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학살 유족들은 아직 전쟁 중"

18일 한국전쟁 양민학살 공대위 대구경북본부 결성

등록 2001.10.18 15:35수정 2001.10.18 19:27
0
원고료로 응원
"보상을 바라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족들이 미군 폭격기에 죽었으니 왜 죽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무부서도 없으니..."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으로 가족들이 숨져 한을 품고 살고 있는 허맹구(51. 현재 부산시 수영구 거주) 씨의 탄식이다.

전쟁 후 태어난 허 씨는 선친에게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을 전해들었다. 허 씨의 말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한 그 해 8월 16일 정오, 포항시 흥해읍 북송리에 살고 있던 가족들과 100여 가구의 주민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생존자의 증언은 미군 비행기로 보이는 20여대의 폭격기가 인민군 군사기지가 없었던 이 마을에 집중적으로 폭격을 가했다는 것. 결국 그 폭격으로 숨진 주민은 32명, 그리고 2명이 크게 다쳤다고 한다. 허 씨의 할머니를 비롯해 허 씨의 친형들도 그 폭격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후 허 씨는 가슴에만 품고 있던 가족들의 죽음을 노근리 사건이 세상이 알려지자 하나씩 밝혀나가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북송리 미군 폭격 양민학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허 씨는 "정부에서 정확한 자료를 요구하기에 <한국전쟁사> 등 책과 자료를 어렵게 뒤져서 결국 유사한 미군의 작전 사례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허 씨가 찾아낸 것은 <한국전쟁사> 3권 345쪽에 기록된 '낙동강 방위 작전기' 부분. 이 기록에는 북송리에 폭격이 있었던 그 날, 배리포지(Vally Forge) 등 2대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폭격기의 작전 내용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폭격지점과 폭격상황은 생략돼 있어 허 씨는 최근 국방부에 자세한 내용을 알려달라는 진정서를 보낸 후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허 씨는 "내가 아는 것이 짧아도 상식적으로 인민군 기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민간인 마을에 폭격이 있을 수 있는지 너무 억울하다"고 분을 삭이며 말했다.

전쟁 전후 양민학살 진상규명 위해 모인 유족들


ⓒ오마이뉴스 이승욱
18일 오전 대구여성회 강당에는 허 씨와 비슷한 사연을 안고 사는 희생자들이 모였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한국전쟁 전후 양민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 대구경북본부'(이하 공대위)를 결성하기 위한 것.

이날 결성식에는 대구와 포항, 경주, 청송 등 경북 각 지역에서 모인 유족 40여 명이 함께 자리를 메웠다. 결성식 전 유족들은 각자의 소개와 함께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가족들의 죽음을 토해내듯 말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어머니와 부인을 잃었다는 박성대(74. 경북 청송군 현서면) 씨는 "인민군이 내려온다며 경찰들이 피신하라고 해서 마을 주민 300명이 다른 마을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정오쯤에 미군 정찰기가 날아오더니 몇 분 있다 폭격이 시작돼 주민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또 경찰에 끌려가 아버지가 처형당했다는 한 허분녀 씨는 "우리 가족들은 아직도 전쟁 중"이라면서 "아버지와 친지들이 죽고 난 후 그 고통으로 친척들간에 아직도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고 있다면서 눈물을 흘려 주위를 숙연케 했다.

"제대로 된 특별법안 만들어 진상규명 해야한다"

하지만 각각의 이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지만 이날만은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제는 숨죽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전국의 양민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모여서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시급한 과제로 확인했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양민학살 관련 특별법은 배기운(민주당. 전남 나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김원웅(한나라당. 대전 대덕구)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 두 가지. 하지만 유족들은 배 의원이 국회에 발의한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김 의원이 최근 발의한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결성식에 모인 유족들ⓒ오마이뉴스 이승욱
특별법 제정에 힘쓰고 있는 채의진(문경지역 유족) 씨는 "배 의원이 마련한 법 자체가 제주4.3특별법을 그대로 인용, 졸속으로 마련한 법률안으로 다분히 형식적인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다소 부족하더라도 올바른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대위 결성식은 오는 22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전국 공대위 발족식 참여와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특별법안 제정 참여요구 등을 합의하고 결성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현재 대구, 경북(문경, 청도, 경산)지역에는 지역별 유족회가 꾸려져 있으며 지난해 11월 '한국전쟁 전후 양민학살 진상조사단'이 조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대위 대경본부 연락처: 053-424-0411)

덧붙이는 글 | 다음은 결성선언문 전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반백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들 가슴에 맺힌 피멍은 가시질 않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날아든 전쟁의 포성은 가정을 완전히 파탄시켰다. 날아드는 폭탄과 총탄에 수많은 부모와 형제들의 사지가 찢겨져 죽었다. 더러는 산채로 불태워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검은 연기가 아련히 묻어있는 자식의 시체를 부여잡고, 눈물조차 서러웠던 한국전쟁이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부모형제들의 처참한 죽음의 순간은 우리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토록 끔찍한 한국전쟁의 상처는 전쟁이 끝나고서도 더욱 고통스럽기만 했다. 분명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유족이 다시 죄인이 되고 말았다. 죽은 자는 죽은 대로, 산 자는 산대로 지옥의 길이었다. 

반백년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간혹 희망이 필 것도 같았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질때도, 80년대 민주화의 열기에도 역사가 바로 잡힐 것도 같았다. 하지만 피기도 전에 짓밟히곤 했다. 피해자는 계속 침묵을 강요당했다. 침묵과 고통의 세월속에서 몇 년전 노근리 사건이 전세계에 알려졌고,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민간인이 확실한데도 집단적으로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학살의혹이 제기
되거나, 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단이 꾸려졌고, 점차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통탄스럽게도 대한민국정부와 국회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무고한 민간인이 다른 나라 군대와 군·경에 의해 수백만명이나 무참하게 학살되었는데도 정부가 조사할 생각조차 없다. 국민을 보호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그런데 수백만이 넘는 죽음앞에서 국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정부와 국회마저 침묵한다면, 온전한 나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묻어두고, 올바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수백만 원혼의 한맺힌 절규를 매장한 무덤위에 민족의 미래를 세울 수는 없다.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가해자는 가해자로서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부와 국회에서 무엇보다 먼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통합특별법부터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통합특별법에는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보상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 자리에서 '민간인 학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구경북공동대책위 구성을 선언한다. 새로운 세기는 그 끔찍한 전쟁이 다시는 없는 세상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기에, 그에 부합되는 활동을 할 것이다.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과, 민주단체들, 그리고 유족들이 함께 참여해줄 것을 호소한다. 

 
                             2001년 10월 18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덧붙이는 글 다음은 결성선언문 전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반백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들 가슴에 맺힌 피멍은 가시질 않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날아든 전쟁의 포성은 가정을 완전히 파탄시켰다. 날아드는 폭탄과 총탄에 수많은 부모와 형제들의 사지가 찢겨져 죽었다. 더러는 산채로 불태워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검은 연기가 아련히 묻어있는 자식의 시체를 부여잡고, 눈물조차 서러웠던 한국전쟁이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부모형제들의 처참한 죽음의 순간은 우리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토록 끔찍한 한국전쟁의 상처는 전쟁이 끝나고서도 더욱 고통스럽기만 했다. 분명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유족이 다시 죄인이 되고 말았다. 죽은 자는 죽은 대로, 산 자는 산대로 지옥의 길이었다. 

반백년의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간혹 희망이 필 것도 같았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질때도, 80년대 민주화의 열기에도 역사가 바로 잡힐 것도 같았다. 하지만 피기도 전에 짓밟히곤 했다. 피해자는 계속 침묵을 강요당했다. 침묵과 고통의 세월속에서 몇 년전 노근리 사건이 전세계에 알려졌고,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민간인이 확실한데도 집단적으로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학살의혹이 제기
되거나, 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단이 꾸려졌고, 점차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통탄스럽게도 대한민국정부와 국회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무고한 민간인이 다른 나라 군대와 군·경에 의해 수백만명이나 무참하게 학살되었는데도 정부가 조사할 생각조차 없다. 국민을 보호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그런데 수백만이 넘는 죽음앞에서 국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정부와 국회마저 침묵한다면, 온전한 나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잘못된 과거를 묻어두고, 올바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수백만 원혼의 한맺힌 절규를 매장한 무덤위에 민족의 미래를 세울 수는 없다.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가해자는 가해자로서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부와 국회에서 무엇보다 먼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통합특별법부터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통합특별법에는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보상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 자리에서 '민간인 학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구경북공동대책위 구성을 선언한다. 새로운 세기는 그 끔찍한 전쟁이 다시는 없는 세상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기에, 그에 부합되는 활동을 할 것이다.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과, 민주단체들, 그리고 유족들이 함께 참여해줄 것을 호소한다. 

 
                             2001년 10월 18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5. 5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