할머니를 따라 자주 성당에도 와서 문 밖에서 같이 미사를 지내곤 하던 이 과장네 누렁개가 하룻밤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루가 지나도 개가 돌아오지 않으니 개도둑에게 붙잡혀 갔음이 분명했다. 피땀으로 일년 농사를 지어 논두렁에 가리쳐놓은 볏단들을 누군가가 하룻밤새 몽땅 가져가버렸다.

가뭄 속에서 어렵사리 기른 배추가 탐실하게 자라서 돈 좀 되겠다 했더니 하룻밤새 누군가가 몽땅 뽑아가버렸다. 5년 동안 온갖 정성으로 길러온, 농사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인삼도 하룻밤새 왕창 뽑아가버렸다.

도둑이 들끓는 나라, 도둑이 없는 곳이 없다보니,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가 자행되었다.

옷로비 사건에다 대형 금융 사건이며 크고 작은 사기 사건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터지는 나라,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가 자행되는 나라, 얼씨구 좋은 나라 우리 나라.

그런 우리 나라가 요즘에는 이용호 게이트인가 뭔가로 온통 시끄럽다. 국회의 국정 감사에서 '이용호-검찰 유착 의혹'에 대한 특별 감사가 벌어지고, 검찰은 특별감찰본부까지 차려 조사를 벌인 끝에 서슬 퍼런 검사 나으리들이 네 명이나 속된 표현으로 피를 보게 되었다.


피를 본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그들이 피를 보았다면 국민들은 생피를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부정이나 죄만큼 피를 보는 것이 당연하지만, 국민은 무슨 죄란 말인가. 또 국민이 생피를 보았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검찰을 포함하여 무릇 국가 기관은 나라의 골격을 이루는 요체다. 그 요체들의 건강은 전체 국민 생활의 건강과 직결된다. 어느 하나가 건강치 못하거나 이상 징후를 지니게 되면 다른 요체들에도 영향을 주고 전체 국민들에게 알게 모르게 해를 끼치게 된다.


나라의 골격을 이루는 요체들의 건강한 풍모나 정상적인 작동은 국가 이익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자존심과도 연결된다. 한 예로, 정치 권력의 부정 부패에도 곧잘 척결의 칼을 들이대곤 하는 이태리나 일본의 검찰이 국민적 자존심을 한껏 키워주고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투명하고 깨끗한 국가 기관들의 정상적인 운용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한가지 '성취'와 '총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직을 권력 놀음으로 이용하고, 공직의 권력을 사유화하는 높은 사람들에 의해 그 기관이 한 부분이라도 썩은 모습을 노정한다면, 국민들은 큰 실망과 상처를 받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갖게 되는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며, "더럽고 치사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이 두루 썩었다"는 자조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은 국민들의 건전한 삶의 의욕마저 반감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도덕 불감증에 젖게 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그 공직을 사랑해야 한다. 공직의 숭고한 사명을 스스로 일깨우며 매사에 정정당당해야 한다. 자신이 그 공직을 성실히 수행한다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그 공직의 참다운 위상의 확립을 위해 헌신한다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것에는 개인의 소소한 이익을 희생시키며 '가난'을 추구하는 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직을 더럽히는 사람은 곧 나라의 풍모에 먹칠을 하는 것이고, 국민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무 맹자님 같은 소리를 하고 있고, 우리 사회에 이미 불필요해진 원리원칙에 대해 실없이 떠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또 한번의 높은 공직자들의 탈선을 보면서 우리 사회 저변의 잘못된 가치관의 일단을 읽는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무엇이 될까(또는 내 자식을 무엇으로 만들까)라는 목표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다. 대개는 그런 식으로 자식을 가르치고, 자식에게 기대를 건다.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부의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사정에서도 본말이 전도된, 더욱 심화된 가치관의 혼란상을 체감한다.

이용호 게이트의 심저를 내 나름의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우리 사회에는 이런 저런 형태의 도둑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 도둑질을 할 줄 모르면 사회의 낙오자나 바보가 되는 세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유형무형의 도둑들이 자식들을 두고 있다면 그들은 부정한 아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자식들 앞에서는 도둑의 표를 내지 않는다. 자식들을 자상한 애정으로 보살피는 최상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자식들은 그 아버지를 가장 멋진 아버지로 인식하고 사랑과 존경의 눈으로 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바깥 세상에서의 그 부정한 아비들의 자식들에 대한 교육 방법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앞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란 없다. 자식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그저 돈이나 벌어다주는 아비라면, 그런 자는 아비의 자격이 없다. 자식 교육을 어미에게만 맡긴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물론 자식들을 가르치지 않거나 못하는 아비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는 것도 큰 문제이긴 하지만, 자식들을 가르치며 사는 상황을 전제로 논급을 계속하자면, 부정한 아비들은 과연 자식을 어떻게 가르칠까?

그들은 과연 자식에게 양심을 가르칠까? 가난의 미덕을 가르칠까? 사회 정의를 가르칠까?

그렇게 가르치는 부정한 아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은 비록 자식들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고, 더 높은 출세를 위해 뇌물을 주거나 받아먹더라도, 자식만큼은 올바르고 깨끗하게 살도록 '양심'을 가르치는 아비도 있자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자식에게 일찌감치 생존 경쟁 풍토에서의 처세술을 가르치는 아비도 있자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양심이라는 것이 별 소용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나머지 자식의 양심 계발을 기피하거나 차단하는 쪽으로, 그리고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자식들을 가르치는 부모도 있자면 있을 것이다.

내가 굳이 온건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미 그런 '악순환'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울울창창한 혼돈의 숲이….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다시 내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양심이라는 단어를 접할 적마다 나는 내 선친을 떠올리곤 한다. 도둑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도 내 선친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내 선친은 어찌 보면 사회의 낙오자였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가난을 고수하며 산 분이었다. 여기에서의 '가난'이란 빈곤이나 궁핍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욕심'이 없는 상태―그리스도교의 성서에서 접하게 되는 그런 가난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가난 속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는 아버지의 가난 속에서 양심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 집은 조악한 형태의 곡물업을 하고 있었다. 전주(錢主)로부터 돈을 얻어다가 촌락의 농가들을 다니며 미리 곡물값을 깔고 수확기가 되면 벼나 보리를 받아 정미소로 운반해서 도정을 해 가지고 전주에게 넘기는 식의 장사였다.

남의 돈으로 하는 장사이니 이윤은 항시 박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로부터 때로는 야박한 소리나 폭언도 들어야 했다.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며 과부인 '상짜'라는 이름의 전주는 우리 부모의 왕이요, 상전이었다.

하루는 또 한번의 벼 도정 작업을 끝내고 상차(上車)까지 마친 후 정미소의 사랑방에서 상짜와 아버지가 마주앉아 계산을 하는 모습을 나는 방문 앞에 서서 지켜볼 수 있었다.

먼저 그들은 그들의 치부책에 적혀 있는, 그들 사이에 여러 차례 오고간 금액을 서로 맞춰보는 일을 했다. 상짜가 우선 자기 치부책에 적혀 있는 사항들을 불렀다. 몇 월 며칠에 얼마, 하는 식으로…. 그럴 뿐 그는 아버지의 치부책은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치부책을 덮어버렸다.

아버지가 맞다고 하면서 치부책을 덮어버리면 그만일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치부책에 하나가 빠진 것 같유."
"그류?"
"내 치부책이는 이 달 초이튿날 2만원이 온 게 적혀 있는디, 아주머니 치부책이는 그게 안 적힌 것 같유."
"그류이잉?"

상짜는 얼른 자기 치부책을 다시 펴보더니, "그러네유. 이달 초이튿날 2만원 간 게 빠져 있네유. 큰일날 뻔했구먼"하고는 방바닥의 계산지에다가 2만원을 새로 적어 넣는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의 2만원이 지금의 화폐가치로는 얼마나 큰 돈일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 당시에도 2만원이면 큰 돈이었다. 내가 1970년 월남에 갔을 때 병장이 받는 한 달 전투수당이 54달러―1만5천원 정도였으니까….

하여간 나는 그날 아버지의 그런 처신을 보면서 어금니를 악물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저런 바보 같은!'이라는 소리가 내 입안에 꽉 차서 목구멍까지 아리게 했다.

정미소에서의 모든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던 신작로에서 나는 아버지께 볼멘 소리를 했다.
"워째 그러셨대유?"
"뭘?"
"아버지가 그 이만원 발러준 것 말유. 그냥 물르는 척 넘어갔으면 그 상짜 여편네두 생전 물를 텐디…."
"여편네라니?"
"암튼유"
"상짜 아주머니를 쇡일 수는 있어두, 하느님은 뭇 쇡이는 겨."
"하느님유?"
"그려."
"하느님을 뭇 쇡이면유?"
"지옥 가지."
"지옥유?"
"그려. 내가 단돈 이만원 때미 지옥에 가면 된다니?"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하느님은 뭇 쇡이는 겨"하면서 하늘을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종종 하늘을 쳐다보곤 했고, 그것은 거의 버릇이 되기까지 했다. 양심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거의 자동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삶의 목적을 두고 있지 않음을 아주 일찍이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참으로 깊이 '하느님의 나라'를 소망했고, 그리고 참으로 가난하게 이 세상을 사신 것이었다. 한때 당신의 무능도 가난도 죄가 될지 모른다는 말씀을 술회하신 적도 있긴 하지만, 극심한 병고 중에서는 마침내는 참으로 편안하게 삶을 마치셨고….

나는 아버지가 깊이 소망했던 하느님의 나라가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나를 생각하곤 한다. 아버지의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아버지의 삶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살아 있는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주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영혼이 하느님의 품안에 안기도록 자주 '연미사'를 봉헌하곤 한다.

나는 내 자식들도 내 아버지 식으로 가르친다. 양심을 가르치고, 하느님을 알게 하고, 가난의 미덕을 가르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비록 현실적으로는 무가치하고, 출세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지라도, 나는 내 자식들이 정의에 눈멀지 않고 바르고 착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깊이 알고, 현세의 욕망에 지나치게 경도 되지 말며, 나그네의 마음으로 겸허하게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많은 천주교 신자 부모들이 공부 손해를 우려하여 자녀들을 성당에도 잘 보내지 않고 있는 현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공부보다도 하느님이 더 중요함을 아이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하느님의 자리까지 온통 공부로만 채우게 하면서 아이들을 기르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을 그렇게 기른 성과로 훗날 나 죽은 후에 내 아이들이 아비를 위해 기도를 하고 미사 봉헌을 하며 산다면, 내 이승에서의 삶 또한 보람으로 승화될 것이다. 나는 신앙인으로서 그런 식의 '성공'을 거두고 싶다. 내 아버지처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